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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Dec 21. 2021

아이에게 첫눈을 선물하다.

실은 아빠가 더 신났다

 주말에 눈이 내렸다. 아이를 데리고 어머니댁에 갔는데, 아이를 어머니께서 봐주시는 동안 잠깐 머리를 하러 나온 사이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그 전날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감기가 돈다는 소식까지 들어 감기 경계령을 선포한 상황이었지만, 아이의 감기 걱정과 아이에게 흰 눈을 보여주고 싶다는 두 가지 마음이 내 속에서 전쟁을 펼치기 시작했다.


머리를 하고, 길에서 파는 붕어빵을 사들고 집에 들어왔는데, 거실에 누워 할머니와 뒹굴거리며 놀고 있던 아이는 밖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 그냥 넘어갈까?"


순간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들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미 밖에서 눈을 보며 신나게 뛰어놀고 있던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잠시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밖에 눈이 엄청 많이 와. 우리 눈 구경 갈까?"


"눈이 엄청 많이 와?"


 요즘 한창 겨울왕국에 빠져있는 아이는 올라프도 너무 좋아하고, 다른 눈사람들도 엄청 좋아한다. 그런 아이에게 지금의 세상은 아마 천국에 와 있는 것 같을 것 같았다. 나는 우선 아이에게 옷을 단단히 입히고, 털모자에 장갑에 마스크까지 무장을 시키고 아파트 놀이터로 나왔다. 아이는 눈을 보자마자 신나서 뛰어다니려고 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이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놀이터를 돌아다녔다.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스스로 눈사람을 만들 수도 없고, 눈싸움이 뭔지도 몰라서, 그저 하얗게 쌓인 눈을 보는 것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맞는 것이 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내리는 눈을 맞아도 보고, 쌓인 눈을 만져도 봤다.


 생각보다 날씨가 더 춥게 느껴진 나는, 진짜 나온 지 10분도 안돼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아이는 더 놀겠다는 생떼를 부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아까 내가 사 온 붕어빵의 관심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올해 첫눈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펑펑 내리던 눈이 우리 집에는 전혀 내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그 전날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세상이 새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 전날까지 눈이 하나도 내리지 않았던 우리 동네에는 뒤늦게 첫눈이 수북하게 내린 것이다.


 아이는 자는 동안 눈이 온 걸 안 걸까? 눈을 뜨자마자 과수원에 가자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고 싶다던 아이는 하얗게 변한 세상을 보며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과수원에 눈썰매 타러 와."


 보고 싶다던 할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니, 할머니는 과수원에 눈이 많이 쌓여있다며 눈썰매를 타러 오라고 했다. 아이는 뭔지도 모르는 눈썰매를 타겠다고 신나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눈썰매 타러 오래."


 낮에는 기온이 올라가서 눈이 녹을 수도 있다는 말에 우리는 서둘러서 과수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이는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눈썰매장에서 할아버지랑 같이 신나게 눈썰매를 탔고, 아빠랑 같이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그 전날보다는 풀린 날씨 덕에 걱정은 좀 덜 했지만, 그래도 감기걱정된 우리는 채 30분도 채우지 못하고 금방 들어왔지만, 아이의 볼은 그게 빨갛게 변해있었다.  아이는 그 30분 동안에 눈썰매도 타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 발자국도 만들어보고, 강아지랑 놀기도 했다.


  이 모든 건 어쩌면 나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나중에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기억들. 이 아이에게는 아빠가 선물한 첫눈보다는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게 된 첫눈이 훨씬 더 중요한 기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내리자마자 아이가 떠오른 것은 아이에게 만들어주는 추억이 나에게도 소중한 추억으로 함께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자 눈이 오면 걱정되는 것들이 참 많았다. 차가 막힐 출근길도, 도로가 미끄러워져서 커지게 되는 교통사고 위험도, 날씨가 추워져 혹시 감기가 걸릴거나, 미끄러져 넘어져서 다칠지도 모르는 걱정까지.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니까, 그 걱정만큼이나 셀레고 신나는 맘 더 커졌다. 그건 아마도 아이에게 선물한 첫눈이 나에게도 함께 선물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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