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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Aug 23. 2021

우리의 착각이 시작되었다.

숨길수 없는 팔불출 본능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는다. 아내가 원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이의 정서발달에도 도움이 될까 해서, 아침에는 되도록이면 틀어 놓으려고 한다. 지난주 토요일, 여느 휴일처럼 나는 일찍 일어난 아이와 놀아주며, 유튜브를 통해 우리가 주로 듣는 클래식 모음집을 틀어 놓았다. 아이랑 한참을 놀다가 아이가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밥을 한참 먹던 아이가 갑자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거 내가 좋아하는 노랜데."


그때 나오던 음악은 그 모음집에 마지막 곡인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아이는 밥을 먹으면서도 몇 번이나 말을 했다. 물론, 예전부터 많이 듣던 곡이기는 했기 때문에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시간이 넘게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았는데, 그 곡에만 반응을 했다는 것은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밥을 다 먹고 나서 우리는 외출을 했다. 차에 타서 출발하는데, 핸드폰이 차와 자동으로 연결이 되면서, 아까 그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이 흘러나왔다. 아이는 또 어김없이 말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이게 무슨 악기 소린데?"


"바이올린"


 실은 아이가 얼마 전에 엄마와 책을 보는데, 바이올린이 나온 그림을 보고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아이가 바이올린을 안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걸 사달라고 하는 것도 신기했었다. 그런데 바이올린 곡을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22개월짜리 아이가 바이올린을 기억하고 좋아한다고? 그런데,


"아빠 바이올린 사주세요."


"바이올린 여기다 대고, 이렇게 할 거야"


 아이는 갑자기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이야기했고, 심지어 자신의 어깨를 치면서 연주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한 번도 바이올린을 알려준 적도, 함께 바이올린 연주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물론, 아이가 즐겨보는 뽀뽀로에서 벌새가 바이올린은 연주하는 장면이 있고, 어린이집에서 알려 줬을 수도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신기했을 뿐이다. 아이는 우리가 차에 타고 이동하는 동안 내내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말하고, 자기가 이렇게 연주하겠다고 말을 했다. 심지어 계속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에서 피아노 소리와 바이올린 소리를 정확하게 구분하곤 했다.


"어떡해. 우리가 바이올린 천재를 낳은 거 아냐?"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우리는 엄청난 착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바로 장난감 바이올린부터, 아이용 연습 바이올린에 바이올린 학원까지 알아봤다.


 아마 아주 큰 확률로 우리 아이는 바이올린 천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저 우연일 확률이 높고, 금세 다른 곳으로 관심이 옮겨갈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나는 신이 났다. 아이가 이렇게 무엇인가를 계속 사달라고 의사 표현을 한 것이 처음이었고,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고 반응을 한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가가 되지 않아도, 한 가지 악기 정도는 잘 다룰 수 있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착각들은 참 재미있다. 아이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작은 것들에도 반응해서 우리 나름대로 맘껏 착각의 나래를 펼친다. 또래에 비해 말을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밥도 잘 먹는 것 같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애교가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심지어 음악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착각이 아이를 힘들게 하지만 않는다면, 이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이 모든 착각은 우리가 우리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비교하게 되는 다른 아이들은 우리 아이만큼 자세히 보지도 않았고, 그만큼 오래 관찰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저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우리 아이와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들의 상상은 대부분 착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착각은 우리 아이들에게 엄청난 힘이 될 수도 있다. 아이는 그런 부모님들의 상상을 통해서 자라면서 조금 서툴러도, 조금 느려도, 실수를 하거나,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받아주고 응원해주는 부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부모들에게 이미 진행된 착각은 그 정도 일들로 쉽게 깨어질 환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의 착각이 아이들의 삶에 큰 응원이 되고, 든든한 자존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 역시, 우리 부모님들의 수많은 착각들 속에서 자랐을 것이다. 우리 모두 부모님들의 기억 속에서는 우리는 신동이었고, 영재였고, 미스코리아였고, 장군감이었다. 그러니 그 무한한 신뢰와 착각들이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고 보면 결국, 나는 신동도 아니었고, 영재도 아니었으며, 장군감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내 자리에서 한 명의 몫을 해나가는 어른이 되었다. 결국, 우리 부모님들의 착각이 지금에 나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시 주변에 너무 심한 착각에 빠진 부모가 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라면 이해해주자. 그리고 자신의 자녀가 천재가 아닐까 정말 진지한 부모가 있다면, 그 아이가 힘들어할 정도가 아니라면 맞장구 쳐주자. 결국, 그 모든 과정이 아이에게 그리고 부모에게 아주 의미 있는 시간들이 될 터이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착각을 하며 산다. 그리고 이후의 삶이 그 착각을 철저히 부수는 일이라도 상관은 없다. 그 과정이 결코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로 인해 더 단단해지는 것은 모두의 사랑과 마음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실망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착각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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