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AWAY
어느 날, 지함에게 DM이 도착했다. 37세의 남자. 생년월일과 시까지 보낸 그는 아주 짧은 메시지만으로 지함에게 미래를 말해 줄 것을 요구했다.
[느껴지기는 하는데요. 이 일로 인해 발생되는 그 어떤 일도 저한테는 책임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 동의를 하신다면, 제가 느껴지는 미래를 말씀드릴게요. 미리 알게 되는 미래로 당신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미래가 궁금하시다면 계좌로 입금부터 부탁드립니다.]
[입금했습니다. 말해주세요.]
[제가 느껴지는 것은 뭔가 숫자가 커지는 느낌이에요. 길지 않은 미래예요. 저는 잘은 모르지만, 숫자의 자릿수가 더 늘어나는 느낌에 빨간 색도 보이는 거보니, 뭔가 큰 수익이 생기실 것 같아요.]
[예. 감사합니다.]
그는 지함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코인에 전 재산을 투자했다. 마침 자신이 관심을 두고 보던 코인 종목이 조금씩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이던 터라, 그에게는 고민할 여지도 없었다. 그는 당장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주식을 팔아서 그 코인에 쏟아부었고, 심지어 자신이 속해 있던 조직의 공금까지도 손을 댔다. 그리고 결과는 쫄딱 망했다.
지함이 그의 미래에서 느꼈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주식이었다. 그는 자신이 투자한 코인이 하루 만에 -90%의 손실이 된 것과, 자신이 팔았던 주신이 그날부터 나흘 연속으로 상한가로 가는 모습을 보며, 지함에게 살의를 느꼈다고 했다. 특히 그의 조직에서 그가 공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그는 단순히 지함을 죽이겠다는 정도의 분노가 아니라, 지함을 통해서 새로운 돈벌이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잘 숨어라. 곧 잡을 테니.]
[저기요. 제가 결과는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그럼. 책임은 내가 져야지. 네가 알려준 그 알량한 미래로 내가 살인자가 되던, 사이코패스의 본능이 살아나던, 어차피 다 내 책임인 거니까. 넌 그냥 기다리고만 있어.]
지함은 그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메시지보다 더 무서운 메시지는 그 뒤에 따라왔다. PC방에 앉아서 겁에 질려있는 표정이 그대로 찍힌 지함의 사진이 DM으로 수십 장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날아오고 있는 자신의 사진은 지함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진 메시지가 멈추고, 잠시 후 다른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런어웨이 PC방. 이름 죽이네. 지금 바로 런어웨이 해야겠는데? 뭐해? 출발!]
지함은 순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함에 느끼기에는 그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지함이 쓰고 있던 PC방의 캠을 통해서 지함의 위치를 확인했고, 그가 휴대폰만 들고 바로 튀어 나가자, 잠시 후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PC방비는 결제하고 가야지. 여기 PC방비는 내가 대신 내줄게. 대신 네가 나한테 줄 돈이 5700원 늘었네.]
지함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있었다. 그의 공포는 극에 달해있었다. 하지만, 한쪽으로는 지금이라도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메시지로 이렇게 자신을 압박한다는 것은 아직 그가 이 근처에 오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마도 심리적으로 자신을 압박해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속셈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함은 바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계정부터 지웠다. 그리고 연락처에 들어가서 자신이 꼭 알아야 하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자신이 안에 받쳐 입고 있던 흰색 티셔츠에 적었다. 그 순간 팬은 있었지만 종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고민도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나? 어디 버스라도 탄 거 같은데, 지금 가는 방향을 보니 아무래도 320번을 탔나 본데? 형 얼마 안 남았다. 조금만 기다려.]
