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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Dec 01. 2021

재능은 알레르기 같다.

 요 며칠 아이의 입 주변에 붉은 발진이 생겼다. 보통은 그냥 피부 트러블이겠거니 넘어가겠지만, 어제 외식을 한 후에 조금 더 붉게 올라온 것을 보고, 어쩌면 알레르기의 한 종류 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우리 아이는 조개류의 알레르기가 있는 것으로 의심이 된다.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아이가 어릴 때, 조개를 먹고 얼굴에 발진이 일어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조개가 들어간 국물은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하게 어떤 것이 아이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어느새 이 아이와 2년 넘게 살고 있다. 2년 동안 아주 많은 시간을 이 아이와 보내고 있고, 모든 신경이 이 아이만을 향해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이 아이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이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수시로 바뀌고 있고, 아이가 좋아하던 장난감이나 노래들도 그 취향의 변화가 너무 무쌍하다. 그러니 아직 우리 아이는 이렇다고 정의할 수가 없다. (하긴 40년 넘게 살아온 나도 나 스스로를 정의 못하는데, 욕심이구나.)


아내는 피부에 파스 같은 접착제 알레르기가 있다. 그래서 밴드나 파스 등을 붙이면, 마치 그 모양으로 부황을 뜬 것처럼 빨갛게 올라온다. 그래서 나의 아내는 아파도 파스를 잘 붙이지 못하고, 다쳐도 밴드를 붙이지 못한다. 정말 다행인 것은 아이에게는 그런 알레르기가 없다. 그러니까 다행스럽게 유전은 되지 않은 것이다.


"근데 나 이 알레르기 다 커서 생긴 거야. 어릴 때는 안 그랬어."


 알레르기라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은, 종류도 다양하고, 발현 시기도 달라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평생을 잘 먹던 음식에 갑자기 알레르기가 생겨서 더는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본인은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건 못 먹어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았는데, 어느 순간 반응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유전에도 상관이 없는 경우가 있어서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같은 집안의 형제자매에게도, 심지어 쌍둥이에게도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고도 했다.


 나는 내가 40살이 넘어서 소설가가 될 줄 몰랐다. 아니 30대를 내가 회사에서 보내게 될지도 몰랐고, 20대의 무대를 포기하게 될지도 몰랐다. 작가로서의 재능은 40이 넘어서야 조금씩 발현되기 시작했고, 직장인으로서의 재능은 20대 말에 찾을 수 있었다. 무대에서 배우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능도 알레르기와 같다. 나의 작가적 재능이 40대에 발현하기 시작했듯이,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배우의 꿈도 어느 순간 나에게 다시 올지 모른다.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는 직장인의 삶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고,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 해주는 요리가 직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의 재능에 조금은 관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수월한 아이 었지만, 빠르던 아이는 아니었다. 남들보다 기본적인 수준까지의 습득은 쉬웠으나, 탁월한 단계까지는 빠르게 도달하지 못하는 아이 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도 나처럼 조금은 빠르지 않은 아이일 수도 있고, 유전과는 전혀 상관없이 빼어난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차피 맛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아과에 가면 아이들에게 알레르기 검사를 해준다. 그 검사는 주요 알레르기 성분들을 아이에게 투여해서, 아이의 반응을 검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재능에 있어서도 이러한 검사를 자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영어는 잘하는지, 신체적 능력은 어떤지, 음악에는 어떠한 관심을 보이는지, 그림은 또 얼마나 잘 그리는지. 정말 다양한 자극들을 통해서 이 아이가 어떤 재능에 반응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나의 삶을 되돌아보니, 아이일 때는 아직 잘 모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 아이는 이런 재능이 있어!라고 말해도 아이의 흥미가 그곳에 없어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재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에서 재미를 느껴, 그것을 재능이상의 능력으로 성장시키는 경우들도 있기 때문이다.


"자꾸 애 앞에서 비교하는 말 하지 마."


 나는 요즘, 나도 모르게 또래보다 말을 잘하는 딸을 보며, 주위의 아이들과 비교를 하게 되곤 한다. 그때마다 아내는 그러지 말라고 나를 꾸짖는다.


맞는 말이다. 아이는 비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아이에게 보이는 것은 자주 짧은 과정에 불과하니, 그것에 연연하거나 비교하기보다는 아이가 더 많은 기회들을 통해서 자신의 재능을 발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나이가 훌쩍 들어 오래된 어른이 되어버린 나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재능이 키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다 닫혀버리는 성장판이 아니니까, 나이가 들었다고. 점점 퇴화되어간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발현되지 않은 재능이 있을 수도 있다고, 철없이 기다려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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