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남자는 좀 지쳐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성경책이 한 권 들려 있었다. 목사라는 직업.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그 직업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삶. 그에게 이 한 권의 무게가 저 눈에 보이는 교회건물 꼭대기의 십자가 무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신약 성경 시험 안내]
그에게 온 문자는 벼랑 끝에 한 손으로 매달려있는 자신의 손을 누군가가 발로 밟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내가 놓아야 하는 것은 절벽을 잡고 있는 내 손일까? 다른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일까?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딱 2년이었다. 신학대에 입학해서 나름 열심히 했던 2년, 그 시간도 내내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군대라는 피난처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군대에서의 시간은 그에게 집과 교회를 벗어나는 첫 여행이었고, 그는 그 시간을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으로 소중하게 소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군생활은 논산에서 끝이 나고 말았다. 훈련소를 퇴소하자마자 그가 배치된 곳은 일산에 있는 한 사단 교회였고, 그는 아버지와 절친한 군목의 밑에서 군종병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다. 그가 기다리던 3년의 시간은 그가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던 그 굴레의 연장이었고, 오히려 24시간 끝임 없이 이어지는 그에 대한 기대와 압박이 그를 점점 더 숨 막히게 만들 뿐이었다. 그는 휴가 때마다 자신을 태우러 오는 아버지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야만 했고, 복귀하는 날도 어김없이 아버지의 차를 타고 부대로 들어오곤 했다. 아버지에게 그는 성실하고 순종적인 아들이었지만, 그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감옥을 지키는 간수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군대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제대하던 날, 아버지에게 긴 여행을 다녀오겠노라고 이야기했다. 군대에서 받았던 월급을, 이 여행을 위해 모으고 있던 그는 혼자 좀 먼 곳으로 떠나 자유롭게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다. 그에게는 지금 자유가 너무 간절했다.
“우선 내가 복학 신청을 했다. 다음 주부터 바로 학교에 가야 한다. 남은 2년 동안 열심히 해서 대학원에 합격하면, 그때 해외선교를 갈 수 있는 곳을 내가 알아봐 주마.”
그에게 허락된 것은 2년 후 대학원에 합격을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선교. 그는 종교가 싫은 것도 아니었고, 믿음이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는 자신의 운명이 싫었을 뿐이다. 그래서 어느새 이 종교 자체에 대한 거부감까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는 복학을 하고 딱 한 달 만에 그 어떤 수업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학교 건물에서 만나는 수많은 십자가들이 그에게 알레르기 같은 반응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십자가의 형상을 볼 때마다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온몸이 간지러웠다. 신기한 일이었다. 평소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학교에만 가면, 그리고 십자가만 보면 온몸이 간지러운 것이다. 너무 견디기 힘들어 유명하다는 피부과도 모두 찾아다녀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저 효과도 없는 하얀색 연고만 서랍에 쌓여가고 있을 뿐.
심리적인 고통도 그를 견딜 수 없을 만큼 충분히 힘들게 만들었지만, 신체적으로 다가온 고통은 그에게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지금 이곳에 서 있었다.
“어차피 안 죽어요. 괜한 짓 하지 마요.”
남자가 죽음을 각오하고 이 다리 위에 섰을 때, 그의 마음을 보고 훤히 보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남자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그 여자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강을 바라보며, 그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뭐라고요?”
“지금 거기서 떨어져도 그쪽 안 죽는다고요. 아직은 아니래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몰라요. 누가 그랬어요. 저한테.”
“누가요?”
“우리 엄마의 그 잘나신 동자신이.”