지함은 고민도 없이 휴대폰을 버스 좌석 사이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자마자 뛰어내렸다. 그는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현금인출기로 가서, 자신의 통장에 남아 있는 모든 돈을 뽑았다. 이미 휴대폰이 해킹당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시점에서 어디선가 돈을 자꾸 뽑는 것도 모두 생활 흔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지함은 돈을 뽑자마자 다시 반대편에 도착한 320번 버스를 타기 위해 무단횡단을 했다. 겨우 버스를 잡아 탄 지함은 바로 자신이 탔던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친구가 일하는 휴대폰 대리점으로 향했다.
대호는 지함과 어릴 적부터 친했던 친구다. 지함의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는 친구이기도 했고, 지함에게 단 한 번도 미래를 물어본 적이 없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물론 대호가 물어보지 않아도 지함이 먼저 그에게 느껴지는 좋은 일들을 말해줄 수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지함에게 한 번도 대호의 좋은 미래가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 둘은 남들과 같은 평범한 친구 사이가 유지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야. 나 휴대폰 하나만 개통해줘. 바로 되는 거 있지?”
“없지. 인마. 여기가 무슨 편의점이냐? 밤 8시에 와서 바로 개통되는 폰이 어디 있어? 왜 또 어디서 술 퍼먹고 폰 아작 냈냐?”
너무 급한 나머지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내 놓은 지함은 다시 한번 대호에게 말했다.
“야. 우선 농담할 상황이 아니야. 아무거나 좀 달라고, 나 좀 급해!”
지함의 표정에 뭔가 심각함을 느낀 대호는 말없이 자신의 폰을 지함에게 건넸다.
“야. 우선 이거 써. 난 가게 폰 있으니까. 내가 내일 바로 개통해줄게.”
“야. 고맙다.”
그 순간, 지함에게 처음으로 대호의 미래가 느껴졌다. 뭔가 자신이 들고 있는 대호의 전화로 좋은 소식의 전화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지함은 순간 고민했다. 이대로 내가 이 전화를 들고 가면 왠지 대호의 좋은 일이 없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래도 지함은 지금 전화기가 너무도 필요했다. 그렇게 지함이 고민하는 사이에 곰 같아도 누구보다 눈치가 빠른 대호가 지함의 행동에서 무엇인가를 느꼈다.
“너 무슨 일 있지?”
“어? 어...”
“근데 혹시 지금 나에 대한 것도 뭐가 보인 거냐?”
“어….”
“그럼 가자. 나 여기 관두지, 뭐.”
대호는 오늘따라 사장 놈이 자신만 놔두고 모두 술을 마시러 갔다는 사실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바로 돈 통에 있는 현금과 창고에 있는 최신형 핸드폰들을 자신의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장의 책상 서랍을 부수고 허름해 보이는 전화기 몇 대를 더 챙겼다.
“야! 너 이거 써!”
대호가 그중에 하나를 지함에게 던져줬는데, 이미 유행이 한참 지난 구형 모델의 스마트 폰이었다.
“그거 대포야. 안전해.”
대호는 지함과는 다른 방면으로 촉이 아주 좋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각보다 금방 취직을 하게 된 이 핸드폰 대리점은 처음부터 조건이 아주 좋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무런 경력도 경험도 없는 대호에게 웬만한 중견기업에 취업한 친구들보다도 더 많은 월급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좋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지함이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것을 보고, 그는 자연스럽게 이곳에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겉으로는 근사해 보였던 핸드폰 대리점은 온갖 불법적인 영업을 자행하던 곳으로, 처음에 제시한 조건도 결국 자신이 그 수많은 더러운 일들의 뒤처리를 도맡아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대호는 당장 관둘까도 생각해 봤지만, 자신의 미래가 다른 곳으로 가도 크게 달라지 것 갖지 않다는 촉과 어차피 독립해서 혼자 살아가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남게 된 것이다.
“야! 가자.”
“야! 이렇게 가도 돼? 너 이러다 큰일 나!”
“괜찮아. 어차피 이 새끼들 신고 못해. 나보다 구린 게 훨씬 많거든.”
