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우리 집은 참 화목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퇴근길에 먹을 걸 사 오시는 걸 좋아하셨는데, 아버지는 치킨이나 빵을 자주 사 오셨고, 어머니는 과일을 많이 사 오셨다. 이맘때에는 참외를 자주 먹었고, 조금 더 더워지기 시작하면 매일 밤 수박파티를 열곤 했다.
우리는 밤마다 거실에 모여 부모님이 사 오신 야식을 먹으며 TV를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자식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매일 밤 화목한 야식 파티가 벌어지고는 했다.
그때마다 항상 장난스럽게 벌어지던 실랑이가 있었는데, 그건 마지막에 남은 것을 누가 먹느냐였다. 나는 원체 어릴 때부터 먹성이 좋았고, 덩치도 컸기 때문에 매일 밤 벌어지는 야식 파티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먹곤 했는데, 우리 가족은 먹성 좋은 막내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내가 먹는 것에 자연스럽게 양보하곤 했다. 그래서 항상 내가 마지막을 장식하곤 했다. 그런던 중 문득, 나는 엄마가 잘 안 드시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열심히 먹느라 모르던 거였는지 나는 그때서야 알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누나들은 항상 엄마를 먼저 챙기곤 했었다.
"엄마도 먹어."
"엄마 이거 드세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항상 먹고 있다고 대답만 하고는 열심히 드시지 않았다. 노래 가사처럼 그걸 싫다고 하신 것도 아니고, 야식을 넉넉하게 사지 못할 만큼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항상 천천히 드시고, 과일의 꼬다리 부분이나 치킨의 먹기 어려운 부분만 골라서 드셨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인지하면서부터 나는 잘 먹다가도 꼭 몇 조각을 남기곤 했다.
"아. 배불러."
"이거 더 먹어. 하나 남았잖아"
"배불러. 엄마 드세요."
"그럼. 니들 먹어."
"아냐. 배불러 엄마 드세요."
"아냐, 엄마도 배불러."
"그럼 버려요."
"먹는 걸 왜 버려?"
대화가 여기까지 오면 엄마도 뭔가 눈치를 채신 듯, 웃으시며 마지막 조각을 드신다. 이런 장난은 거짓말 같지만 거의 매일 똑같이 반복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일부러 제일 맛있는 부분을 남겨놓고 먹기도 했다. 그럼 엄마도 일부러 닭다리를 들고 내 입에 억지로 넣으려고도 하시고, 난 방으로 도망가서 문을 잠그기도 했다. 우리는 닭 한 마리를 먹으면서도 유난스레 장난을 치며 먹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고, 항상 회상할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어제는 아이와 단둘이 동네 쇼핑몰에 갔다. 새로 생긴 쇼핑몰에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놀이방과 도서관이 있고, 물고기 카페도 있기 때문에 자주 데려가는 편이다. 다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나는 보통 준비를 다해서 오전 10시에 문이 딱 열리면 들어가는 편이다. 그럼 사람도 없고, 아이들도 없으니 아이는 나름 언니 오빠들에게 치이지 않고 맘껏 놀 수도 있고, 조금 뛰어다녀도 덜 걱정되기도 해서다. 그래서 보통은 10시쯤 들어가서 실컷 뛰어놀다가 12시 반쯤 나오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슬슬 많아지기고 하고, 아이도 점점 졸려하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제도 점점 졸려하는 아이를 한고 12시 반쯤 쇼핑몰에서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금세 잠이 들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2시간을 넘게 놀다 보니 지치기도 하고 목이 마르기도 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의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들렸다.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라지 사이즈 콜라 하나와 아이가 일어나서 먹을 새우튀김을 구매했다. 그리고 아이가 차에서 자는 동안 나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시원한 콜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아이는 2시간이나 낮잠을 잤고, 잘 잤는지 기분도 아주 좋았다. 아이가 배가 고플 것 같아 나는 밥을 챙겨주며, 반찬으로 아까 사 온 새우튀김을 잘라줬다. 다만, 아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튀김옷을 벗겨서 새우살만 가위로 잘라주었고, 워낙 새우를 좋아하는 아이다 보니 정말 잘 먹었다. 아이는 내가 데워준 밥과 미역국에 백김치와 새우까지 골고루 잘 먹었다. 특히, 새우는 작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 가지고 간 6조각을 모두 먹었다. 물론 내가 새우튀김을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내가 먹을 것까지 사간 것도 아니었지만, 아이의 밥을 다 먹이고 나니 덩그러니 새우튀김옷만 남아 있었다. 코코넛이 들어가 맛있는 향을 풍기는 튀김옷을 나는 칠리소스에 찍어 맛있게 먹었고, 그날에 새우튀김은 아이는 새우만, 나는 튀김옷만 먹은 상황이 되었다.
나는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이런 마음이었겠지."
부족하다기보다는 내 아이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 더 행복하고, 내가 먹는 것보다는 아이가 맛있어하는 것이 더 즐거운 기분. 우리 아이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신나게 춤을 춘다. 자기 의자에 앉아서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신나게 댄스를 추는데, 새우는 항상 우리 아이를 춤추게 한다. 그러니 새우살이 없는 새우튀김은 나에게 너무 행복한 결말이다. 우리 아이가 아주 맛있게 새우를 먹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엄마도 내가 맛있는 것을 먹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어가는 것들이 있다. 아이가 먹다가 남긴 음식들이나, 유통기한이 살짝 넘긴 것들,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 그런데 그런 음식들이 나의 몫이 되는 것이 하나도 불쾌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그런 것들을 먹어줌으로 인해 아이에게 새로운 음식들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좋은 편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고, 그 와중에 나의 몫을 다시 챙겨주는 아이가 마냥 사랑스러울 때가 있다.
"엄마 꺼!"
"빠빠 꺼!"
아이는 요즘 가끔씩 저 말을 하고 다닌다. 그리고 항상 뭔가를 먹을 때마다, 나의 입에 그리고 아내의 입에 넣어주려고 오곤 한다. (심지어 동화책을 읽다가 과일이나 사탕이 나와도 먹는 시늉을 하며, 우리에게도 주려고 온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가끔 어릴 적 엄마와 했던 실랑이가 떠오른다. 서로에게 더 맛있는 것을 주고 싶던 그 사랑스러운 실랑이가 말이다. 우리에게는 행복한 추억이 참 많다. 나라서 더 많은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행복한 추억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지금의 삶을 얼만큼 행복하게 살아가는지는 우리가 우리의 추억들을 얼마나 잘 떠올리며 살아가는지에서도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때처럼 그런 실랑이는 없겠지만, 이번에 어머니댁에 갈 때는 참외를 한 봉지 사 가지고 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