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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Dec 23. 2021

우리의 아침은 딸의 기분에 달렸어요.

통제/예측불가 절대변수

 유난히 출근이 순조로운 날이 있다. 개운하게 잠에서 깨고, 아이의 물을 끓이고, 아이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아이가 스스로 깨서 거실로 나온다.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한 명이 들어가서 먼저 씻고, 그동안 나머지 한 명은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고, 어린이집 가방을 싼다. 다 고 나온 사람은 아이의 식사를 마무리하고, 아이를 씻긴다. 그리고 아이의 옷을 입히고, 나머지 출근 준비를 한다. 그동안 나머지 사람도 나와서 자신의 출근 준비를 마무리하고, 그동안 아이는 후식을 먹기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그렇게 출근 준비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아이의 짐을 챙겨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다. 중간에 만나는 이웃집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아이는 쑥스러워 내 품에 안기기도 한다.


 그런 날은 아침이 참 여유롭고 즐겁다. 시간도 여유 있고, 챙겨야 할 것을 빼놓지도 않는다. 심지어 출근길도 즐거워서 차에서 함께 동요를 부르면서 가거나, 어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 있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났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부터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은 아이의 침대에서 5~10분 정도는 함께 뒹굴뒹굴해줘야. 아이의 컨디션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렇게 그 과정을 지나가도 유난히 힘들게 하는 것들이 있다.


"하기 싫어!"


"안 할 거야!"


"내가 할 건데."


"안 먹는다고."


"앙~"


씻는 거, 먹는 거, 머리를 묶는 거, 옷을 입히는 거, 신발을 신기는 거, 심지어 갑자기 읽고 싶다는 동화책을 읽어줘야 하는 것까지. 모든 단계에서 아이의 기분과 생각이 우리의 아침을 힘들게 하는 날이다.


그런 날은 정말 모든 과정이 어렵고 힘들어서, 우리의 출근 준비도 아슬아슬하고, 출근길의 운전도 아슬아슬하다.


우리는 소위 영혼이 털린다고 한다. 그런 아침을 마주하는 날이면, 어린이집을 데려다주고 회사로 가는 짧은 길에, 출근 시간만큼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내의 머리는 여전히 축축하고, 나의 셔츠는 여기저기 삐져나왔있고, 우리의 아침을 생각하는 건 사치지만, 그 와중에도 덜 먹은 아이의 식사가, 저녁때 먹일 아이의 간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성인이 되고, 가장 좋았던 것 중에 하나는 내 행동에 모든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그 행동들이 유도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내 행동에 대한 결정은 나의 의지로 가능한 것들이어서, 삶의 패턴 속에 예상치 못하는 커다란 변수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육아라는 전쟁터에서는 아이가 통제/예측 불가능한 절대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내 모든 삶의 질과 난이도를 결정 지어 준다.


 어쩌면 우리가 육아의 고충들을 이야기할 때, 모두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바로 이 통제 불가능한 영역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여기에 아이의 건강상태까지 포함이 되면, 우리는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태풍 속의 환경에 서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내부부여서 아주 가끔, 구내식당이 아닌 외부에서 점심 데이트를 할 때가 있다. 데이트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항상 가는 작은 쌀 국숫집에서 밥을 먹는 정도지만, 그 시간이 제일 좋은 것은 평온함인 것이다. 둘이 편안하게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것.


  하지만, 그렇게 엄청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딸이지만, 그 아이의 존재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빛을 바란다. 우리가 예상치도 못한 말들. 우리의 심장을 녹이는 애교들. 우리가 방심한 순간, 우리의 약점을 공략하는 엄청난 순발력과 센스들. 우리는 그런 공격들에 항상 무너져서 힘든 아침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아빠가 없어서 심심해."


 감기에 걸려 엄마랑 집에서 놀던 날. 아이에게 걸려 온 전화에서 들려온 말이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우리를 쥐락펴락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아이의 흐름에 끌려다니게 된다. 그러니 우리의 하루하루는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 또 우리 아이의 기분이 어떨지, 그로 인해 우리의 아침은 어떻게 될지, 불안함과 두려움 속에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꺼이 이 전쟁터에서 잘 버티고 있는 이유는 그가 주는 기쁨도 항상 우리의 기대치를 훌쩍 벗어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에게 아침은 항상 힘들지만은 않기에,

오늘 하루 힘들어도 다시 잠들어 내일을 기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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