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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Nov 27. 2020

후회하는 건 아닌데, 그립기는 하다.

먼 훗날 다시 돌아올 우리만의 시간

 우리 가족에게 평일은 폭풍같이 흘러간다. 아침에는 각자의 출근 준비에, 아이의 어린이집 준비물까지 챙기다 보면 항상 1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항상 매번 아슬아슬하게 집에서 나서게 된다.
 
 퇴근은 칼같이 해서 회사 앞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서둘러 달려가고, 픽업을 하고 나면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함께 동요를 불러주며 집으로 온다. 중간에 마트라도 가야 하면 시간은 늦어져서 집에 가자마자 아이의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가습기까지 세팅을 하고 나서야 아이를 재운다. 아이는 불을 끄고도 엄마 아빠랑 노는 거를 좋아해서 보통 30분은 놀아야 잠이 든다.

 육아 퇴근을 한 우리 부부는 늦은 저녁을 먹고, 내일 준비물을 챙기고, 설거지와 간단히 정리만 해도 하루는 후딱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을 간절하게 기다린다. 이렇게 허둥지둥하지 않아도 되는. 하지만 주말이라고 크게 다를까? 막상 주말이 되면 회사는 가지 않아도 바쁜 것은 그대로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의 밥을 먹이고, 한 명이 오랜만에 아이와 놀아주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미뤄두었던 아이를 위한 요리를 하거나, 집을 정리한다. 이것만으로도 시간은 한참 걸리지만, 그래도 주말이니 아이와 어디 산책이라도 나가거나 과수원이라도 한번 나가려고 하면 짐이 한가득이고, 그 짐을 챙기는데 또 많이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아이가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가거나, 예방접종이라도 맞추려면 아침부터 여유 부릴 시간 따위는 없다.  

"우리 둘이 살 때는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해도 됐는데."

"그렇지. 하루 종일 뒹굴거리다 밥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 산책이나 나가서 대충 사 먹어도 되고."

"아 근데 지금은 너무 바쁘다."

"그르네. 저 코딱지 만한 게 아주 아빠 엄마를 바쁘게 만들었어."

"후회하는 건 아닌데, 그립기는 하다."

 나는 아내가 한 저 말에 너무 공감이 돼서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아이를 너무 사랑하고 예뻐한다. 그래서 지금은 저 아이가 없었을 때, 어떻게 살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행복하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너무 행복한 만큼 너무 힘들고, 가끔 지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하고 만약에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 없이 이 아이와의 삶을 택할 것이다.

 다만, 그리운 것은 그리운 것이다. 단출하게 살아가던 신혼의 삶이. 그때는 외출을 하기 위해 옷을 고르고, 치장을 하는 것이 다였다. 대부분은 그나마도 귀찮았지만, 그래도 투덜거리면서도 나름 멋스럽게 입고 나가서 사진도 찍고, 기분도 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외출은 오로지 아이에게 맞춰진다.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나가서는 밥을 어떻게 할 건지?
아이 밥은 싸가야 하는지?
분유는 챙겨가는지?
나갔다가 언제쯤 들어 올 건지?

 저런 질문의 답에 따라 우리는 아이의 짐을 챙기는 규모가 달라지고, 그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나가기 전부터 우리의 체력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옷을 입을지, 우리가 어떤 신발을 신을지, 우리는 나가서 뭐가 먹고 싶은지, 이런 것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가끔 우리는 우리의 연애시절의 사진이나 신혼 때의 사진들을 함께 본다. 아직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많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지만, 다시는 그렇게 그곳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긴 시간이 흐른 듯 느껴지게 하는지 모르겠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만, 그립기는 하다. 그래서 아주 가끔이지만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두고 우리끼리 마트라도 갈 일이 있으면 우리는 꼭 손을 잡고 걷는다. 너무 많은 게 달라졌지만, 이 마주 잡은 손만큼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연애시절 우리는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얀 백발의 노부부는 바닷가에서 손을 꼭 잡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산책을 하고 계셨다.

"우리도 저렇게 되면 좋겠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이지만, 분명히 다시 올 것이다. 우리만의 시간은.

그때까지 우리가 건강할 수 있도록, 그때의 우리가 나눌 추억이 더 많을 수 있도록, 비록 지금은 조금 힘들고 지치더라도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그때 손을 잡고 조금 더 멀리 산책을 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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