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마음은 갈대

날아가는 새들 바라보며

by 박희종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직장생활의 위기는 보통 3,6,9,12라고들 한다. 입사하고 3개월, 6개월, 9개월, 12개월에 한 번씩 흔들리는 위기가 온다는 뜻이고,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도 3년에 또 한 번 6년에 또 한 번 3년 주기로 온다는 말이다. 나 역시 비슷한 시기에 위기를 겪어왔고, 잘 넘기고 마음을 잡았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그렇게 다시 내 머릿속을 뒤집는 시기들이 오곤 했다. 그중에 나는 실제로 퇴사를 한 경우도 이직을 한 경우도 있다. 저 심리를 이제 직장생활을 10년 넘게 해 본 선배 입장에서 추론해본다면, 입사 1년 차는 매달 고민을 수밖에 없다. 야심 차게 입사는 했지만 첫 달은 교육에 인사에 적응하느라 지나가고 두 번째 달에 이제 업무를 좀 배우다 보면 그때서야 내 업무의 사소함과 부피를 함께 느끼게 된다.(별거 아닌 잡무가 엄청나게 많다) 그렇게 세 달째가 되면 고민이 시작된다.

"내가 과연 여기서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일 하려고 그렇게 공부를 해서 취직을 했나?"

하지만 막상 힘들게 들어온 직장이다 보니 결정은 하지 못하고 고민하다만 보면 네 번째 달을 맞이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일도 조금 손에 익고 선배들이나 동료들과도 친분이 생기기 시작하면 서서히 전우애가 싹트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역시 길게 가지는 못하고, 다섯 달 여섯 달을 맞이하게 되면 슬슬 회사의 시스템이나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다른 회사에 들어간 친구들과의 비교도 시작되니 슬슬 또 나의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들어온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면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들이 술을 사주며 말리기도 하고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만류하기도 한다. 그렇게 또 반년이 지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7,8개월은 나도 모르게 지나간다. 하지만 9개월째가 되면 내가 취업을 준비하던 그 시기가 돌아오고

"그때 거기만 붙었어도! 그때 그 면접에서 대답만 잘했어도"

어려가지 후회들로 다시 마음이 살랑거리게 된다. 또 아직 취업을 못한 친구나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 보다 보면 다녀야 하는지 나도 같이 고민해야 하는지 또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복잡만 해지다 보면 어느새 12개월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머릿속에

"그래 이제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어 나가자"

라는 생각이 아주 살짝 스치기는 하지만 이미 슬슬 익숙해진 일과 친해진 사람들 때문에 행동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 이후 3년 차는 보통 업무나 일에 대한 매너리즘이 찾아오는 시기이고, 6년 차는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면 번아웃 증후군이 오거나, 혹은 회사 내의 인사나 평가에 대한 불만들이 쌓여 고민하게 되는 경우다. 지금은 이렇게 선배로써 느끼고 목격한 이직 고민의 이유들이지만 실제로 이 모든 이유보다 더 강력한 위기가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옆에서 일하던 동료의 이직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것보다 강력한 흔들림은 없다.
나는 모든 고민과 어려움을 참아가며 버티고 있는데 내 옆에 있던 동료가 갑자기 퇴사를 한다고 하면 내 마음속에는 온갖 생각이 토네이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한다.

"나만 바보처럼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도 좀 알아볼까?"
"회사가 비전이 없는 거 아니야? 나만 모르는 무슨 정보가 있나?"

그나마 이 상황에서 위로가 되는 경우는

1. 이직하는 동료가 나와 거룩스러운 관계였던 사람인 경우
- 실제로 그가 더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한다고 해도 부럽기보다는 저주로 기분을 풀 수 있다.

2. 이직하는 동료가 우리 회사보다는 좋지 않은 회사/조건으로 이직하는 경우
- 이곳을 벗어난다는 부러움은 있지만, "나도 저런 데 갈 거면 얼마든지 갈 수 있어"라는 자기 합리화가 작용한다.

3. 계획이 없는 퇴사이거나 창업을 준비하는 경우
- 그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나는 절대 저렇게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위로한다.

하지만 나를 더 흔들리게 하는 경우들도 있는데

1. 나보다 일을 못한다고 생각했던 동료가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
- 내가 뭔가 시대의 흐름을 잘 읽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함이 생긴다.

2.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던 동료가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
-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들은 다 떠나고 혹시 일 못하는 사람들만 남아 회사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과 나 역시 그 안에 속해있을 것 같다는 초조함이 생긴다.

3. 금수저인 동료가 쿨하게 사직서를 내고 여행을 간다고 하거나 장사를 하겠다고 하는 경우
- 우선 스스로의 자존감이 좀 흔들리고, 버티고 있는 자신이 좀 불쌍하게 느껴진다.

