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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Feb 16. 2021

주차비 100원

그리고 호박약과 3개

 요즘 현금을 쓸 일이 참 없다. 거의 모든 것을 카드로 결제하다 보니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일이 없고, 심지어 카드 결제마저도 휴대폰으로 다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갑의 존재가치가 없어져 버렸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얼마 전부터는 운전면허증도 휴대폰에 넣어놓고 나니 정말 내 지갑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다만 가끔 현금이 없어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어 노점상에서 군것질을 하거나 물건을 사게 되는 일. 발렛파킹을 해주는 곳에 현금으로 결제해야 하는 경우. 그리고 카드가 되지 않는 주차장이다. 요즘에는 대부분이 현금결제밖에 안돼도 계좌이체가 되기 때문에 크게 당황스러운 일들은 벌어지지는 않지만, 그나마도 금액이 애매한 경우에는 카드결제가 돼도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얼마 전 일이다.  외근을 나갔는데, 근처에 주차할 곳이 변변치 않아서 여기저기를 한참 헤매다가 겨우 주차장을 발견했다. 다행히 그렇게 멀지는 않아서 급하게 주차를 하고 이동하는데, 뒤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주차안내원분께서 질문을 하셨다.

"얼마나 걸려요?"

"아 한 30분 정도요."

"예 다녀오세요."

 업무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는 상황에서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아서 그렇게 대충 대답을 했다. 그런데 막상 주차를 하고 걸어가 보니 목적지가 아주 가깝게 있었고, 심지어 일도 아주 금방 끝나서 주차 한지 10분도 안돼서 돌아오게 되었다.

"저 나갈게요. 얼마일까요?"

"금방 오셨네?"

"예 생각보다 일이 금방 끝났어요."

"100원"

"예?"

 아주 당황스러웠다. 법인차량을 타고 와서 차에도 현금은 없었고, 금액이 너무 적어서 카드가 되는지 여쭙기도 민망했다. 그런 나의 상황을 눈치채셨는지, 주차안내원분께서 먼저 물어보셨다.

"동전 있어요?"

"아.. 아니요.. 저 혹시.. 카.."

"아 그럼 됐어요. 다음에 줘요. 다음에"

 순간 너무 고마웠다. 정말 얼마 되지 않는 100원이라는 돈이지만, 그 돈이 필요한 순간에 없다는 것은 너무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정말 쿨하게 다음을 이야기하시는 주차 안내원분의 배려는 나의 마음을 한순간에 편안하게 해 주었다. 100원의 가치와는 비교도 안되게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차에 탔는데, 문득 아까 간식으로 샀던 약과가 떠올랐다. 그 전날 TV에서 연예인이 약과를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고 먹고 싶어서 샀던 거였는데, 문득 가져다 드리고 싶어 졌다. 나는 약과 3개를 들고 다시 사무실로 갔다.

"저 이거 간식으로 드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금액으로 치면 약과 3개가 100원보다 훨씬 비쌌다. (호박약과라서 개당 5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아깝다거나 내가 손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약과 3개보다 훨씬 큰 배려를 받았고, 그 이상의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100원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에 어긋날 일일지도 모르고, 지불하지 않은 나도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딱 정해진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가끔은 내가 한 배려보다 훨씬 더 큰 보답을 받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내가 좋아하던 시트콤 중에 "청담동 살아요"라는 작품이 있다. 어쩌다 보니 청담동에 살게 된 가난한 소시민의 에피소드들이 나오는데, 문득 그중에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극 중 우현은 어느 날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수첩에서 우현의 연락처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아버지를 아시느냐고 물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수첩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은 없고 우현의 이름과 전화번호만 있다고 해서 분명히 아는 사람일 것 같다는 딸의 말에 우현은 같이 사는 동생과 함께 장례식에 간다. 하지만 영정사진을 봐도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백수이 두 명은 장례식장에 좀 있다 보면 아는 사람이라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좀 더 머무르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장례식장에 조문객은 거의 오지 않았고, 텅 빈 장례식장을 나오는 것이 자꾸 맘에 걸려서 결국 밤을 세게 된다. 그렇게 2일이나 그곳에서 머무른 우현은 이제 포기하고 나오려는데, 뒤에서 대화를 하던 상주들의 걱정을 듣게 된다.

"내일 관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걱정이다."

"누구 부탁할 사람 없어?"

"누가 있어. 있으면 여기가 이렇게 휑 하겠니."

 마음이 약한 우현은 결국 그다음 날 새벽. 발인날 관까지 들어주게 되고, 장지까지 가서 장례식을 마무리한다. 그렇게 돌아올 때까지 우현은 고인이 누구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시트콤에서는 나중에 고인과 우현의 인연을 보여주었다. 우현이 어느 날 버스에 탔는데, 버스카드에 잔고가 없는 것이다. 꼭 급하게 가야 할 곳이어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더니, 그 고인이 되신 분께서 앞자리에 앉아 있다가 대신 버스비를 내주신 것이다. 우현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연락처를 주시면 꼭 갚겠다는 말을 하는데, 그분은 한사코 거절하신다. 그 둘의 실랑이는 결국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그럼 그쪽 이름이랑 연락처를 여기 적어줘요. 정말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전화할게."

우현이 그분이 내미는 수첩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던 것이다.

 물론, 드라마고 허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잘 짜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이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의도치 않았던 작은 친절이 자신의 마지막 길을 슬쓸 하지 않게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친절은 가끔 금전적 가치나 서로의 손해나 이득을 넘어서는 의미를 만들어 낼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의미들은 처음의 작은 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커지는 경우들이 있다. 우리는 그래서

친절이 필요하다

 계산하지 않은 나의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근사하고 따뜻한 하루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친절은 베풀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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