“그래도 너 찾고 다닐 텐데……”
“여기 뜨면 되지! 뭐가 문제냐? 내가 이 동네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여기 뜨면 지들이 무슨 수로 날 찾아. 가자!”
지함과 대호의 도망은 그렇게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피해 가는지는 몰랐지만, 왜 가야 하는지는 명확했다. 지함은 자신이 무책임하게 벌인 일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도망이었고, 대호는 암담하기만 한 자신의 현재를 벗어버리기 위한 도망이었다. 그들은 방향도 모른 채 우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도망에 아무런 목적지도 없다는 것을 인지하자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 멈춰, 숨을 몰아 쉬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대호의 전화기가 울렸다. 순간, 둘이 서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전화가 대호의 좋은 일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여보세요?”
“대호야! 찾았다! 돈 가지고 와!”
대호는 전화를 끊자마자 어딘가를 향해 뛰기 시작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지함도, 그냥 대호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 넘게 뛰어서 대호가 도착한 곳은, 동네의 한 바이크 샵이었다. 대호는 상기된 얼굴로 그곳에 뛰어들어갔고, 안에는 꽤 그럴싸한 스쿠터 한대가 서 있었다.
“너 알았냐?”
“뭘?”
“나한테 생길 좋은 일.”
“이건 줄 몰랐지.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아까 그냥 네 폰 들고 나왔지.”
“난 네가 나한테 주춤거리는 순간, 이건 줄 알았어.”
“뭐?”
“너도 알잖아. 너 만나고 난 뒤에 나한테 단 한 번도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거, 그래서 나한테는 이게 제일 좋은 일이야.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은 나한테 없어.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거거든.”
“이게 그거냐?”
“맞아. 형이 나 사준다고 했던 거. 여기 사장님이 우리 형 친구거든. 우리 형 그렇게 되고, 사장님이 한동안 팔지도 못하고 있다가, 작년에 어쩔 수 없이 처분했다고 했거든, 근데 내가 취직하고 나서 첫 월급 들고 와서 이거 사고 싶다고 했더니, 그 얘기 듣자마자 사장님이 여기저기 수소문하셨대, 그 사이에 3번이나 주인이 바꿔서 상태가 썩 좋지는 않은데, 그래도 사장님이 타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했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유난히 가족들과 사이가 안 좋았던 대호는 그나마 유일하게 의지하며 살았던 사람이 자신의 형이었다. 그의 형은 모든 면에서 대호에게 우상이자 선생님이었다. 항상 형을 따라 하는 게 좋았던 대호는, 가끔 형이 타던 바이크를 훔쳐 타고는 했었다. 형의 바이크를 타고 형 흉내를 내는 것이 좋았던 대호는 결국 형한테 들켰다. 처음 대호가 자신의 바이크를 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의 형은 처음으로 대호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곧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대호를 말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의 형은 밤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대호에게 스쿠터를 하나 사주기 위해. 형제가 함께 달릴 멋진 드라이브를 상상하며 즐겁게 시작한 아르바이트였지만, 형은 얼마 가지 않아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원래도 말이 없고, 무뚜뚝했던 대호는 그 뒤로 더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살아온 대호의 삶에 형이 자신에게 사주려고 했던 자신의 스쿠터가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대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시동을 걸고 나에게 타라고 말했다.
“사장님, 아니 형. 진짜 고마워요.”
“뭘 인마. 난 나중에 너네 형 만나면 내가 쳐 맞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닐 거예요. 그리고 저 이제 여기 안 와요. 그러니까 건강해요. 형.”
“그래. 너도. 안전하게 타! 절대 까불거리지 말고.”
그렇게 지함과 대호는 스쿠터를 타고 출발했다.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둘이 합의한 것은 되도록이면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야 누군가 자신들을 가깝게 추격해 왔다고 하더라도, 몸을 숨기기 쉬울 테니 말이다. 그렇게 그 둘은 종로의 한 골목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