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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Apr 01. 2021

이직보다 어려운 어린이집 옮기기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 아주 적응을 잘했다. 처음, 한 일주일 정도는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 울기도 했지만, 선생님들의 말에 따르면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금세 친구들과 어울려서 잘 놀았다고 했고, 심지어 그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선생님만 보면 품에 쏙 안겨서 쿨하게 인사를 하곤 했다. 우리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아이가 대견하기도 했고,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에 감사해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의 선생님들은 아주 선하고 현명해 보이셨고, 우리 아이를 너무 이뻐해 주셔서 자기 조카의 옷들도 아이에게 물려주시기도 했다. (선생님은 혹시나 우리가 불편해하실까 봐 조심스럽게 주셨는데, 우리는 그 맘이 고맙기도 하고, 정말 예쁘고 좋은 옷들만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원장 선생님께서 전화가 오신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린이집을 옮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이를 너무 잘 봐주시던 담임선생님까지 모두 옮기신다는 말에 우리는 갑자기 걱정이 태산이 되었다. 물론, 원장 선생님께서는 새로 오시는 원장 선생님과 단임 선생님에 대한 정보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주시려고 노력하셨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대한 도움을 주시겠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아내가 처음 이 어린이집을 선택할 때는 주변에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기도 하고, 직접 여러 군데의 상담을 받아보기도 하며 선택한 것이어서 기본적인 확신이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선생님이 바뀌게 되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존의 원장 선생님께서 새로 오시는 선생님들의 예전 어린이집 평판들을 잘 알아봐 주셔서 안심하셔도 될 것 같다고 얘기해주셔서 그래도 조금은 안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의 선생님이 바뀌는 것이고, 아이에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어서 솔직히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때 때마침 회사 동료로부터 회사 근처에 있는 다른 어린이집을 소개받게 되었다. 그곳은 본인이 직접 아이를 보내 봤기 때문에 기본적인 검증이 되어 있는 곳이었고, 심지어 우리가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도 더 좋은 위치에 있었다.

 우리는 고민이 되었다. 어차피 선생님들이 달라질 때, 같이 어린이집을 옮기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선생님들은 바뀌지만 그래도 어린이집이라는 환경과 친구들을 동일하니 최대한 혼란스럽지 않도록 그대로 보내는 것이 나을까? 우리는 정말 고심을 하다가 후자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 사이 아이는 새로운 선생님들께도 적응을 잘해서 즐겁게 다니고 있었고, 우려하던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게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생각은 또다시 사소한 것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우리처럼 쭉 이어서 다니고 있었지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이 하나씩 안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던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긴 것이었고, 아이와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 대부분이 신발장에서 이름이 없어졌다. 심지어 새로운 아이들이 더 들어오지도 않아서 아이는 다른 아이 한 명 하고만 하루 종일 지내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때부터 다시 새로운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더 많은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어울리며 놀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 어차피 선생님도 바뀌고 친구들도 바뀌었는데, 우리도 빨리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내와 나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의 의견들은 다 제각각이었고, 아내의 친구 중에 어린이집의 선생님이었던 친구의 조언까지 들어도 명쾌한 답은 나지 않았다.

"그럼 우선 그 소개받은 어린이집부터 전화해보고 상담을 받아봐. 그리고 결정하자."

 막상 우리가 옮기기로 마음을 먹어도 자리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으니, 나는 아내에게 먼저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상담을 받는 아내는 그곳에 다행히도 자리도 있고, 선생님도 예전의 그 원장 선생님 같은 느낌이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쉽지는 않았지만, 옮기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왕이면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하는 마음과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었으면 좋겠다는 기준으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옮긴다는 말씀을 드리고, 하루하루 아이를 보내다 보니 새로 오신 선생님들께서 아이를 이뻐해 주시는 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이를 옮기기로 하고 난 후에 기존에 어린이집에도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우리의 결정이 맞는 것인지, 계속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를 마지막으로 어린이집에 데리고 간 날. 새로운 원장 선생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세상에 없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와 짧은 만남이지만 행복했어요^^  헤어짐이 너무 아쉬워요~ 언젠가 기회가 있음 만날 수 있는 날을 바라며.. 귀염둥이가 어디에 있든 늘 건강하고 더 예뻐지길 바라며 꼭 기억하고 많이 생각날 거예요~♡ 특히 애교짱! 귀욤 짱! 그동안 믿고 지지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늘 행복하시고요~♡]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오면서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그리고 뭔지 모를 감정에 울컥하기도 했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우리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니 어쩌면 평생 모를지도 모른다. 어차피 우리는 두 개의 길을 모두 가볼 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우리 아이는 어디에 가서도 잘 적응할 것이라는 믿음과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안 좋은 선생님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정말 아끼고 사랑해주신다는 믿음으로 결정한 선택을 믿고 가는 것뿐이다.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을 옮기는 것이 내가 이직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이 힘든 것 같다. 나의 이직이야 내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충분히 고민해보고, 그 결정에 대해서도 내가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선택 후에는 쿨해질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을 옮긴다는 것은 아이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부모들의 선택이고, 그 결과는 오로지 아이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결정의 과정에서도 결정을 하고 난 후에도 절대 쿨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아이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처음 갔다. 아직은 첫날이라, 2시간 정도만 엄마와 같이 가서 놀다가 온 것이 다였다. 그것마저도 신경이 쓰이던 나는 아이가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잠시 어린이집에 갔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나와서 엄마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새로운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잘 만났어?"

"응"

"어때? 좋아?"

"응"

"내일도 가서 친구들이랑 새로운 장난감 가지고 놀 거야?"

"응. 우와~"

 우리의 고민이 무색할 만큼 금세 적응하고 좋아해 주는 아이의 대답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물론, 그게 아직은 아무것도 몰라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 그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이에게 항상 좋은 선택만을 해줄 것이라는 자신은 없다. 다만, 앞으로 아이를 위한 그 어떤 선택이라도 아주 치열하게 고민하고, 되도록이면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이의 의견을 잘 반영해서, 조금이라도 아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해줄 수 있는 부모가 돼주고 싶다. 아무리 그 과정이 힘들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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