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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Mar 16. 2021

차 안에서 보쌈을 먹게 되다니

아이가 선물한 보쌈 데이트

 아이에게 새 신발을 사줬다. 불이 들어오는 아기 상어 신발인데, 아이는 이 신발을 사준 후부터 집에 들어가기도 싫어하고, 나한테 안겨 있는 것도 싫어한다. 걸을 때마다 불이 들어오는 것이 신기한지, 걷다가 허리를 숙이고 신발을 한 번씩 만져보기도 하고, 신나게 뛰어다니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예전보다 더 외출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지난주 토요일에도 아침에 우유를 사러 동네 마트에 가기도 했고, 저녁에는 조명이 잘 되어있는 공원에 가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아이는 흥분해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좋아했고,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일요일에는 쇼핑을 할 필요가 있었다. 아내는 출퇴근을 위해 옷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쇼핑을 하지 못하곤 했다. 마침 집 근처에 큰 쇼핑몰이 생겼고, 그곳에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도 많이 있어서 가보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여기저기 장식되어 있는 풍선에 관심도 보이고, 사람들이 데려온 애완동물에도 관심을 보였다. 역시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신나 했었고, 생각보다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우리의 걱정도 조금 수그러들었다. 아내는 본격적으로 쇼핑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아이들이 있는 놀이방과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놀고 있는 아이 중에 우리 아이가 제일 어렸는데도, 우리 아이는 기가 죽지도 않고,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아내는 그동안 오랜만에 혼자만의 쇼핑을 즐겼고, 다행히도 필요한 것들은 살 수 있었다. 나도 연신 아이가 노는 것을 핸드폰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고, 놀이방에서 나와서는 아이에게 책도 여러 권 읽어 주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보니 시간이 꽤 많이 흘러 있었다. 그나마 아이는 집에서 나올 때 싸온 간식들로 꾸준히 요기를 해서 배가 고프진 않아 보였지만, 아내와 나는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쇼핑이 끝난 아내와 만나서 우리는 바로 근처에 있는 보쌈집에 전화를 했다. 나가는 길에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아기 재우고 먹어야겠지?"

"그렇지. 아무래도"

우리는 가끔 아이를 먼저 먹이고 나서 우리도 그 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고는 하는데, 아이는 자기는 다 먹었지만 여전히 엄마 아빠가 먹는 음식들에 관심이 많아서 아이를 감당하며 밥을 먹는 것이 쉽지가 않다. 심지어 보쌈은 더더욱 그 상황에 어울리는 메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보쌈은 쌈도 싸서 먹어야 하고 이것저것 함께 먹는 것도 많은데, 그런 상황 자체가 아이가 장난치기 딱 좋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와 함께 먹는 것은 기대도 하지 못했고, 그저 아이가 밥을 먹고 금세 잠이 들면 그때 우리가 보쌈을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아이가 차에서 잠이 들었다. 오후 내내 놀이방이랑 도서관에서 뛰어놀았기 때문에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아이는 차에 탄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대로 잠이 들었고, 우리는 집에 돌아오는 길이 조금은 편안했다. 그런데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차에서 먹을까?"

잠시 우리 사이에서 정적이 흘렀고,

"나쁘지 않아. 괜찮을 것 같아."

 우리의 웃음이 빵 터졌다. 우리에게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보쌈을 먹는 것은 아주 어려운 미션이었는데, 아이가 자고 있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차에서 먹는 것이 훨씬 수월한 미션인 것이다. 예전에 결혼하기 전에 차에서 데이트를 하던 일이 많아서 차에서 햄버거나 샌드위치 정도는 먹는 것이 익숙했다. 물론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아이가 잠이 들면 드라이브 쓰루에 들려 햄버거나 커피, 샌드위치 등을 먹은 적도 많다. 그런데 보쌈이라니.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꽤 좋은 생각이었다. 아이는 어차피 너무 신나게 뛰어 논 후유증으로 세상모르게 자고 있고, 우리는 배가 고팠다. 아이가 깨지만 않는다면 식탁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여유 있게 먹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파트 옆에 있는 성당 앞쪽의 골목에 주차를 하고, 포장해 온 보쌈을 펼치기 시작했다. 비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아이가 깰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가 잘 잠드는 소리인 파도 소리를 켜놓고 조심조심 포장을 풀었다. 마늘이나 쌈무들은 과감히 포기하고 서비스로 나온 콩나물 국도 아예 뜯지도 않았다.

 " 맛있다."

 " 하하하하하"

 먹다가 웃다가 먹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는 상황인 것이다. 집이 보이는 골목길에 차를 세워두고 숨죽여서 보쌈을 먹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쌈은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고, 아이는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여하튼 차에서 파도소리 들으면서 먹으니까 바닷가에 온 거 같다. "

 "그러네"

 아이와 함께 살아가다 보니 이런 날들도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만 가끔은 아이가 없는 공백도 행복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 아이의 목소리와 몸짓이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자고 있는 모습이 제일 예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엄마 아빠 보쌈 먹으라고 차에서 곤히 잠을 자는 아이는 얼마나 이뻤겠는가? 심지어 마치 자는 척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엄마가 마지막 보쌈을 입에 넣는 순간 아이는 잠에서 깼다. 나는 후드득 정리를 하고 아내는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차 안에서의 보쌈 데이트는 끝이 났다. 아이는 그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준 효녀가 되었고, 우리는 오랜만에 나름 오붓하게 식사를 한 소중한 추억이 생겼다. 아이가 잠이 들지 않아도, 그래서 아이를 재우고 조금 식은 보쌈을 먹었어도, 우리는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소소하게 만들어진 기회는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준 것 같아 더 흐뭇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말 별에 별일이 다 생기는 것이 그래서 다양한 추억이 생기는 것이 바로 육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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