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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Dec 21. 2020

엉덩이가 아파요.

초보 엄마 아빠 당황기

 우선 혹시라도 식사 시간에 이 글을 읽으시거나, 지금 손에 먹을 것이 있다면 글을 읽으시는 것을 잠시 미뤄두시기 부탁드립니다.

 아이에게 변비가 생겼다. 원래는 정말 잘 먹고 응가도 잘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2~3일을 응가를 못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고는 했는데, 감기가 걸리고 나서부터는 뭔가 문제가 달라진듯하다.

"항생제를 먹으면 설사를 좀 할 수 있습니다."

처음, 감기가 오래가서 먹게 된 항생제는 그래도 큰 문제가 없이 잘 지나갔다.

"아이에게 물을 평소보다 더 많이 먹여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콧물 약을 처방해 주시던 약사님께서 물을 많이 먹이라고 하셨는데, 찾아보니 콧물약이 변비가 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 약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는 그래도 하루에 한 번씩은 응가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가끔 하루씩 거르게 되면 그다음 날 유독 응가를 할 때 힘을 더 주곤 하고, 나오는 상태도 딱딱하게 나오는 것이다. 뭐 그래도 아주 많이 심하지는 않아서 큰 걱정이 없이 넘어가고는 했었다.

그런데 지지난주쯤. 응가를 하려고 힘을 주다가 엉덩이가 아픈지 나에게 울면서 안기는 것이다. 그리고 내 품에 안겨서 힘을 주고, 한번 울고, 힘을 주고, 한번 울고를 반복하더니 겨우 성공적인 배변활동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상태는 여전히 좀 딱딱하게 나왔고, 그때부터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실은 그 당시에 울면서 달려오는 아이의 모습이나 내 품에 안겨서 힘을 주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걱정을 금세 잊기는 했다.

 그리고 결국 지난주 토요일.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불고기 넣어서 만든 아빠표 오므라이스를 한 접시 뚝딱한 우리 아이는 바나나에 요거트까지 먹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러다 열심히 먹은 덕인지 배에서 신호가 오시 시작했는데, 감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번처럼 조금 울다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평소보다 더 크게 멈추지 않고 울는데, 우리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울면서도 계속 배에 힘을 주고 있었고, 힘을 줄 때마다 아픈지 더 크게 울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 기저귀를 열어보니 아이의 딱딱한 응가가 항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껴있는 것이다. 아이는 그 상태가 아파서 계속 울며 매달렸고, 내가 아이를 안고 달래는 사이에 아내는 여기저기 병원에 전화를 하고는 가까운 소아과로 가자고 했다. 그렇게 급하게 우리는 짐을 챙겨서 소아과로 가고 있었고, 그사이 아이는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어버렸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또 울기 시작했고, 나는 너무 급한 마음에 집에서 챙겨 온 것은 모두 차에 두고 급하게 병원으로 올라갔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차에 가서 짐을 챙겨 왔고, 내가 차에 다녀오는 사이에 아내는 의사 선생님께 들어가 아이의 관장을 받았다. 상황이 해결이 돼서 그런지 아이는 울음이 좀 남아있기는 했지만, 조금은 진정이 된 상태로 엄마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나는 아이를 받아서 꼭 안아주었다. 진정된 아이는 그제야 병원의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보며 웃기 시작했고, 우리는 나머지 정리를 한 뒤에 약국에 들렸다. 집으로 왔다.

"우선 앞으로는 엄마가 집에서 해줘도 된데. 위생장갑을 끼고 로션 같은 것을 바른 다음에 살살 긁어서 빼주면 되는데, 그래도 우리 아이는 심하지는 않은 편이었다고 하더라. 더 심한 애들도 많데. 약은 지어주는데, 독한 약이 아니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되고, 응가 상태가 괜찮아지면 안 먹여도 된데요."

"아.. 그래도 진짜 다행이다."

"야채랑 물 많이 먹이고, 유산균 같은 것도 많이 먹이라고 하는데, 우리 아이 다 잘 먹는데..."

"뭐 그래도 심한 거는 아니라고 하니까 괜찮아지겠지."

 우리는 그렇게 정말 정신없는 토요일 오전을 보냈다. 우리 아이는 아직 심하게 아프거나 갑자기 아픈 적도 없었고, 그렇게 오랫동안 울어본 적도 없어서 우리는 그저 그날의 상황 자체가 당황스럽고 겁나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그 뒤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밥도 잘 먹고 응가도 잘하고 있다. 심지어 하루에 응가도 2번씩이나 하며 상태도 아주 좋아져서 약도 더 안 먹이게 되었다.

 문득 그 날의 사건을 겪고 나니 참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아이의 응가 때문에 엄마 아빠가 허둥지둥거렸던 것도 너무 재미있고, 그 뒤로 다시 응가를 아프지 않게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껏 기뻐하고 기특해하는 우리의 모습도 재미있었다.

 정말 아이는 응가만으로도 엄마 아빠를 쥐락펴락하는 전지적인 존재구나.

 앞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것들로 놀라고, 당황하고, 걱정하고, 울겠지만, 그래도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우리를 부모로 만들어주는 과정들이라고 생각한다. 매번 서툴고, 매번 허둥대고, 매번 두렵겠지만, 그래도 기꺼이 하나하나 잘해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계기를 통해 별거 아닌 아이의 응가도, 아이가 잘해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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