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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Aug 13. 2021

세상의 모든 신과 슈퍼맨들에게

 나는 뭐든지 좀 둔한 사람이다. 음식의 맛이나, 향에도 민감하지 않고, 사람들의 변화를 잘 알아채지도 못한다. 같은 반찬을 몇 번 먹어도 별로 질리지 않고, 가끔 상한 음식을 모르고 먹기도 한다. 심지어 통증에도 좀 둔한 편이어서, 교통사고로 손가락이 부러졌는데도 모르고 잘 자서, 그 다음날 병원에서 골절 사실을 알기도 했다. 원체 예민하다거나, 민감하다는 단어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세상살이가 좀 편한 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반대로 아내는 음식의 냄새에도 보통사람들 만큼 민감하고, 위생적인 부분에도 남들 만큼은 신경을 쓰는 편이라, 내 입장에서는 내가 문제가 될만한 것들을 잘 알려주고, 고쳐줘서 도움이 참 많이 되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보통에 집처럼 적당히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원래 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데 이렇게 둔한 내가 신기할 만큼 민감해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우리 아이의 체온이다. 어젯밤 우리 아이는 일찍 저녁밥을 먹고, 우리와 산책을 가서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집에 와서 아빠와 엄마와 샤워까지 하고 아주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집안일을 하고, 기다리던 드라마를 보면서 쉬려고 하고 있는데, 아이가 잠에서 깬 것이다. 평소에는 금세 다시 잠이 드는 아이가 어제는 유난히도 다시 잠에 들지 못했고, 아내는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안아서 아이를 달래야만 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뒤척이며 잠에 들지 못했는데, 그래도 아이의 기분은 아주 좋아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와 내가 교대를 하고 내가 아이를 안고 재우는데, 한참을 안고 있다 보니, 뭔가 아이의 체온이 이상한 것 같다는 걸 느꼈다. 보통은 아이가 잠들 때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라 더운가 하고 넘어갔을 텐데, 어제는 뭔가 따뜻한 느낌이 컸고, 더운 것과는 다른 열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바로 아이의 체온을 재봤는데, 체온이 38.8도였다.


 우리는 바로 해열제를 먹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이의 컨디션이 좋으면, 아이가 잘 싸우고 있는 것이니, 잘 보살펴주면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아이의 컨디션도 좋고, 해열제도 먹였으니 좀 지켜보자는 마음으로, 번갈아 잠을 자기로 하고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아이를 보기로 하고  내 품에 안아서 재우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장난을 좀 치다 보니 아이에게서 땀이 쫙 나기 시작했다.(아이가 원래 아빠의 배에 기대고 자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아프니까 더 내 위에서 자려고 했다.)  그리고 안고 있던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열이 좀 떨어졌구나."


 다시 재본 아이의 체온은 37.8도였고, 아이는 한결 편해진 상태로 잠이 들었다. 우리는 아이의 옆에서 자면서 수시로 체온을 재보았고, 새벽 3시에도 38도를 왔다 갔다 거리길래, 나는 미지근한 물에 물수건을 준비해서 아이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그렇게 아이의 몸을 닦아주다 보니 아이의 열은 조금 더 떨어진 듯했고, 다시 체온을 재보니 37.4도였다. 아이는 그렇게 열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했고, 우리는 큰 걱정은 하지 않은 채, 아내가 연차를 내고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신기한 것은 모든 것에 그렇게 둔하기만 한 내가, 아이의 체온만큼은 누구보다 기가 막히게 제일 먼저 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우리 아이를 가장 오래 많이 안고 있다 보니, 아이와의 접점이 많아서 더 빨리 알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워낙 소문한 딸바보라 아이랑 함께 있을 때는 항상 아이와 뒹굴뒹굴 거린다.)


 솔직히 아빠가 된다는 것은 신체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다. 엄마들과는 다르게 아빠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나, 태어난 후나 어떠한 신체적 변화도 경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수많은 것들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잠귀가 어두운 것으로 원래 유명했다. 학교 때 엠티를 가거나 공연 때문에 합숙을 할 때면, 아무리 시끄러운 환경에도 아주 잠을 잘 자곤 했다. 잠이 원래 많지 않다 보니까, 최소한의 잠을 숙면해서 자는 편이어서, 손을 대지 않는 이상 나를 쉽게 깨우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거실 너머에 있는 문닫힌 아이방에서의 아이의 칭얼거림에도 아주 쉽게 일어나 달려가곤 한다. 아이가 하는 아무도 못 알아들을 옹아리를 누구보다 잘 알아듣는 능력도 생겼고, 아이의 짐을 바리바리 들고도 아이를 안고 동네 산책을 갈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게다가 이제는 아이의 체온 변화를 기가 막히게 알아내는 능력까지 있는 것이다.  


 아빠는 슈퍼맨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모든 곳에 신이 존재할 수 없어서 신께서 엄마를 보낸 것처럼,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슈퍼맨이 현실에도 가끔 필요할 때가 있어서 아빠를 옆에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모든 아빠들은 평소에는 아주 평범하게 둔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아빠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 그들의 초인적인 능력을 펼치는 슈퍼맨으로 변하는 것이다.


 아이의 존재는 엄마를 신으로 만들고, 아빠를 슈퍼맨으로 만든다. 그리고 아이는 그 엄마라는 신을, 아빠라는 슈퍼맨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나는 모든 가정에 각각의 신화가 쓰이고 있고, 매번 새로운 시리즈의 히어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신화와 히어로 영화에서 시련과 고통이 있듯이, 우리의 육아에도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 힘내자. 세상의 모든 신들과 모든 슈퍼맨들이여.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써내려 가는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그 뻔하고 뻔한 결말을 위해 기꺼이 신이 되고, 슈퍼맨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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