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종 Dec 08. 2020

파고드는 행복

아버지들이여

 아빠로서 육아를 하며 느끼는 것은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고 예뻐하는 대표적인 딸바보이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뭐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뛰어넘을 생각도 없고,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 함께한 10개월의 시간과 밤마다 엄마의 모유를 먹으며 나눈 시간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친밀감을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엄마와 아빠의 존재는 그 한계가 명확하고, 승부가 되지 않는 상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학창 시절 아내가 무슨 일이 있어서 깜짝 놀랄 때마다 "엄마!"라고 하면 깜짝 놀라고는 했는데, 그런 아내를 보고 그 당시의 장인어른께서 아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고 한다.

"만약 깜짝 놀랄 때, 엄마 대신 아빠를 찾으면 내가 5만 원 줄게"

 아내는 5만 원이라는 돈에 혹해서 나름 노력을 해봤지만, 많이  놀라지 않은 상태에서 아빠를 찾는 것은 너무 가짜인 티가 났고, 정말 깜짝 놀라는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엄마!"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는 상황에서 "엄마!!"를 찾는 것은 본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아내는 결국 5만 원의 돈을 받지 못했고, 지금도 깜짝 놀랄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엄마!!"를 외친다.

"어머님 오셨어?"

 아내가 놀랄 때마다 나는 장난으로 맞받아치곤 하는데,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아이와 엄마의 본능적인 관계를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위험한 일이 발생했을 때 나도 모르게 엄마의 존재를 찾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딸을 사랑하고 예뻐한다고 해도 우선순위는 정해져 있으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은 나에게 필요도 없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어릴 때부터 나와 잘 놀다가도 갑자기 엄마를 찾는 일이 많고, 넘어지거나, 자다가 놀라거나, 무서운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달려가고는 했다.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엄마가 우선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들은 그런 아이가 이제 나에게도 파고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아내가 제일 부러운 순간은 아이가 아내의 품에 달려들어 얼굴을 비비며, 어리광을 부리는 장면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나에게는 웬만해서는 쉽게 해주지 않는 것이다 보니 아이가 엄마에게 그러고 있으면 항상 부럽고 아쉬웠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  아이는 밤에는 아빠의 품에서 자는 습관이 들어서, 졸릴 때는 내 품에 쏙 안겨서 비비적대며 자고는 했지만, 그래도 막상 품을 파고들고 비비적거리는 애교는 엄마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나에게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수시로 나를 쫄랑쫄랑 쫒아오며 따라다니기도 하고, 내 다리사이를 오가며 애교를 피우기도 한다.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가있거나, 옷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 문을 두드리며 아빠를 간절히 찾다가 내가 나오면 사정없이 달려들어 내 품을 파고든다.

요즘 나는 파고드는 행복에 푹 빠져있다.

그동안 내가 육아를 하면서 느꼈던 기쁨들을 좀 정리해보면,

1단계는 바라만 봐도 어쩌지 못했던 행복

2단계는 내 품에 안겨있는 존재를 느끼는 행복

3단계는 감정의 교류가 생겨서 순간순간 짜릿해지는 행복

4단계는 조금씩 무엇인가를 배워가며 날 놀라게 하는 행복

그리고 이제 5단계 나에게 파고드는 행복이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낀 행복이고, 함께 같은 아이를 육아하고 있는 아내와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순간순간이 모두 머리에 새겨진 것처럼 엄청난 자극으로 남아있고, 지금의 순간들도 그렇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매 단계별로 그 단계의 행복이 끝판인 줄 알지만, 매번 새로운 자극이 나를 지배하고 그때마다 나는 어쩌지 못하는 행복을 경험하고 있다.

 아빠는 엄마를 넘어설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가장의 무게로, 삶의 숙제들로, 세상의 어려움으로, 우리 아빠들은 어쩌면 가족과의 시간들을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항상 그래도 엄마가 있으니까, 라는 핑계 혹은 안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버지들이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아이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아이와의 시간을 포기한 다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큰 것을 잃는 것이다. 내가 가장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소중한 것을 소중하지도 모르고 지나가 버리면 시간이 지나 아쉬워할 기회조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버지들이여, 꼭 경험해보기 바란다. 아이가 나에게 달려들어 내 품을 파고드는 짜릿한 행복의 맛을 말이다. 그리고 그 맛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아빠따라
매거진의 이전글 후회하는 건 아닌데, 그립기는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