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훨씬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내가 이 말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공감하면서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20대에는 친구들이 너무 중요했다. 그들과 함께하는 술자리, 여행, 의미 없는 만남들, 그때는 시간만 나면, 주말만 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만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점점 뜸해지고 멀어지다가 시간이 많이 흘러 오랜만에 그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의 추억들 때문에 여전히 즐겁게 떠들고 웃고 수다를 떨게 된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의 추억들은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다. 다만, 나는 그래도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다행히 내 친구들은 서로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모임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나의 친구들이 서로의 삶을 갉아먹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간혹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그들과의 의리가 중요해서 정작 자신의 미래를 망치거나 다른 것들을 놓치는 경우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 김영하 작가의 말이 공감이 되기도 하고 공감이 되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친구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성은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가족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연인이나 배우자가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친구나 지인들을 통해서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청소년에서 청년시절 우리는 가족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 시기에는 친구가 더 좋고 연인이 더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되면, 연인은 가족이 되고, 친구의 자리는 회사 동료들이 채우게 된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가족인 된 연인에게는 과거와는 다르게 하지 못할 말들이 생기게 되고, 직장동료는 아무리 친해도 공적인 관계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가깝던 친구들은 각자의 삶으로 인해 점점 더 멀리 떨어져서 살게 되고, 내가 정작 술 한잔 하고 싶을 때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일수록 사회적 외로움은 점점 커 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가끔 혼자 있고 싶기도 한다. 우리에게 얽혀있는 사회적인 관계와 책임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커져가다 보니 우리는 어디에서나 누군가와 얽혀있고 혹은 나의 역할과 책임에 메여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를 가도 온전히 휴식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서른 살쯤에 개인적으로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금요일 밤늦은 퇴근길에 그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집으로 가던 차를 충동적으로 고속도로로 돌려서 밤새 드라이브를 했다. 해가 뜨는 시간쯤에 도착한 곳은 땅끝마을이었다.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이정표만을 보며 계속 달렸던 여행은 일요일 밤에 다시 올 때까지 거제도와 해남을 거쳐 군산과 전주를 거치고 대전과 천안까지 들렸다가 돌아왔다. 혼자 했던 자동차 여행은 노래도 큰 소리로 실컷 부르고 혼자 영화제에 가서 영화도 먹고 맛집도 돌아다니고 심란했던 마음도 정리할 수 있는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만약 10년이 지난 지금 내가 같은 여행을 갈 수 있을까? 나는 가기 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그 여행을 가는 이유와 계획을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만약에 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행 내내 휴대폰을 계속 신경 쓰며 일과 가족을 계속 살펴야 할 것이고, 연락이라도 온다면 언제 다시 돌아와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정만 겉으로는 같은 여행을 한다고 해도 내가 느끼고 누렸던 그 어떤 것도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그때처럼 온전히 혼자임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모순이 아닐까? 사회적으로 역할과 책임을 다하다 보니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 맘 편히 술 한잔 할 사람이 없어져서 외로움을 느끼지만 정작 기회만 된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혼자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욕망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말이다. 심지어 이런 본심마저도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느껴지는 외로움은 자신이 불러 낼 수 있는 직장 후배나 거래처 사람들을 이용해서 채워가며 매일 밤을 의미 없는 술자리로 채워가는 사람들이나, 나는 항상 괜찮다고 말하며 스스로 마음을 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사람들.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정말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내가 정한 룰이 있다. 친구들은 무리에 따라 욕심부리지 않고 1년에 딱 한 번만 만나는 것이다. (경조사를 제외하고) 그 날만큼은 미리 다 양해를 구하고 나서 늦게까지 신나게 논다. 작년에는 20대를 함께 보내던 4명의 친구가 15년 만에 1박 2일로 여행을 갔었다. 각자의 일과 가정 때문에 일정을 변경만 3번을 했고, 출발하기 전날까지도 갈 수 있다 없다를 반복했지만, 정작 떠났던 여행은 삶의 스트레스를 모두 풀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차에서는 그 시절 노래들을 시끄럽게 불러 댔고, 여행지에 가서는 낚시도 하고 회도 먹고 20대처럼 해변가에서 술도 마셨다. 그때 그 친구들과 했던 말은 1년에 한 번이면 1년에 한 번만이라도 이렇게 풀 수 있으면 살만하다고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지만, 1년에 한 번 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는 것이다. 올해는 나에게 아이가 생겨서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1년에 한 번은 뭉치기로 했다. 나는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출장을 활용해서 정신승리를 한다. 업에 특성상 지방으로 가는 출장이 가끔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차와 기차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미리 준비한다. 좋아하는 음악, 보고 싶던 영화, 읽고 싶었던 책, 심지어 좋아하는 간식 등. 비록 목적은 출장이지만 이동하는 시간을 혼자의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되도록이면 출발하기 전에 체크할 것들을 미리 다 정리하고 나서 이동하는 시간만은 온전히 여행인 것처럼 즐기는 것이다. 누군가는 짠하게 볼지 모르지만 나는 나름대로 위안도 되고 힐링도 된다. 거기다 한 가지 더 계획을 말하자면 혼자만의 시간은 집에서 육아를 하고 있는 나의 와이프에게도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혼자 데리고 외출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2주에 한번 정도는 주말에 아이만 데리고 본가에 갈 생각이다.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에게는 손주를 볼 기회를 드리고, 나는 그 핑계 삼아 본가에서 나름의 휴식을 취하고, 와이프에게는 남편과 아이가 없는 온전한 휴식의 시간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내 계획상으로는 모두에게 유익한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소통으로 인해 외로워지고 그 소통으로 인해 혼자 있고 싶어 진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의 손길이 그립고, 때때로 누군가의 손길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실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존재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어쩌면 모든 상황에 칼같이 적용되는 일관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스스로의 마음을 잘 읽고 반을 할 수 있는 융통성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의 마음이 자꾸 왔다 갔다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