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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un 25. 2021

군입대 20주년-참 쓸모없는 소회

2002.06.25

2001년 6월 25일.


 나는 논산 훈련소로 입대했다. 그 당시 나는 군대를 핑계로 가장 자유분방하게, 그리고 신나게 살던 시기였다. 대학에 들어가 연극을 시작한 이후로 매일 밤, 희곡을 쓴다고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방학이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다 합쳐 1주일이 넘지 않을 정도로,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놀러 다니기 바빴다.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 나는, 운 좋게 sk텔레콤 아이디어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나 신나는 일들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자신감이 넘치고 열정이 들끓던 시절이었다.


"군대만 갔다 오면 이제 훨훨 날아다니겠어!!"


 나는 어서 군대를 다녀와서 나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군대에 갔다. 하지만 입대 후 3일이 지나자 나는 군대를 갔다 온 모든 형들이 존경스럽기 시작했다.


"3일도 이렇게 긴데 2년 2개월을 버텼다고?"


 내가 내심 무시하고 있던 형들이 모두 대단하게 느껴졌다. 군대는 나의 모든 자존심을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바꿔놨고, 나 스스로 이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삶도 적응이 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안에서도 나의 역할을 찾아가며 견디고 있었다.


 첫 휴가를 나오던 날. 많은 친구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친구들은 신촌에서 가장 핫하다는 곳만 나를 데리고 가며, 나의 첫 휴가를 축하해주었고, 나는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그 후로도 친구들은 내가 휴가를 나올 때마다, 항상 나를 우선으로 만나주고 반겨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달라진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의 안부와 군대에서의 일화들이 대부분의 대화 주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그들의 고민이 대화의 주제로 변하고 있었다. 자격증 이야기, 인턴 이야기, 취업 이야기, 연애 이야기... 모두 다 그 당시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


마치 나만 멈춰있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마치 육상 경기에서 모두 각자의 트랙을 열심히 달려가는데, 나만 멀뚱히 트랙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느낌. 나는 그날 바로 서점에 가서 책을 샀다.


 [시나리오 작법], [시나리오 모음집]


 막연하게 시나리오 쓰고 싶다는 생각을 그 감정들이  행동하게 만들었다.  마침 나는 군대에서 개인의 시간들이 조금씩 생기는 시기였고, 무엇인가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하고, 내가 봤던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던 누나에게  부탁을 해서 내가 찾은 시나리오들의 출력물을 휴가 때마다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병장이 되면서 나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병장이 되면서 오물장이라는 재활용 쓰레기 처리장의 관리를 맡게 되어 시간이 아주 많았다. 나는 병장 기간 동안 2편의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전역하고는 우리나라에서 진행하는 모든 공모전에 지원했다.


 결과는 그 어느 영화사에도 연락을 받지는 못했고, 지인을 통해 한 공모전에서 최종 심사까지는 올라갔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나의 최종 성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기간을 통해 내 꿈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20대를 그쪽에서 평범하지 않게 살았다.


 오늘은 내가 군입대를 한 20주년이다. 6.25에 입대를 해서 기억하기도, 다시 떠올리기도 쉽다. 군대는 분명히 내 삶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였고, 그래서 내가 어둠을 싫어한다는 걸 알게 해 준 시기다. 그런 군 시기는 나에게 꿈에 미쳐 살게 해 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줬고, 그 꿈에 미쳐 살던 시기는 미련 없이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나는 참 평범하게 산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내 트랙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멋진 폼은 아니어도, 기록적인 역량을 보이진 못해도, 나는 내 페이스대로 나의 레이스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때의 불안함이  없다.


10년이 지난 후 2031년 6월 25일에는 또 어떤 소감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저 바람이 있다면 그때의 소감도 글로 남기고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여전히 불안하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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