결국 결론은 떠나가는 누군가를 보면서 스스로의 삶에 많은 흔들림과 고민이 생긴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비교를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데 그중에 직장이라는 공간은 어쩌면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받아 같은 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이다. 객관적인 역량이나 조건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라는 뜻인데 그렇게 비슷한 존재의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나간다는 것은 스스로의 가치와 거취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타인을 통해서 스스로를 판단하고 결정하게 된다. 결정 자체는 본인이 하더라도 그 선택에 영향을 주는 대부분은 결국 타인이라는 것이 가장 슬픈 현실일 것이다.
이직이나 퇴직은 나의 삶에 있어서 너무나도 큰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어떻게 맞이하고 대처 해나 가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은 너무나도 많이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페이스를 만들지 못하면 안 된다. 절대 흔들림에 이직을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직이나 퇴직을 선택한다면 이미 그 앞단에 수많은 계획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근무기간에 따른 매너리즘이나 옆 직원의 이직으로 인한 흔들림은 나를 냉정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심지어 내가 무엇인가 견디기 힘들 만큼 부조리한 대우를 받고 있어 이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퇴사의 시점은 내가 내 계획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전 회사에서 이직을 하기 위해 사직의사를 표했을 때 친하던 인사팀 후배에게 퇴직 커널팅을 받았다. 그 후배는 내가 모르고 있던 회사의 사규와 내부 상황들을 고려하여서 남은 연차 소진과 급여 및 상여 퇴직음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퇴사일을 정해 줬다. 그리고 그 당시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보름만 더 시간이 있으면 제일 좋은데 너무 성급하게 나가시는 것 같아요"

나의 경우는 이미 이직할 회사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지만, 퇴직의 경우 각 회사의 여러 가지 사규와 상황에 따라 가장 이상적인 적기가 있다. 만약에 내가 스스로 주체적인 퇴사를 할 수 있다면 그 역시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직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단순 퇴사의 경우는 마지막 급여나 퇴직금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에 있어 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두거나 옮기는 일을 나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지금의 상황을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영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직이나 퇴직은 내 삶의 엄청난 변화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학교도 대부분의 직장도 서울에서 다녔다. 하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경기권에 있는 회사였고,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이직을 결정했다. 그 순간 나의 삶의 터전이 달라졌고, 평일의 삶이 달라졌다. 결혼 전에는 평일의 시간이 많아져서 운동도 다니고 공부도 하게 되었고, 글도 다시 쓰게 되었다. 게다가 그러던 중 사내 커플이 되어 신혼집도 이곳으로 구하게 되니 결국은 경기도민으로 5년째 살아가고 있다. 같은 도시라고 하더라도 이직은 나의 동선을 달라지게 하고 나의 패턴을 변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커다란 변화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심지어 나의 이직 결정에 따라서 나의 꿈이나 인생의 목표가 달라지거나 이루게 될 가능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내가 대학원을 진학하고 싶은데 지금 회사보다는 가고자 하는 학교와 가까운 회사는 퇴근 후 나의 삶과 미래의 꿈을 달라지게 만들 것이고, 내가 나중에 꽃집을 하고 싶은데 양재동 근처의 직장은 내 꿈의 놓지 않을 수 있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심지어 영어학원이나 내가 좋아하는 동호회가 활성화된 지역도 나의 삶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무슨 이직할 직장을 고려하는데 그 동네를 보고 학원을 체크하고 동호회까지 살펴야 하냐?
그리고 이직은 어디 쉽냐? 내 맘대로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내가 선택받아야만 갈 수 있는 것 아니야?"

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나의 이직이 누군가에게 결정되는 것이라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남느냐 가느냐 에서 한정된다.
하지만 나는 이직을 고민하는 많은 후배들에게 아니 취업을 한 많은 후배들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취업에 성공했다고 절대 취업사이트를 끊지 말아라 그곳에는 엄청난 정보가 담겨 있다."

내가 하는 업에서 다른 기업들은 어떤 역량을 원하는지, 어떤 자격증이나 경력이 필수 조건인지, 주로 어떤 포지션의 사람들을 많이 원하는지, 채용공고는 이 시장에서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에 대한 고급 정보가 담겨있는 보물창고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 어떤 역량들을 쌓아나가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는 것은 채용사이트를 계속 살펴보면서 나의 경쟁력 있는 역량을 개발하다 보면 내가 이직을 희망하는 시기에 나에게 더 유리한 곳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그렇게 되는 순간 남느냐도 나에게 중요한 카드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삶의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후회도 미련도 없이 쿨하게 삶을 대할 수 있는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나를 흔드는 바람은 너무나도 수시로 불어온다. 그리고 그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흔들리는 것이 많은 직장인들의 모습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중에 누군가는 그 바람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바다에 떠있는 멋진 요트처럼 말이다. 내 삶의 바람에 휘둘릴 것인가. 이용할 것인가는 불어오는 바람 앞에 움츠릴 것인가? 돛을 준비할 것인가의 차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날아야 할 순간에 누구보다 높고 멋지게 날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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