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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Mar 25. 2021

기꺼이 불편할만한 엄청난 식당을 찾았다

친절이 필요해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지요?"

 꼭 가고 싶던 곳이었는데, 예약이 다 차있는 바람에 가지 못했던 식당이 있었다.  다시 방문할 기획가 생겨 전화를 하니 나를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기본적으로 적어도 2주 전에는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는 이곳은 한 타임에 한 팀만 받아, 하루에 정해진 손님만 받고 있기 때문에 예약을 하기에 쉽지가 않다.

작년 11월에는 내가 이곳을 안 지 얼마 되지가 않아서 1주일 전에 급하게 전화를 했었다. 우선은 안된다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취소가 나오면 연락해주겠다며, 우리에 대한 정보를 정말 자세히도 물어왔다. 그런데 그런 나를 기억해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방문했던 고객도 아니고, 예약을 하려다가 못해서 오지도 못했던 사람인데 말이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것은 내 이름을 묻지도 않은 것이다. 전화를 받는 순간 나를 알고 있었다.  

"저희는 아주 어린아이들이 있었어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이상 저희는 아이도 한 명의 고객으로 여기고 대접하고 있습니다."

 예약을 위한 통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이었다. 실제로 이번에 방문을 하니 아이들을 위해 밥을 따로 지어주시고, 아이들 식기에 밑반찬과 냉이된장국을 맛스럽게 담아주셨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같이 좋은 식사를 대접받은 것이다.

 이곳은 참 불편하다. 예약은 적어도 2주 전에 해야 하고, 시간도 한 번에 한 팀만 받다 보니 원하는 시간대를 예약하기가 어렵다. 예약은 메뉴를 미리 정해서 선불로 완납을 해야만 완료가 된다. 게다가 위치는 서울에서 3시간이나 떨어진 곳이니 그 근처로 여행이라도 가는 길이 아니라면 참 쉽지가 않다. 심지어 예약시간에 맞게 찾아가 보니 뚝 떨어진 시골이지만 주차장도 없고, 건물은 아주 오래된 좁은 한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근사한 식사를 하고 왔다. 이 모든 불편들을 기꺼이 감수하고라도 다시 또 오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해 주었던 점은, 그 어느 식당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정성과 친절을 느꼈기 때문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젊어 보이시는 사장님께서 자리로 안내를 해주신다. (내가 젊어 보인다고 하는 것은 식사를 하는 동안 나눈 대화에서 느껴지는 연륜이 나이가 좀 있으신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훨씬 나이가 있으실듯하지만 보이는 모습은 참 단정하고 젊어 보이셨다.)

 자리에 앉으면 당귀를 넣어 끊인 차를 먼저 주시고, 이어서 식전죽을 내어 주신다. 기본적으로 이곳에서 직접 재배한 식자재들을 사용하시고, 구매하는 경우도 깐깐하게 따져서 최고급 식재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오는 모든 음식은 재료부터 조리법까지 차분하게 알려주신다. 그러다 보니 음식 한입한입을 더 집중에서 느껴보게 되고, 허겁지겁 먹는 식사들과는 다르게 음식의 깊은 맛을 더 느껴볼 수 있는 기획가 되기도 했다.

 "이 김치는 우리 가족의 모든 계절이 담겨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아무런 농약도 쓰지 않고, 건강하게 길러내고 있습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언제나 드실 수 있도록 향어를 백숙으로 만들어 대접하고 있습니다."

"감자전은 뜨거울 때는 그냥 드셔 보시고, 조금 식으면 간장에 찍어 드시면 본연의 맛을 더 느끼실 수 있습니다."

"들기름은 저희가 직접 재배한 들깨를 짠 것인데요. 향을 기억하시면 다른 들기름을 고르실 때 좋은 기준이 될 것입니다. "

"1kg 30만 원이 넘는 최고급 당귀를 두뿌리나 넣었습니다."

 내가 식사를 하는 내내 들었던 기억에 남는 말들이다. 음식은 순서대로 하나씩 내어주시고, 가져다주실 때마다 재료에 대한 소개와 조리 방법, 맛있게 먹는 법들을 차분하게 설명하여 주신다. 그리고 그 말들에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고객에 대한 배려가 그대로 전해져서 식사를 하는 내내 내가 귀하게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 주신다.

 음식의 맛들은 하나하나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린, 자극적이지 않은 깊은 맛을 내고 있었고, 정성스럽게 마련된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쉽게 더 달라는 말도, 귀한 음식을 허무하게 남기고 올 수도 없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식당을 나온 우리는 그 모든 불편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친절로 마비되어 있었다.

 이곳은 아주 많이 불편한 곳이다. 하지만 이 곳의 진심과 친절이 그 모든 불편을 기꺼이 감당하게 해주고 있다. 물론 모든 식당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각자 자기만의 진심과 친절은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많은 불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불편이 과학자를 만나면 기술이 되고, 사업가를 만나면 서비스가 된다. 그리고 그 불편을 잊게 만드는 친절을 만나면 추억과 행복한 시간이 남는 것 같다.

 세상의 수많은 불편들은 우리의 친절로 조금은 잊게 할 수 있다. 그 수많은 불편들을 기꺼이 받아 드릴수 있을 만큼의 행복한 기억들을 서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우리에게는 친절이 좀 더 필요하다.

"친절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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