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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Aug 31. 2021

딸 가진 아빠의 도전

머리 땋는 아빠

 우리 어머니가 그랬다. 나는 처음 태어났을 때, 머리카락이 굵고 숱도 많아서 하늘로 다 뻗어있었다고. 우리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처럼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머리가 하늘로 뻗어서 아주 신기한 헤어스타일을 만들곤 했다. 너무 신기한 것은 머리를 감으면 당연히 좀 내려와 있지만 말리고 나면, 기가 막히게 다시 하늘로 뻗고는 했었고, 모자를 씌워서 눌러보아도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서곤 했다. 그러던 머리가 점점 자라자,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는 엄마 아빠의 욕심에 머리띠도 해보고, 한 올 한 올 모아 묶어도 봤다. 그런 시기들이 다 지나고,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머리를 묶어줘야 하는 시기가 되었고, 그렇게 딸 가진 아빠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우선 아이가 어릴 때에는 머리를 묶는 것을 너무 싫어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집에 있을 때는 묶어주지 않고 편하게 있었지만, 외출을 하거나 어린이집에 갈 때는 엄마, 아빠의 욕심으로 머리를 묶어주고 싶었다. 아이의 머리를 묶는 것은 워낙 고난도의 미션이라 항상 다양한 것으로 관심을 돌리고 시도하곤 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 덕에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가 아내나 나나 기본적으로 아이의 머리를 묶어줘 본 적도 없어서,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도 심각했다. 우리가 하는 고민이야 기껏해야 두 개로 묶냐? 하나로 묶냐의 수준이었고, 그나마 아내는 여성이다 보니 머리를 위쪽에 묶는 게 이쁜지 아래로 묶는데 이쁜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만나는 여자 아이들의 화려한 머리들을 보고 있자면, 미안한 마음도 도전의식도 활활 불타오르긴 했다.


 그나마 그 상황에서 점점 발전의 기회가 생긴 것은 역시 어린이집이었다. 우리가 묶어준 머리가 예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아이가 머리를 헝크러트려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올 때면 항상 아침과는 다른 헤어스타일이 되어있었다. 당연히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께서 묶어주신 머리는 우리가 묶어주는 것과 비교도 안되게 이뻤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씻기기 위해 머리끈을 풀 때. 대충 어떤 순서로 어떻게 묶었는지 구조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내  머릿속에 조금은 다양한 머리 묶는 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께서 묶어주시는 방법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고, 응용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래서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이쁘게 묶였다고 생각하는 순간들도 왔다.


 특히, 이런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우선 아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찾은 것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면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를 닦아주고, 유산균을 먹인 후 밥을 먹인다. 물론, 매일 아침밥을 먹이지는 못하지만, 끼니가 될만한 떡이나 빵이라도 먹이는데, 그때가 머리를 묶을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나는 아이를 아기의자에 앉히고 먹을 것을 준 후에 아이가 먹기 시작하면, 머리를 묶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에게도 익숙한 루틴이 되어버려서인지, 이제는 자연스럽게 가만히 있곤 한다. 게다가 아내가 드럭스토어에서 사 온 빗은 아주 유용한 아이템이다. 그래서 머리를 조금 더 단정하게 묶을 수 있게 해 주고, 뭔가 퀄리티 있어 보이게 해주기도 한다.


(참고로 아이의 머리끈은 올리브영에서 150개에 3900원에 판매하는 머리끈이 최고다. 그 이유는 우선 잘 묶이는 것도 묶이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그 머리끈이 머리에서 뺄 때 잘 빠진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안 좋은 머리끈의 경우 빠질 때 잘 안 빠져서 아이의 머리가 뜯기기도 하고 아이의 머리가 당겨지기도 해서 아이가 울게 된다. 그런데 이 머리끈은 뺄 때도 잘빠지고, 끊어지지도 않아서 정말 좋은 것 같다. *협찬은 받고 싶었지만, 줄 생각도 없으신 듯하여 그냥 우리가 돈 주고 사서 쓰고 있어요ㅎㅎㅎ)


 그리고 그렇게 예쁘게 머리를 묶어주고 나면, 아이와 함께 거울을 본다. 그러면 이제 아이도 뭘 좀 아는지, 자신의 머리를 보며 좋아하기도 하고, 엄마에게 달려가 물어보기도 한다.


"엄마 나 이뻐요?"


 딸을 가진 아빠로서 내가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아침 시간의 효율성 때문이다. 아내는 여성이다 보니 아무래도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이 나보다 더 오래 걸린다. 그런데 아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의 머리까지 담당하게 되면 시간의 차이가 너무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아내가 먼저 씻고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내가 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묶어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내가 씻는 동안 아내가 아이의 옷을 챙겨주면 시간은 얼추 잘 맞는다. 그런 효율적인 상황으로 인해, 어느새 나는 머리를 묶어줄 수 있는 아빠가 되었고, 오늘 아침에는 벼르고 벼르던 예쁘게 양갈래로 딴머리까지 해줄 수 있었다.


 아이와의 시간은 솔직히 정신이 없다. 아이는 이제 한순간도 쉬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내 품에서 뱅뱅 돌고 애교를 피우며 무엇인가를 요구한다. 나는 아이와 있는 시간 동안에는 화장실도 잘 가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아이와의 사랑을 쌓아가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내가 아이의 머리를 묶어줄 일은 점점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이에게 아빠가 머리를 묶어주었던 기억조차도 없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의 머리를 조금 더 이쁘게 묶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아빠의 모습은, 아이가 좀 더 자신을 사랑하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예쁘게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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