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희곡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스무 살 무렵, 유난히도 성극의 퀄리티가 좋았던 우리 교회에서 연출을 맡고 있던 형이 나에게 제안을 했다.
"희종아, 너 희곡 한 번 써보지 않을래?"
학창 시절, 나름 백일장에서 상 좀 받아봤던 나는 선 듯 희곡을 쓰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희곡은 13편이나 쌓였고, 운이 좋게도 학교에서, 극단에서, 교회에서 다양하게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도전. 시나리오를 써보자.
연극영화과로 복수전공을 하기 전부터 시나리오 전공서적들을 읽고, 영화화된 시나리오집을 찾아 읽으면서 꿈을 키웠다. 그리고 썼던 3편의 장편 영화 시나리오.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진행하던 모든 공모전에 다 응모하고 다 떨어졌다. 딱 한 번 그중에 하나를 단막극 대본으로 수정해서 방송국 드라마 공모전에 냈는데, 결과는 떨어졌지만 지인을 통해 최종 심사에는 올랐었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나는 대학원까지 가며 연극과 희곡의 꿈을 키워나갔지만, 현실은 차가웠고 재능은 부족했다. 서른 살까지만 해보자던 나의 다짐은, 결국 29살에 과감하게 모든 걸 정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평범한 직장인이 된 나는, 연예기획사에서 아이돌 지망생들을 트레이닝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쇼호스트 아카데미에서 쇼호스트 지망생들에게 발성이나 호흡, 스피치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스피치 강의나 프레젠테이션 강의를 하거나, 데뷔를 앞둔 연예인들의 코칭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누군가의 꿈을 지원해주는 일을 더 전문적으로 하게 되었고,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교육담당자로 일하게 되었다. 그 일은 어느새 나의 커리어가 되어, 지금도 새로운 창업자들을 위한 교육을 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들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우연히 시작된 브런치에서는 주로 육아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시기 시작하자. 욕심이 생겼다.
소설을 쓰고 싶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문득 좋은 소재가 떠올라서 이기도 하지만, 처음 써 본 소설의 프롤로그를 읽은 아내의 평 때문 일지도 모른다.
"진짜 소설 같아. 재밌어. 잘 읽혀."
아내의 말에 나는 용기를 내서, 브런치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내가 쓴 다른 글만큼,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에 더 재미를 느끼고 꾸준히 써내려 갔다.
6개월이 지나자 나의 첫 장편 소설은 완성되었고, 마침 진행 중이던 브런치 공모전에도 응모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하지만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내가 쓴 소설은 아주 참신한 소재도 아니었고,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도 아니라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소소하고 담백한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첫 번째 소설은 브런치 북으로 남겨둔 채, 두 번째 소설을 연재하고 있던 어느 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타운하우스"를 출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정신이 없었고, 아내도 엄청 신기해했다. 출판사에서 1차 교정을 본 원고를 보내주었고, 나는 작가 교정을 위해 다시 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첫 소설이 부끄러워 완성한 후에는 쉽게 다시 읽을 수 없었는데, 원고로 다시 출력해서 읽은 내 소설은 내가 상상 속에서 풀어내고 싶었던 이야기 그대로였다.
그렇게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어제 주요 인터넷 서점들을 통해 예약판매가 시작되었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타운하우스"로 검색하니 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나는 첫 책 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고, 기뻐해 주셨다. 예약 구매 인증을 보내주신 분도 아주 많았다.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칭찬의 말. 어제 너무 많은 "역시"라는 단어를 들어서 나는 하루 종일 붕 터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철이 없다. 이제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새로운 작당모의를 한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는 것이 철이 드는 것이라면, 과감히 거부하고 싶다.
지금 이 나이에도 이렇게 설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아주 짜릿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받은 상이 교내 백일장 은상이었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은 처음 담임을 맡으신 20대 여자 음악 선생님이셨는데, 내가 쓴 시를 읽으시고는 나를 항상 "작가가 될 아이"로 대해 주셨다. 그 당시 나는 참 말썽을 많이 피우는 아이였는데, 매번 선생님께 혼날 때마다,
"넌 작가가 될 아인데, 그럼 항상 정직해야 하는 거야."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 내내 나를 "작가가 될 아이"로 대해 주셨고, 무슨 잘못을 저지르던 항상 앞에서는 강하게 혼내주시고, 뒤에서는 감싸주셨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진짜 작가가 되면 그 선생님께 꼭 책을 보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중학교 동창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 선생님 돌아가셨잖아. 지병이 있으셨어."
내가 작가가 되는 데 영향을 준 사람은 크게 세명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고등학교 2학년 문과를 선택했을 때, 문과에 가면 작가가 되거나 법관이 되라고 말씀해주셨던 아버지. 고등학교 3학년, 전국 고교생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을 때, 자신이 쓰신 수필을 다 싸들고 올라오신 할머니.
어쩌다 보니 진짜 소설가가 되었는데, 나를 소설가로 만들어주신 분들은 모두 세상에 안 계시다. 물론, 어디선가 다 보고 계실 거라 믿고 있지만, 그래도 책이 나오면 꼭 한 번씩 찾아뵙고, 책을 보여드리고 싶다.
PS. 저는 제 책을 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이유는 돈이나 명성도 너무 좋지만, 오래오래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염치를 불구하고 부탁드립니다! 많이 읽어주시고, 많이 소문 내주시고, 많은 소감 부탁드립니다. 아직 머릿속에 쓰고 싶은 얘기가 많습니다. 점점 더 성장해서 좋은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