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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Oct 07. 2021

빠른 아이와 느린 아이

 주말에 아이와 놀이터에 갔다. 우리 아이는 요즘 놀이터 미끄럼틀을 타는 것에 푹 빠져 있어서, 시간만 나면 놀이터에 가자고 한다. 아이에게 아침밥을 챙겨주고는 피곤해서 잠이 들어버린 아내를 조금만 더 자게 해 주려는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왔다. 날이 조금 흐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적었고, 그 덕에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제일 높은 미끄럼틀을 실컷 탈 수 있었다.


"나는 용감하고 씩씩해요."


 어린이집에서 배운 건지, 아이는 혼자 높은 미끄럼틀을 탈 때마다, 항상 스스로를 용감하고 씩씩한 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혼자 열심히 미끄럼틀을 타고 있는데, 옆에 우리 아이와 비슷해 보이는 또래의 아이가 아빠랑 같이 나왔다. 그 아이는 아빠가 밀어주는 자전거를 타고 나왔는데, 그네를 보며 타고 싶다는 몸짓을 하더니 이내 아빠와 그네를 타고 있었다.


 우리 아이도 그네를 타는 것을 좋아하는데, 미끄럼틀에 정신이 빠져 모르고 있다가, 그 아이가 타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네에 타겠다고 했다.


"나 그네 탈 거야."


"그럴래? 옆에 친구도 있네."


"친구! 안녕."


순간 그 아이의 아빠가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몇 개월이에요?


"저희 아이는 10월생이라 이번 달이 딱 두 돌이에요."


"아. 저희 아이는 9월생인데. 아직 말을 잘 못해요. 아빠, 엄마, 까까 이런 것만 해요."


 그 아이의 아빠가 놀란 것은 그 아이에 비해 우리 아이가 많이 빠르다고 느껴서였을 것이다.


"아. 저희는 가깝게 지내는 사촌언니가 있는데요. 걔가 말을 너무 잘해서 금세 배운 거 같아요."


"아. 저희는 외동이라서요. 친구한테 말하는 것 좀 가르쳐죠."


 아주 잠시였지만, 그 아이 아빠의 고민이 느껴졌다. 우리 아이보다 한 달이 빠르지만, 이제 엄마, 아빠, 까까만 한다고 하니, 아마 나름 걱정이 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아이는 단순히 말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우리 아이와 비교가 됐다. 그 아이의 아빠는 우리 아이가 제일 높은 미끄럼틀을 잘 타는 것을 보고 야심 차게 데리고 올라갔는데, 아직은 무서운 아이가 미끄럼틀 안에서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아이는 겨우겨우 내려오기는 했지만, 미끄럼틀 밑에서 아빠를 찾으며 울고 있었다. 덩치가 커서 같이 미끄럼틀을 타지 못한 그 아이의 아빠는 아이가 우는 소리에 허겁지겁 뛰어와서 아이를 안아주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우리 아이가 빠르다는 것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금세 그런 마음보다는 그 아이의 아빠의 마음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실은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처조카 아이는 모든 게 아주 빨랐다. 말도 빠르고, 행동도 활기차고, 인지력도 깜짝 놀랄 만큼 좋았다. 그런 아이와 자주 어울려서 놀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도 조카랑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다르다 보니 직접적인 비교는 되지 않았지만, 굳이 기억을 뒤지면서 까지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이다.


"ㅇㅇ이는 언제부터 말을 했었지?"


"ㅇㅇ도 이렇게 책을 잘 읽었었나?"


 우리는 별거 아닌 것에도 자꾸 조카의 과거를 소환하곤 했고, 그것은 비단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두 아이와 연계된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말 내내 그 아이의 아빠가 신경이 쓰였다. 너무 충격을 받은 것을 아닐지, 혹시 아이가 너무 느리다는 걱정을 크게 하는 것은 아닌지,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등등...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이 문제는 비단 아이의 성장에 대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이고, 모두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지만, 모두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해가며 살아간다. 학교, 직업, 집과 차, 입는 옷과 먹는 것들까지.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다.


 너무 뻔한 이야기. 그래서 살면서 만 번도 더 들어봤을 이야기.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당연한 이야기가 매번 다양한 방법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빠르다고 계속 쭉 빠를 리 없고, 그 아이가 조금 느리다고 평생 느릴 리도 없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그래서 지겹고 진부한 이야기지만, 어쩌면 내가 또 백만 한 번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또 해야 할 것 같다. 조금은 서로 덜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해서. 그리고 나도 조금은 덜 비교하면서 살았으면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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