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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Dec 03. 2021

미운 네살의 서막이 열렸다.

2022년을 한 달 남기고 시작된 변화

공식적인 네 살이 한 달 정도 남은 아이는, 정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운 네 살의 워밍업에 들어섰다.


 12월 1일. 거짓말처럼 경험해보지 못했던, 역대급 생떼를 부렸는데, 오랜만에 간 할머니 집에서 잘 먹고, 잘 놀고, 애교도 잘 피우고, 다 잘 넘어가나 했는데, 시작은 양치질부터였다.


"내가 할 거야! 아빠 가!"


집에서도 요즘 제일 어려운 것이 양치질을 시키는 것과 치실을 하는 것인데, 어김없이 여기서도 시작되었다. 칫솔을 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아빠가 도와주겠다고 하면 칫솔을 뺏기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할아버지가 할까? 그럼 아가 칫솔로 할아버지가 먼저 할까?"


 아이의 경쟁심을 유발하는 할아버지의 방법으로 양치질은 겨우 넘어갔으나, 그 뒤에도 양칫물을 헹구는데도 한참을, 자기 전에 엉덩이를 닦는 것도 한참을 시달렸다. 그런데 제일 힘든 것은 바로 기저귀를 입는 것부터였다. 엉덩이를 씻고 나서 기저귀를 안 입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아이는 양칫물에 젖은 윗옷까지 벗기자, 맨몸으로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안 입을 거야. 안 입을 거야"


그렇게 시작된 아이의 투정은 결국 크게 울리고, 억지로 옷을 입혀서야 마무리가 되는 듯했다.


"요즘 다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너무 힘들어."


"원래 애를 기르는 게, 기다리는 게 다야. 보채지 말고 기다려야지 뭐."


"그럼 출근시간에는 어떻게 해."


아내와 장모님께서 나눈 대화였다. 그날의 맨몸 소동은 차를 차고 집에 가는 동안에도 내내 목이 쉴 정도로 울며 이어졌고, 겨우 자신이 원하는 밖에 한번 나가서 산책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는 그날, 처음 보는 아이의 모습에 너무 놀랐고, 심란했다. 그런데 그런 아이의 모습은 정말 그날이 시작이었는지, 그다음 날부터 아침마다 모든 과정에서 자신이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밥을 먹이고, 머리를 묶고, 씻기고, 새로운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고, 외투를 입고, 신발을 신는 모든 과정에서 자신이 하겠다는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데. 내가. 내가."


며칠 사이에 너무 달라져 버린 아이의 고집에 우리는 너무 혼란스럽고, 힘들었는데, 그런 상황을  아내가 3달 빠른 아이를 기르는 회사동기한테 얘기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고 했다.


"미운 네 살 시작이야."


이 아이도 아는 걸까? 자기가 본격적으로 미운 짓을 해야만 하는 네 살이 이제 한 달 남았다는 것을?  


"맞네. 우리 아이도 이제 내년이면 네 살이구나."


"응. 체념 하래."


 순간, 새로운 공포가 상상되기 시작했다. 미운 네 살의 딸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 한동안은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가? 다섯 살이 되면 다시 좀 좋아지는 것일까? 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들을 하며, 우리 부부는 아주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아이도 지금이 혼란스러운 시기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 생각이 생기고, 나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마음도 생겼는데, 막상 해보면 아직은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이 아이 입장에서는 아주 많이 답답하고 힘든 상황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어차피 시작된 일이고, 어차피 지나갈 과정이다. 누구나 겪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와중에도 서로 상처만 주지 않을 수 있다면, 더 건강한 아이로 자라는 과정일 거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잘 기다리고, 잘 참아가며 다가오는 2022년은 미운 네 살과 현명하게 지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한 해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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