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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un 01. 2021

전쟁 같은 아침

천국의 한가운데서 전쟁을 겪다

"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오늘 아침의 일이다. 감기 때문에 요 며칠 컨디션이 안 좋았던 아이는, 다행히도 오늘은 잠을 잘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서도 울지 않았고, 아침으로 준 빵과 우유도 아주 잘 먹었다. 오늘은 좀 쉬울 거라 생각했다. 이제 남은 건 감기약을 먹이, 씻기, 옷을 입히, 머리를 묶기는 것만 남았으니까.
 
 그런데 내 생각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우선 아이가 씻는 것부터 거부하기 시작했다. 먹던 우유를 들고 여기저기 도망 다니는 것이다. 아이가 빵을 먹는 동안 부지런히 씻고 출근 준비를 마쳤던 나는 다시 땀이 났다. 겨우 아이를 잡아, 욕실 거울에서 장난치는 것으로 꼬셔서 겨우 씻기는 데 성공했다. 아이는 그나마 기분 좋게 장난을 치면서 잘 씻었고, 막판에 자기가 다시 하겠다고 조르는 것을 겨우 데리고 나와 기저귀를 입혔다.

기저귀를 입히자 두 번째 난관이 눈앞에 다가왔다. 아이가 갑자기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불속에 파고드는 것이다.

"다시 자고 싶어?"

"어!"

  여유가 없는 아침시간에 아이가 예상과 다른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다. 아내와 나는 번갈아가며 아이를 달래보기 시작했고, 결국은 아이를 울리고야 말았다. 아이가 우는 동안 엄마와 나는 억지로 약을 먹였다. 약을 먹은 아이는 쿠키로 달래려 했는데, 이번에는 쿠키를 쪼개 준 것이 문제였다.

"큰 거, 큰 거"

 아이는 쿠키를 쪼개지 않고 그대로 먹기를 바랐고, 결국에는 새로운 쿠키를 꺼내 주고 나서야 아이는 쿠키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쿠키를 먹는 동안에 겨우 머리를 묶었고, 그다음에는 못을 입히는 최종관문이 남아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가져오는 옷을 보자마자 질색을 했고, 옷을 입기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또 아이를 울리고서야 옷을 입힐 수 있었다. 내가 억지로 옷을 입히자 엄마에게 달려갔고, 나는 아이가 발버둥 치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서 옷을 거꾸로 입혔었다. 결국 엄마가 잘못 입힌 옷을 벗기고 새로운 옷으로 입힌 다음에야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아이가 옷을 입으면서  것은 곰돌이 젤리로 달래주었는데, 차에 있다는 핑계로 아이를 데리고 내가 먼저 차로 왔다. 아이는 옷은 입었지만 양말도 신지 않았고, 신발도 신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는 카시트에 잘 탔고, 젤리를 하나 주자 기분까지 좋아졌다. 우리의 아침 출근, 등원 준비는 끝이 났다.  

 물론 매일 아침이 이런 건 아니다. 대부분의 아침은 아이가 착하게 도와줘서 밥도 잘 먹고, 옷도 잘 입는다. 다만, 가끔씩 이렇게 전쟁 같은 아침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할 때의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직장인에게 아침은 모두 두렵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집은 그 두려움이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이유는 그런 아침에도 아이가 함께 하는 행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빠에게 먼저 뽀뽀를 해주었고, 선생님 품에 안겨서는 이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집이 생긴 지금이 어쩌면 제일 힘든 시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애교도 늘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빠를 들었다 놨다 한다.

"빠빠 좋아"

"엄마 좋아"

"빠빠 뽀뽀"

"엄마도 뽀뽀"

 아이가 문득문득 좋다는 고백을 하거나, 먼저 내 마스크를 내리고 뽀뽀를 해줄 때면 그 어떤 전쟁 한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된다. 그러니 우리는 기꺼이 이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육아는 치열한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은 가장 행복한 천국 한가운데에서 치러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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