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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Sep 07. 2021

아이와 바다

같은 바다, 다른 느낌


기억 속의 첫 바다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이었다. 나름 가족여행을 많이 다니기는 했지만, 어쩌다 보니 바다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나는, 18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바다를 보게 되었다.


 내가 처음 바다를 봤던 기억은 처음인 것은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던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부끄러울 일도 아닌 것을, 그 순간에는 뭐가 그리 창피했는지, 마음껏 감탄하지도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그 이후, 나에게 바다는 항상 즐거운 기억들이었다. 대학을 입학한 나는 수련회나 MT를 통해 수없이 많이 바다를 가보게 되었고, 친한 친구들과도 여름만 되면, 몇 번이고 바다를 찾곤 했다.


 20대 초반의 바다는 나에게 신나는 축제 같았다. 낮에는 백사장에 울려 퍼지는 신나는 노래들을 들으며, 지치지도 않고 파도를 타며 놀았고, 밤이면 최선을 다해 꾸미고 나와 새로운 만남을 위해 온 바닷가를 헤매었다. 뭐 결과야 항상, 남자들끼리 바닷가에 앉아 술을 마시던 모습으로 끝이 났지만, 그래도 그때의 분위기와 추억들은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바다는 해외의 기억이 더 많다. 해외여행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기회만 되면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나곤 했고, 해외의 바다를 찾아서 떠난다기보다는, 여행을 가다가 만나게 되는 바다를 기억하는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와는 다르게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그저 바닷가에 앉아서 맥주를 한 병 마시는 정도의 낭만을 즐기기만 했고, 그럴싸한 추억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지금의 아내를 만난 후에는 서로가 바다를 참 좋아해서 많이 돌아다녔다. 그때는 근사한 해외의 바다고 가보고, 동해바다나 제주도의 바다도 가봤다.  아내와의 바다는 근사한 풍경이 있었고,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 가끔은 향긋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기도 했다. 아내와 나의 바다는 근사했고, 달콤했으며, 향기로웠고, 운치 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되었다. 아빠가 되고 나서의 바다는 혀 다른 느낌의 공간으로 변했다. 거친 파도를 좋아하던 20대의 혈기도 근사한 분위기가 중요하던 연애시절 아니었다. 그저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우리 아이가 안전할 수 있는 것이 모든 선택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아이와 떠나는 바다는 얕은 바다가 있고, 살아있는 생물들을 보기 좋고, 특히 사람이 많지 않아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들이 중요했다.


 심지어 가장 다른 것은 제주도에 가든, 서해를 가든 우리가 바다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을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었다. 세게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물속에서 오래 놀게 되면 걱정되는 아이의 컨디션 때문에 1시간을 걸려 텐트를 쳐도  아이가 조금이라도 추워하는 것 같거나,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것 같으면, 어김없이 모든 걸 철수하고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아이와 바다에 가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이유는 딱 한 가지.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모습. 물만 보면 뛰어들어가려는 아이의 모습과, 모래사장에 앉아서 신나게 성을 만들고 부시며 노는 아이의 모습은, 나도 모르게 새로운 해변을 찾고, 새로운 장비들을 구매하게 만들었다.


"아빠랑 바다에 놀러 갈 거야!"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떼를 쓰면서 하는 아이의 저 말은 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바다에 가면, 아이는 모래사장에 있는 수많은 게들과 인사를 하고, 끼룩끼룩거리는 갈매기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귀여운 소라게는 무서워하면서도 자꾸 궁금해서 쳐다보고 있고, 내가 잠자리채로 잡아준 물고기와 새우는 손으로 만져보며, 신나게 웃곤 한다. 아이와 바닷가에서 만드는 추억들은 아이의 기억에는 남지 않아도 나의 마음과 핸드폰에 가득 남아 있다.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많은 바닷가를 다녀왔고, 추억도 쌓아왔다. 그중에 어느 바다가 제일 좋았는지, 어느 추억이 제일 소중한지 고르라고 한다면 쉽게 고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바다에 간다고 한다면 1초의 고민도 없이, 아이와의 바다를 선택할 것이다. 그 바다에는 화려한 시설도, 신나는 음악도, 멋진 청춘도, 심장을 뛰게 하는 스릴도 없지만, 그래도 내 심장을 따뜻하게 만드는 가족이 있다.


 아이와 함께 모래놀이를 하고,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산책을 할 수 있는 바다야 말로, 나의 행복지수를 가득 채워줄 최고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항상 같은 곳에서 같은 모습으로 있지만, 찾는 사람들은 항상 다른 모습으로 찾아가게 된다. 다시 찾아가는 바다에 나와 우리 가족의 모습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바다가 두근거리고 셀레는 이유는 그때도 누구보다 행복해하고 있을 내 모습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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