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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May 17. 2021

등산을 한 것 정도의 뻐근함

주말 육아 후유증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그냥 등산을 한 정도의 뻐근함이 있어요."

 매일 출근길에 듣는 라디오에서 DJ와 매일 뉴스를 들려주러 출연 중인 기자와의 대화였다. 라디오를 켜자마자 나온 대화여서 우리는 무슨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원래 주말에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등산보다 힘들죠."

 이어지는 대화를 들어보니 그 기자님은 아들 쌍둥이를 기르고 있는 둥이 아빠였다. 아내와 나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정말 웃음이 빵 터졌고, 진지하게 말하던 등산한 정도의 뻐근함이 육아 후유증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아들 형제에 쌍둥이라니..."

 빵 터져서 웃던 것도 잠시, 그의 상황을 인지한 순간, 딸아이 하나도 겨우 기르고 있는 나는 그 기자의 삶에 존경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할 주말은 언제나 고민이다. 되도록이면 아이와 새로운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주고 싶은 욕심과, 주중에 미루고 미루었던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과, 주말인데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매주 어김없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이틀인데, 그 시간이 지나면 또 다가올 5일의 평일이 우리를 더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요즘은 계절이 너무 좋은데, 날씨는 너무 오락가락해서 조금이라도 날이 좋으면 어디라도 나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뭐 물론 날이 좋지 않아서 야외로 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실내의 공간을 찾아내거나 만만한 본가와 처갓댁을 경우에 수에 두곤 하긴 하지만, 매번 주말이 다가오면 항상 고민이 된다.

 "과연 무엇이 아이에게 좋은 것일까?"

 솔직히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걸린다. 맞벌이를 하고 있어 주중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만큼 아이와 주말의 추억을 많이 쌓아주어야 한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럼 또 집안일을 잘하지 못해서 지저분한 환경이 아이에게 좋지 못한 습관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존재한다. 게다가 또 우리가 아이가 자는 시간에 힘들게 집안일을 하고, 주말에는 부지런히 나들이를 다니다 보면 금세 체력이 바닥이 나서, 아이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으니, 이 역시도 아이에게 썩 좋은 영향을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고민 고민을 하며 한주 한주를 보내고 있다. 가끔은 처갓댁이나 본가 찬스를 써써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이의 귀여움을 무기로, 육아의 부담을 나누기도 하고, 가끔은 무리해서라도 사람이 없을 만한 시간을 골라(오픈 시간이나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주로 공략한다.) 아이에게 새로운 곳을 보여주려 노력하기도 한다.

 요즘 내가 제일 만만하게 쓰는 방법은 멀지 않은 곳에 생긴 쇼핑몰을 활용하는 것이다. 아주 넓기로 유명한 쇼핑몰이 집 근처에 생겼는데, 주말에는 어김없이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나는 오픈 시간을 노린다. 요즘 7시 전에 일어나는 아이 덕에 조금만 서두르면 나는 얼마든지 아이를 데리고 오픈 시간에 맞춰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말이면 하루 정도는 서둘러서 오픈 시간에 맞춰 쇼핑몰에 간다. 그럼 거의 사람들도 없고, 특히 아이들도 많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그 안에서 나와 아주 신나게 놀 수 있다. (모든 놀이기구들을 혼자서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그렇게 놀이방과 도서관, 물고기 카페와 동물 모형이 많은 장난감 가게까지 들리고 나면 아이도 지치고 나도 지치는 시간이 온다. 그럼 나는 그곳에 있는 단팥빵 가게에 가서 아이와 함께 빵과 우유를 먹는다. 워낙 먹성이 좋은 아이는 커다란 단팥빵을 하나 다 먹곤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2~3시간이 흘러있고, 나는 그때부터 슬슬 졸려하는 아이를 데리고 쇼핑몰을 나온다. 쇼핑몰의 특성상 오후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그곳에서 나오는 것이 된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하는 일이다. 그동안 아내는 집에서 조금 더 늦잠을 자기도 하고, 그렇게 보충한 체력으로, 그동안 밀린 집안일들을 혼자서 하기도 한다. 뭐가 더 편하고, 뭐가 더 힘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요즘 아이가 한참 재접근기라서 엄마만 보면 안아달라고 조르기 때문에 엄마와의 외출은 모두에게 너무 힘든 미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아이를 맡아서 놀아주고, 아내가 집안일을 하는 것이 암묵적 룰이 되어 있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쇼핑몰에서 나오다 보면 아이는 어김없이 잠에 들어 버린다. 그럼 나는 그동안 드라이브 쓰루 커피숍에 들려 브런치를 사서 차에서 요기를 하기도 하고, 그늘에 차를 세워두고 TV 프로그램들을 보며 쉬기도 한다. 아이는 정말 신나게 뛰어놀았기 때문에 보통 2시간은 자는데, 그 시간이 나에게는 나름의 체력을 보충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그렇게 오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마음도 몸도 좀 홀가분해져서 온 가족이 함께 깨끗해진 집에서 놀기도 하고, 가까운 공원에 산책을 가기도 한다. 물론, 조금씩 아쉬운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우리 부부만의 주말이라면, 우리의 시간은 훨씬 더 여유롭고 근사했을 수도 있다. 늦게까지 낮잠을 자고, 간단히 브런치를 만들어 먹고, 각자가 더 잘하는 집안일을 맡아서 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함께 영화를 볼 수도 있고, 미술관이나 공원에 갔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갔던 그 쇼핑몰에 가서 여유롭게 쇼핑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런 삶에 대한 상상은 아무 필요가 없다. 아이의 존재보다 더 근사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우리의 모든 힘듦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고, 타고난 존재감으로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의 체력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우리의 피곤은 나날이 쌓여가겠지만, 그보다 더 큰 폭으로 우리의 사랑과 행복은 높아져 가고 있다. 그래서 매번 다가오는 주말이 항상 고민이지만, 매번 기대된다.


이번 주는 어떻게 보낼까?

이번 주는 또 어떻게 신나게 만들어 줄까?

 아내와 나에게는 주말마다 어릴 때 나들이를 갔던 소중한 추억들이 남아있다. 우리 아버지는 코펠 대신 커다란 솥과 불판을 싸들고 놀러 다니던 요령 없고 무뚜뚝한 아버지셨고, 장인어른께서는 아이들이 무섭다고 울어도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자고, 고무보트를 타고 먼바다까지 나가시던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아버지셨다. 그리고 그런 추억들은 우리가 서로의 어린 시절 이야기할 때마다 자주 꺼내는 좋은 추억으로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 준다.

 지금은 비록 빌딩 속의 쇼핑몰에서 아이와 놀아주지만, 나도 조금 더 아이가 자라고, 시끄러운 세상이 조금만 더 안전해지면, 요령 없이 무뚜뚝하던 아버지처럼, 짓궂고 장난기 많은 소년 같던 장인어른처럼 더 많은 곳에서 신나는 추억들을 잔뜩 만들어 줄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 부부에게 앞으로 남은 수많은 주말들이 예전처럼 근사하고 로맨틱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아이와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가는 추억들은 우리의 가족을 세상의 그 어떤 황실의 파티보다 화려하고 근사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세상의 수많은 부모들이 월요일이면 등산을 한 것만큼의 뻐근함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뻐근함이 우리 아이들의 즐거운 추억이고, 우리 가족의 행복함에 대가라면 모두 다 기꺼이 그 뻐근함을 감당하고 즐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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