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종 Feb 02. 2021

우리 딸이 흥! 했다.

우리 가족도 흥! 하리라

 우리는 처제네와 가깝게 살고 있고, 그래서 자주 왕래를 하며 지내는 편이다. 보통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보는 편인데, 서로 일이 있어 못 보더라도 길어야 2~3주 정도이고, 거의 매주 보는 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자주 보는 사이지만 볼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가 컸다는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한 2주 만에 봤는데, 처조카가 키가 쑥 커져서 우리 아이와 키 차이가 많이 났다. 그래서 엄청 키카 컸다고 말했는데, 이번에 만날 때는 우리 아이가 키가 많이 컸는지 그때보다 언니와의 차이가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어른들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은 정말 금방 크는 것 같다.

 우리는 처조카의 성장을 보고 있어서 그런지, 우리 아이 성장의 예고편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처조카의 성장에 즐거워하고 놀라던 행동들을 우리 아이가 하나씩 해나가는 것을 보면 "우리 아이의 성장이 잘 이뤄지고 있구나"라는 안도감도 들고, "아이들은 다 과정이 비슷비슷하구나." 신기하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아이가 생일파티에서 초를 끄는 것인데, 처조카가 촛불 끄는 것을 한창 좋아해서 우리는 만날 때마다 어디든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르며 아이에게 초를 끄는 기회를 만들어 주곤 했었다. 그런 놀이가 이제는 우리 아이의 차례가 되어서 요즘 우리 아이가 촛불을 끄는 것을 그렇게 좋아한다.

 아이의 수많은 발달과정 중에서 요즘 우리가 가장 놀란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오빠! 우리 아기 흥! 한다."

"뭐?"

"대박이야. 흥! 을 할 줄 알아!"

 얼마 전에 아이가 코감기가 걸렸을 때, 우리가 가장 간절히 바라던 것이 바로 아이의 흥!이었다. "코안에 들어있는 콧물을 아이가 빼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답답하지 않고 시원할 텐데.."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고, "아이가 흥! 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실제로 많이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아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서, 아이가 스스로 흥! 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아이를 울리면서까지 콧물을 빼주는 도구를 사용하고는 했는데, 오늘 아내가 아이를 씻기다 보니 아이가 스스로 흥! 을 했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배웠나? 너무 신기하다."

나도 이 상황이 너무 신기하고 기특해서, 밥을 먹이고 내가 얼굴을 씻겨줄 때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켜봤다.

"흥! 해봐 흥!"

"흥!"

 아이는 정말 기가 막히게 그 조그만 코로 흥! 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별거 아닌 것에 한참을 웃고, 엄청 기특해했다.

"아! 우리 아기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하루하루는 안 가는 것 같아도 지나고 나면 어느새 많은 시간이 흘려가 있고, 우리는 가끔 "우리도 많이 늙어 가는구나." 생각을 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부모가 더 빨리 늙는다고 느끼는 것은, 아이를 케어하는 것이 많이 힘이 들고 고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부모가 부모 스스로의 얼굴을 보고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하루 종일 아이의 얼굴과 아이의 행동에만 모든 관심이 가 있고, 예전에 우리처럼 우리의 얼굴을, 우리의 몸을, 우리의 마음을, 살펴볼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난 후 문득 자신의 모습을 살펴봤을 때,

"아 나도 많이 늙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이를 낳고 함께 하는 것은 아이의 "흥!"에 우리의 "흥!"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의 작은 것에 기뻐하고 감탄하며, 시간보다 소중한 추억들을 새겨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가 그동안 느꼈던 그 어떤 흥! 보다도 더 신나는 흥! 을 즐길 수 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우리 딸이 흥! 했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가족도 그 누구보다 더 신나게 흥! 할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드디어 본격적인 심장어택이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