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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Sep 27. 2021

달님! 블록 갖게 해 주세요.

우리 가족의 바람

  추석 전날에 거의 보름달에 가까운 달이 떴다. 워낙 달을 좋아하는 우리 딸은 날이 좋아 달이 잘 보이는 날이면, 달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초승달이건, 반달이건, 보름달이건 달이면 모두 좋아하는 우리 딸은 환하게 떠있는 달을 보며, 달보다 이쁘게 웃고 있었다.


"보름달을 보면, 소원을 비는 거야. 우리 아가는 갖고 싶은 거 있어요?"


"블록 갖게 해 주세요."


 아이가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블록을 갖게 해 달라고. 집에 이미 사촌오빠에게 물려받은 블록이 산처럼 쌓여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블록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던 추석날. 오후에는 비가 오지 않더니 밤에는 달이 보였다. 구름에 가렸다가 살짝 고개를 내민 보름달을 보며, 아내도 두 손을 모은다. 나도 본능적으로 아내를 따라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것은 국룰이니, 아내의 소원을 물어보지도 않았고, 나의 소원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가족은 이번 보름달을 보며 모두 소원을 빌었고, 아이의 소원은 내가 이뤄줄 수 있는 것이어서 몰래 준비할 생각이다.


 우리는 가끔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에도 바람을 담을 때가 있다. 분수에 동전을 던지거나, 등산길에 돌탑을 쌓거나. 조금 다르겠지만, 성당에 촛불 켜기도 하고, 절에 등을 달기도 한다. 심지어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는 종이비행기를 날려 농구장 펜스 너머로 날리는 것이 대학을 위한 바람을 비는 방법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안다. 나의 바람이 달을 보고 두 손을 모아 비는 것으로, 돌탑을 쌓아 올리는 것으로,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곳에 마음을 담는다.


우리 어머니는 제사 때마다 조용히 중얼거리시는 말이 있다.


"우리 희종이 마음먹은 대로 다 잘 되게 해 주세요."


 저 말은 우리 어머니에게는 주문과도 같아서 아버지 산소에 가던,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 때가 되건, 기회만 되면 항상 중얼거리시곤 한다. 그런데 진짜 재미있는 것은 우리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나에게 제일 많이 해주시던 말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너는 어릴 때부터 뭐만 하겠다고 맘먹으면 꼭 하고야 말았어."


도대체 뭘까? 어머니의 바람이 먼저였을까? 나의 목표들이 먼저였을까? 뭐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결국, 우리 어머니의 바람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나의 목표들도 일부 달성중이다.


 부모가 되어보니,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이가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아이가 바라는 것이 많아야, 이룰 것도 많고, 이루는 것이 많아야 아이의 밝은 표정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람이 그저 막연한 바람이어도 좋고, 자신이 원하는 뚜렷한 목표여도 좋겠다. 그저 이 아이가 무엇인가를 바라고, 원하고, 노력하고, 이뤄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옆에서 혹은, 그 뒤에서 이 아이의 모든 과정을 함께 해나가고 싶다.


 나는 아내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나의 바람과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각자 빌었던 그 바람들은 분명히 아주 진부하고 평범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진부해 보이고 평범해 보이는 바람들이 얼마나 어려운 것들이고, 또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열심히 빌어볼 생각이다. 보름달이건, 돌탑이건, 분수가의 동전이건, 종교에 대한 기도이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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