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종 Feb 04. 2021

음식은 무사합니다

친절이 필요해

  나는 배달을 잘 시키지 않는다. 하고 있는 일이 그래서인지 몰라도, 배달을 시키기보다는 주문을 하고 찾아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고, 만약에 배달을 시켜도, 되도록이면 엘리베이터에 나가서 음식을 받아오는 편이다. 그들에게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몇 발자국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 날씨가 궂은날은 더더욱 배달을 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데, 그날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는 부모의 손길이 모두 필요했고, 우리는 배가 고프지만 무엇인가를 해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지만, 동네 찜닭집에서 배달을 시켰다. 한 5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안내를 받고 우리는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음식은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우리는 20분이 더 지나서야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저 주문한 음식이 아직 안 와서요."

"아 고객님 죄송합니다. 기사님께서 아까 출발하셨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제가 확인해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흔하게 하는 "출발했습니다"의 대답에 나는 그래도 누락은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매장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기사님께서 배달을 가시다가 사고가 나신 것 같아요. 큰 사고는 아니어서 처리 중인데 조금 늦어지고 있다고, 바로 가져다 드린다고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가슴이 덜컥했다. 내가 한 주문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고, 사고가 났다는 기사님의 상태도 걱정이 됐다. 다만, 큰 사고는 아니라고, 오신다고 하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전화가 한통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배달기사입니다."

"아 예."

"제가 가다가 사고가 나서요. 좀 늦어지고 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그런데 음식은 무사합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사고 처리만 되면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 예.. 몸은 괜찮으세요?"

"아 예 괜찮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져다 드릴게요."

 나는 그 전화를 받고 순간 멍한 기분이 들었다.

 "음식은 무사합니다."

 그 기사님은 본인이 사고가 난 상황에서도 늦어진 시간과 식어가는 음식이 먼저 걱정된 것이다.

"음식은 무사합니다."

 그 무사한 음식은 20분이 더 지나서 나에게 배달이 왔고, 초인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엘리베이터로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기사님은 다치신 곳이 없어 보였고, 나를 보자마자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며 음식을 전달해주셨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렇게 무사히 도착한 음식은 맛이 없었다. 이미 1시간 50분이나 지난 시간 때문인지, 빗속에 식어버린 온도 때문인지, 아니며 원래 그 집의 레시피가 내 입맛에 안 맞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참 맛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떠한 불만도 제기할 수 없었다. 이 빗속을 사고까지 나면서 배달해주신 그분의 수고와 연신 사과를 하던 사장님과 기사님의 모습들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그 일을 통해서 돈을 벌고, 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배달을 하는 것, 내가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것이 내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만큼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다. 그들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하려고 해도 그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며, 누군가 우리를 대신에 빗속을, 눈 속을, 추위와 더위속을 달리고 있기에 우리는 그 길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심치 않게 배달기사님들이나 택배기사님들에게 갑질을 하는 사건들이 터지곤 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사님들의 일을 무시하고 비하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참 우스운 일이다. 사람은 평등하다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그들의 삶이 결코 가치 있는 삶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으로 하는 말이다. 참 후진 삶이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책임감을 가지고 누군가를 위해 모진 날씨를 뚫고 일하는 그들은 누구보다도 뜨거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친절이 필요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지만,

그들에게 "기사님"이라고 정확한 호칭을 불러드리는 것!
그들에게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전하는 것!
그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어 보는 것!

 우리 아이는 요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기사님들은 신기한 것을 많이 달고 있다 보니 유난히 좋아해서 꼭 인사를 하곤 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만난 모든 기사님들은 아이의 인사에 아주 밝게 웃으며 같이 인사를 해주신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 덕에 그분들에게 "수고하세요"라는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딱 아이들처럼, 아무런 고정관념 없이 그들의 수고에 그저 감사인사를 할 수 있는 친절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딱 아이들처럼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