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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May 07. 2021

생선구이는 어머니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다.

결혼을 하고 가정생활을 하다 보니 미혼일 때는 몰랐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화초를 죽이지 않고 잘 기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냉장고의 음식물들의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는구나.

계절에 맞는 이불을 꺼내고 집어넣는 일이 참 쉽지 않구나.

그런 것들 중에서 또 문득 생각이 든 것은 "생선구이를 집에서 해 먹는 일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였다.

 그나마 요즘에는 생선구이용 팬도 따로 나오기도 하고, 에어프라이어로 간편하게 요리할 수도 있고, 심지어 그 생선마저도 손질이 다된 냉동제품들도 많기 때문에 홈쇼핑의 쇼호스트들의 말처럼 참치캔을 먹는 것만큼이나 간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쉬워졌다고 해도 집에서 생선구이를 해 먹는 일은 여전히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기본적으로는 생선을 사 오거나 냉장고에서 꺼내서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생선 비린내를 감당해야만 하며, 그렇게 꺼낸 생선을 편하게 쓰고 있는 에어프라이어에 굽는다고 하더라도 과정은 쉽지만, 그 안에 튀어서 남는 생선 찌꺼기들과 냄새들. 그리고 기름기를 제거하는 것이 더 큰 일이기 때문에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간단히 프라이팬에 굽는다고 하면, 적당한 온도에서 타지 않게 계속 옆에 서서 구워야 하며, 심지어 얼어있어서 몇 마리가 붙어있는 상황이라면 굽는 과정은 더 녹녹지 않다.

 어제 퇴근길에 아이에게 무엇을 먹일지 고민을 했다. 국은 보통 한 번에 끓여서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어놓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지만, 밥과 함께 먹일 반찬들이 문제다. 어제는 계란말이에 멸치볶음을 김과 함께 주었는데, 아주 잘 먹어서 좋았고, 그 전날에는 장조림과 멸치볶음을 주었다. 오늘은 조금 다른 것을 먹이고 싶은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며 퇴근을 하고 아이와 함께 집에 들어왔는데, 문득 장모님께서 바닷가에 갔다가 먹으라고 사다주신 작은 조기가 생각났다.

"우리 아이, 어머니가 주신 생선 구워서 밥 줄까?"

"어! 좋은데!"

 나는 바로 생선을 꺼내 굽기 시작했고, 아내는 그 사이에 아이를 씻기고, 놀아주고 있었다. 어머니가 사다주신 작은 조기들은 몇 마리씩 소분해두었는데, 아이만 먹이려고 하니 그 몇 마리도 많았다. 꽝꽝 얼어서 서로 붙어있는 조기들을 겨우 힘으로 분리해서 2마리만 떼어낼 수 있었고, 좀 많은듯했지만 더는 떨어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2마리를 굽기로 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중간 불로 조기를 굽기 시작했는데, 혹시나 기름이 튈까 종이 호일로 프라이팬을 덮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뒤집어가며 10분 넘게 정성스럽게 조기를 구웠고, 중간에야 떨어진 두 마리의 붙어있던 부분까지 세심하게 굽고 나니 아주 맛있는 냄새와 함께 근사한 생선구이가 완성되었다.

"내가 생선 가시 바를 테니까. 당신이 아기 밥 먹을 준비해줘."

 아내는 내가 맛있게 구워낸 생선을 식탁에 앉아서 가시를 바르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아내가 발라준 생선을 밥과 김에 싸서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오랜만에 먹는 생선구이에 눈이 커다래지더니 연신 "더 줘"를 외쳤고, 그 말에 힘이 생긴 아내는 더 열심히 생선의 가시를 바르고, 나도 옆에서 부지런히 아이의 입에 넣어주느라 바빠졌다. 아빠가 구워준 생선이 맛있었는지, 엄마가 가시를 발라준 생선살이 부드러웠는지, 아이는 평소보다도 훨씬 밥을 잘 먹었고, 우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집에서 생선구이를 먹는다는 것은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남은 생선 찌꺼기를 처리하는 것부터, 혹시라도 남으면, 남은 생선을 보관하는 것까지 한 끼 식사를 위해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선구이를 해 먹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적에 생선구이를 참 많이 먹었던 것 같다. 고등어구이도 많이 먹었고, 갈치구이도 자주 먹었다. 오늘 아이가 맛있게 먹었던, 조기도 자주 먹었고, 삼치나 임연수어 구이도 많이 먹었다. 그리고 집에서 생선구이를 먹을 때마다, 엄마는 어김없이 옆자리에 앉아 생선가시를 발라주었다. 지금이야 생선가시가 조금 남아 있어도 먹다가 빼고 먹기도 하고, 그냥 씹어서 삼키기도 하는데, 그때는 뭐가 그리 까탈스러웠는지, 엄마가 주시는 생선살에 작은 가시라도 보이면, 큰일이라도 난 듯이 엄마에게 뭐라고 했던 기억도 있다.

 "가시가 너무 작아서 안 보여, 겁나서 못 먹이겠네."

 이제 19개월인 아이에게 혹시라도 가시가 있는 생선을 줄까 봐, 눈을 크게 뜨고 생선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가시를 바르는 아내의 모습에 어릴 적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도 처갓댁에 가거나 본가에 가면, 자주 내어주시는 반찬 중에 하나가 생선구이다. 시장에 갔다가 물 좋은 생선을 보거나, 혹시 나들이로 바닷가라도 다녀오시면 어김없이 자식들을 불러서 맛있는 생선구이를 해주신다. 그리고 어머니도 장모님도 우리의 옆에서 먹기 편하도록 생선가시를 발라주곤 하신다.  나는 몰랐다. 생선구이가 그렇게 귀찮은 음식인지, 아내도 몰랐을 것이다. 생선가시를 바르는 일이 그렇게 집중해야 하는 일인지.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엄청난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왔다. 생선구이는 자식들에게 좋은 영양분을 골고루 먹이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조금 더 쉽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길에 나가면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생선구이지만, 나는  그 음식을 집에서 먹는다는 것이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그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 그 음식을 먹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오늘 아침에도 어제 남은 생선구이에 밥을 먹었다. 작은 새처럼 입을 쫙쫙 벌리며 받아먹는 아이의 모습에 우리는 생선구이의 귀찮음도 생선을 바르는 정성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행복함으로 변했다. 아마 우리의 부모도 그랬을 것이다. 아니 아직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장성해서 한 가정을 꾸린 나와 아내에게 지금도 여전히 생선구이를 해주시고 가시를 발라주시는 것이다. 고소한 생선이 구워지는 냄새와 흰밥 위에 올려지는 폭신한 생선구이의 맛은 그런 어머니들의 정성과 마음이 담겨 있어서 더 깊은 맛을 내는 것이다.  

생선구이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따뜻한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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