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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Dec 15. 2020

완벽한 아침

부족한 것도 없는, 더 바랄 것도 없는

 아이가 새벽에 울었다. 아이에 방으로 달려간 나는 아이를 달래고 재우려 했지만, 쉽게 잠들지 않았다. 나에게 비비적거리며 잠투정을 하던 아이가 갑자기 까까를 찾았다.

"까까!"

"까까는 이따가 아침에 줄게요. 지금은 우선 자자"

"맘마!"

"맘마도 아침에 먹는 거야. 어서 코~하자."

"엄마? 마~ 엄마~"

 이상한 연상작용으로 아이는 엄마를 찾게 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안고 안방으로 향했다. 엄마를 만난 아이는 신나게 엄마의 품으로 달려들었고, 엄마의 품에서도 맘마를 찾던 아이는 결국 분유를 먹고서야 잠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안방의 침대에서 함께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제일 먼저 일어난 아이는 연신 뒹굴거리며 엄마와 아빠를 깨웠고, 우리는 이불더미 속에서 이런저런 장난을 하며 일요일 아침의 여유를 즐겼다.

"지금 밖에 눈 많이 왔으니까. 애들 눈 보여줘 어서"

 장모님께서 단톡 방에 올리신 글을 읽고 우리는 바로 아이를 안고 커튼을 열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눈은 벌써 온 세상이 하얗게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창밖의 하얀 세상을 보며 아이에게 눈이라는 것도 알려주고, 창문을 열어 눈송이를 받아서 아이에게 만져보게도 해주었다.

"아빠랑 트리 만들자"

 미리 사두었지만 주중에는 바빠서 설치하지 못했던 트리를 만들기로 했다. 아이는 내가 가져온 신기한 장식들에 연신 감탄을 하며 가지고 놀기 시작했고, 나는 나무부터 설치하고, 예쁜 등도 설치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와 함께 장식들을 하나씩 걸기 시작했다. 산타 인형과 루돌프 인형 알록달록한 다양한 장식을 하나씩 달 때마다 트리는 엄청 근사해지기 시작했고, 아이의 눈도 빤짝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완성된 트리에 내가 전구의 전원을 켜자 아이는 박수를 치며 신나 했다. 아이와 나는 그렇게 인생의 첫 트리를 만들었다.

 우리가 트리를 만드는 동안 엄마는 아이의 밥을 준비했다. 아이는 아이의 의자에 앉아 엄마가 준비해준 아침을 먹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아이는 아주 즐겁게 밥을 먹었고, 어찌나 잘 먹는지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이 더 행복했다.

 아이가 밥을 다 먹자, 나는 아이와 산책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기띠를 하고 아이를 안았고, 아기띠용 방한 겉싸개를 하고 그위에 아주 많이 넉넉한 나의 롱 패딩을 걸쳤다. 아이는 실제로 내 옷 속에 묻혀서 얼굴만 살짝 나오는 상태였고, 그렇게 밖으로 나가 눈 구경을 했다. 아이는 하얗게 변한 세상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고, 나무에 쌓인 눈도 만져보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한참을 바라봤다. 나는 산책을 나온 김에 천천히 걸어서, 동네 빵집으로 향했다. 마침 그곳에는 이제 막 구워진 따끈한 빵들이 있었고, 그중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몇 가지 빵을 골라서 샀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거실에 내려놓자마자  아이는 엄마에게 안겨 애교를 좀 피우더니, 아침에 만든 트리 앞에 가서 신기한 듯 한참을 놀았다. 그 사이에 아내와 나는 내가 사 온 따끈한 빵으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완벽한 아침

 나에게는 그 날의 아침이 그랬다. 세 가족이 함께 같은 침대에서 눈을 뜨고, 올해의 첫눈을 함께 맞이했다. 아이와 첫 트리도 만들었고, 밖에 나가서 눈 구경도 했다. 그리고 갓 구워진 빵으로 맛있는 아침 식사도 했다. 내 눈앞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너무 귀여운 아이가 웃으며 놀고 있었고, 배경에는 하얀 첫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하나도 부족한 게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진짜 아무것도 더 바라는 게 없어.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완벽한 아침 같아."

"뭐야. 왜 이렇게 갑자기 센치해지고 그래?"

"몰라. 그냥 너무 행복해서."

"나도 행복해."

 나는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아침은 근사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아침의 풍경이고, 그게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감정에 대한 표현을 잘하는 편이어서, 결혼하기 전에는 아내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점점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숫자에 연연하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려려니 하지만, 생각해보니 사랑한다는 표현이 줄어든 만큼 행복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회사의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아이가 생기면 아내분과의 사랑이나 행복이 대체되는 거예요? 아님 새로운 사랑이나 행복이 추가되는 거예요?"

"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내와 둘이 있을 때는 라면을 끓여서 아주 맛있는 김치와 함께 먹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그 라면에 맛있는 김치도 있는데, 거기에 적당히 식은 밥까지 더해진 느낌이야. 완벽하지."

 나에게는 아내와의 사랑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벅차게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힘들기는 해도, 무언가 완벽해졌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뭔가 알지 못했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진 것 같은 느낌.

 직접 경험하고 느끼지 못하신 분들은 이 글이 아주 많이 오글거리고, 간지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라면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삶에서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느낄 만큼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다. 지난주 일요일의 그 완벽한 순간의 아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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