여자의 엄마는 인천에서 제일 유명한 무당이었다. 그녀의 신기는 워낙 유명해서 보통 1년 정도의 예약은 이미 다 차있었고, 게 중에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은 그녀와의 시간을 더 큰돈으로 얻어가길 바랬다. 그래서 워낙 욕심이 많던 그녀는 어느새 인천에서 건물만 10채를 가지고 있는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던 것은 누가 뭐래도 그가 모시고 있는 영험한 동자신의 힘이었다. 누구보다 그 동자신의 신령함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동자신을 참 극진히도 모셨다. 그녀가 소유한 건물 중에 가장 높고 비싼 건물은 거의 그 동자신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 건물에 들어온 모든 상가는 동자신이 좋아할 만한 점포들만 세를 주었는데, 장난감 가게부터, 대형 편의점에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까지. 심지어 사무실마저도 아동극을 기획하고 공연하는 극단에게 저렴한 세로 임대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꼭대기 층은 커다란 신당으로 쓰고 있었는데, 겉에서 보기에는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사무실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장식과 수많은 동상들로 마치 중국에 소림사라도 와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자신이 모시는 동자신에게 기도를 하며 자신의 신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 동자신이 자신의 딸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였다. 자신의 딸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은 이미 딸이 말을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였다. 그녀는 그런 정성을 들여야만 겨우 소통을 이어갈 수 있었던 동자신과의 관계가, 딸에게는 소꿉친구와 놀이하듯 아주 쉽게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녀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했다. 자신의 신기가 떨어져도 딸과 함께 계속 이어가면 되니까. 하지만 곧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님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자신은 자신이 위대해지길 바랬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새 자신이 어린 딸을 상대로 질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딸이 신당에 오는 것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어느새 동자신과 자신의 딸 사이가 더 깊어진 탓인지, 딸이 신당에 오지 않자, 동자신도 신당에 오지 않았다. 한동안은 자신의 가진 신기만으로 손님들을 받았지만, 곧 그녀가 가지고 있던 신기만으로 손님들을 받기에도 점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무엇인가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고아원을 돌아다니며 여자아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녀가 찾아다니는 아이의 조건은 단 하나였다. 자신의 딸과 닮은 아이. 그녀는 딸의 분신을 만들어 자신의 방에 담아두고 싶었다. 그녀는 모든 예약도 미룬 채, 전국의 고아원을 모두 돌아다녔고, 홍천의 오랜 된 고아원에서 겨우 자신의 딸과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그렇게 그녀의 계획은 완성됐고, 그녀의 신당에는 꼬마 무당의 방이 생겼다. 그리고 그녀는 그 아이와의 비밀스러운 전화통화로 사람들의 점을 봐주게 되었다.
그렇게 어머니에게 동자신을 뺏긴 여자는 멀리 떨어져 있는 외할머니 손에 크게 되었다. 무속신앙과는 상관없이 살아오시던 외할머니는, 여자가 자신의 딸과는 다르게 아주 평범하게 살아갈 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영험한 동자신이라는 놈은 원체 변덕이 죽 끓듯이 해서, 여자의 분신과 잘 놀다가도 한 번씩 홱, 자신에게 찾아와 말을 걸 때가 있었고, 여자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미래를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가곤 했다. 여자는 그런 일들이 있어도 대부분은 그저 못 들은 척 넘어가곤 했지만, 지금 저 다리에서 난간을 잡고 서있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잘할 수 있데요. 거기로 뛰어들지 말고, 한 2년 숨어있다가 오며 다 잘 될 거래요.”
“제가 뭘 하려는 사람인지 알고는 있데요?”
“그럼요. 그 손에 무겁게 들려있는 건, 저도 보이는데요. 설마 영화에서처럼 제가 막 그쪽을 무서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뭐. 우리 둘 다 똑같잖아요. 어차피 눈에도 보이지 않는 거. 남들은 잘 믿지도 않는 거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인데, 누가 누굴 무서워하고, 누가 누굴 비난하면서 살겠어요.”
남자에게는 여자의 말이 마치 계시처럼 느껴졌다. 그가 믿는 분이 지금, 장난치듯 주시는 계시 일지 모른다고. 그리고 남자는 결심했다. 지금 이곳에 몸을 던지는 대신, 이 무거운 십자가를 던지겠다고. 그리고 뒤돌아 보지 않고 도망을 치고, 숨어 보겠다고. 그는 바로 손에 있던 성경책을 놓았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도 던져 버렸다. 그 두 가지가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되면 저 좀 숨겨 주시면 안 될까요?”
“뭐.. 저는 숨어 산지가 너무 오래돼서 상관없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근데 제가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요. 우선 몇일만이라도 숨겨주시면 뭐든지 해서 갚을게요.”
“아니요. 돈은 필요 없어요. 어차피 제가 쓸데없이 가진 게 많아서요. 우리 같이 숨어 살기로 한 거, 제가 가진 걸로 신나게 낭비나 해보죠. 뭐”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다. 기승전도 없이 어쩌면 너무 뻔한 결만 가지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그들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지금까지 그들의 억압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이었고, 자신들이 숨어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서로의 삶에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이 일 년이 되어 갈 때쯤, 여자는 자신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놀러 온 동자신이 그 생명이 하나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그로부터 10개월 후 그들에게는 서로 다르게 생긴 두 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들의 탄생으로 그들의 행복은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예정된 끝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게 그들이 함께 하는 삶도 끝이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