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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Oct 27. 2021

똑딱의 경쟁

수강신청도 이 정도로 치열하진 않은 것 같은데..

  아이의 감기가 나은 듯했다. 36시간 만에 열이 떨어지고, 하루정도 감기의 징후가 없었다. 다만, 아이는 여전히 짜증이 많았고, 먹는 게 줄었었다. 그런데 역시나, 맑은 콧물과 기침이 시작되었다. 토요일 아침 8시 15분. 우리는 우선 빨리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8시 반부터 소아과 예약시스템인 "똑딱"이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아이의 밥을 먹이고 있었고, 아내는 외출 준비를 하며 휴대폰을 지키고 있었다.


8시 29분. 아내는 침대에 걸터앉아 숫자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8시 30분. 아내는 휴대폰 시간이 바뀌자마자 신청 버튼을 눌렀다.


[모바일 예약이 가능한 시간대가 없습니다.]


"뭐야 오늘 똑딱 안 열었나 봐. 토요일에는 안 열 때도 있더라고."


 우리는 다급해진 마음에 우선 빨리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주에 똑딱으로 4번의 대기순서를 받았지만, 막상 가보니 8번째 순서였던 것 이 아무래도 현장접수도 같이 카운팅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8시 45분. 우리는 급하게 아이와 짐을 챙겨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우리가 다니는 소아과가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8시 50분. 소아과에 들어서자 이미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접수창에는 이미 대기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가장 의아해했던 것은 "똑딱"의 예약이 30명이나 되어있었던 것이다.


"뭐야? 똑딱이 30명이나 있네? 그럼 오늘 안연 게 아니라 마감된 거야? 나 진짜 바로 눌렀는데?"


"그래?"


"진짜 그 짧은 순간에 30명이 이미 다 찬 건가 봐. 와.  수강신청도 이 정도로 치열하진 않은 것 같은데.."


 지금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전국적으로 아이들에게 열감기가 유행하는 것 같았다. 이미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도 우리 아이를 포함해서 9명 중에 3명이나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동네에서도 나름 진료를 잘 본다고 소문나 있는 이 소아과에는 수상신청보다 더 치열한 "똑딱"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강신청은 대안이 있다. 그 과목을 못 듣는다고 해도 대체로 들을 수 있는 과목들이 있고, 수강신청을 망쳤다고 생각을 해도, 결국은 우리는 대학을 다니고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아이는 다르다. 지금 아픈 아이를 데리고 진료를 받지 못하면 부모의 마음은 불안하고 초초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응급실도 있기는 하지만, 부모가 보통 병원을 찾는 것은 응급한 상황보다는 아이를 힘든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토요일의 경우는 더 치열하고 간절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는 결국 우리가 서둘러 병원에 간 덕에 10번째 순서로 진료를 볼 수 있었고,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간단한 처방을 받고 나오게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육아의 산을 넘어본 선배들이나, 아직 아이와의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후배들은 이런 상황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뭘 애가 좀 아픈 걸 가지고 유난을 떠냐?"


"애들은 원래 다 감기를 달고 사는 거다."


"좀 적당히 하지."


 하지만 막상 아이가 아프고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이면, 적당히는 말이 안 되는 말이고, 유난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고 있는 것이 부모인 듯하다. (그렇다고 아이를 무기 삼아 막무가내로 민폐를 끼치는 부모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주말이 지나가는 밤에 팀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팀장님 저 아기가 금요일 밤부터 열이 나더니 아직 안 떨어져서 ㅠㅠ 내일 연차 좀 쓰겠습니다."


나는 그 카톡을 보자마자 안타까움에 한숨이 나왔고, 옆에서 카톡을 본 아내는 말했다.


"아이고. 오늘 밤도 잠 못 자겠네.."


 나는 알았다는 말밖에는 뭐라고 답을 하지 못했다. 그 팀원의 마음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어오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항상 살얼음 위를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눈부신 설경에 근사한 배우자와 함께 걷는 데이트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아이의 걱정에 항상 발을 동동거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 모든 길이 자발적으로 들어선 행복한 선택이기에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끼리는 좀 더 이해하고 토닥여주며 걸어가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우리가 육아의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결국 모두 같은 "똑딱" 신청 대기자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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