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비결 of토정-4

네 번째 장편소설

by 박희종

인사동


그들의 길을 멈추게 만든 건 그들의 식욕을 자극하는 길거리의 음식들이었다. 스쿠터를 타고 번화가의 골목을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곳곳에서 보이는 포장마차의 음식들이 그들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만든 것이다. 그들은 종로 지나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이 그들의 본능을 자극하는 냄새와 마주하고 말았다. 허름한 노포에서 진하게 풍기는 찌개 냄새에 그들은 오토바이를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식당은 이미 마감을 하는 분위기였지만, 안에는 손님 몇 테이블이 밥을 먹고 있어서 그들은 무조건 안으로 들어갔다.


“저 혹시 식사되나요?’


“그럼요.”


인상이 아주 좋아 보이는 주인 할머니는 나름 반갑게 그들을 맞아 주었다. 메뉴 판에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만 덩그러니 쓰여있었는데, 둘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취향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함이 주문을 했다.


“저희 김치찌개 2인분 주세요.”


“배 많이 고파요?”


“예? 아.. 에……”


처음에는 주인 할머니가 왜 자신들에게 그런 질문을 했는지 궁금했지만, 잠시 후 그들 앞에 놓인 밥상을 보고 그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모든 그릇에는 그 그릇이 최선이라고 느껴질 만큼의 음식들이 그득그득 담겨 있었고, 김치찌개의 양도 절대 2인분이라고 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이었다. 그들은 그 음식들의 양이 부담스러울 만도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신나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우리 사장님 또 버릇 도졌다. 이러다 얘네 또 매일 출근한다고요.”


“그럼 어때? 나야 좋지 이렇게 젊고 훤칠한 청년들 매일 보고.”


“또 이렇게 손님을 차별한다니까?”


“차별을 하면 또 어때? 어차피 내 가겐데? 꼬우면 오지 마!”


“뭘 또 그렇게 까지 얘길 해요? 섭섭하게.”


“그러지 말고, 우리도 계란 프라이나 몇 개 해줘요, 술안주 하게”


“프라이는 얼어 죽을.”


주인 할머니는 옆에 앉아있던 술 손님들과 투덕거리더니 그대로 또 주방으로 들어갔다. 지함과 대호는 주인 할머니와 손님들의 투덜거림 정도는 신경도 쓰이지 않을 만큼 허기져 있었고, 그 많은 음식들을 먹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주인 할머니는 쟁반 가득 계란 프라이를 들고 나왔다. 구석에 있는 손님들부터 1인당 하나씩 계란 프라이를 나눠주던 주인은 10개도 넘어 보이는 남은 계란을 모두 지함과 대호의 식탁에 놓았다.


“많이들 먹어요. 부족한 거 있으면 더 말하고.”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신 둘은 그제야 자신들에게 제공된 음식이 다른 테이블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음식을 제공한 주인 할머니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빛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들은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나머지 식사를 맛있게 하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음식을 다 먹는 것은, 한참 잘 먹을 시기의 그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둘은 왠지 작은 김치 조각 하나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은 어쩌면 어릴 적부터 온전하지 않았던 가족에 대한 지함의 결핍과, 항상 가족의 구성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항상 사이가 안 좋고 정이 부족했던 대호의 결핍이 통하는 시점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은 정말 마지막 남은 김치 조각 하나까지 남김없이 먹고 나서야 겨우 숟가락을 놓았다.


“아이고, 먹는 것도 예쁘네. 뭐 더 줄까?”


“아니요. 정말 배불러요. 감사합니다. “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그럼 진짜 다행이고.”


“저희 계산할게요.”


“아냐. 오늘은 그냥 가. 내가 오늘 재료가 많이 남아서 그냥 준거야. 그냥 가도 돼요.”


“어허! 사장님 또 그러신다. 꼭 저맘때 애들만 보면 저러시네?”


“다 먹었으면 집에 좀 들어가! 멀쩡한 부인이랑 자식새끼들 두고 왜 여기서 밥을 처먹어!”


“아니요. 그래도 저희가……”


“진짜 괜찮아.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앞으로도 배 고프면 자주 와요.”


지함과 대호는 당황스러웠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마치 진짜 할머니 댁이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수록 지함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얼마의 밥값보다도, 그저 자신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주신 저분께 무엇이라도 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마음에는 동시에 겁이 찾아온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본인이 이렇게 쫓겨 다니는 것도, 이런 자신의 오지랖 때문이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함의 성향이 그의 겁을 꺾었는지, 그는 결국 주인에게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저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성함하고 생년월일을 여쭤봐도 될까요?”


“어?”


“아니. 진짜 별거는 아니고요. 제가 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요.”


주인과 투덕대던 손님은 뭔가 말을 보태고 싶었지만, 그의 옆에 일행이 그를 말렸다. 그들은 뭔가 묘하게 흐르는 이상한 공기를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동안의 침묵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지함에게 집중시키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침묵 끝에 주인은 지함에게 대답했다.


“1959년 9월 26일 김 소분. 시간도 말할까요?”


“예.”


“저녁 6시.”


주인 할머니의 시간이 지함에게 들리는 순간, 그는 머릿속에는 그녀에 대한 미래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함에게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의 느낌이 머릿속에 좋아하는 노래의 멜로디가 떠오르는 정도였다면, 지금의 상황은 그 음악의 악보까지 자세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그에게 밀려오는 그녀의 미래는 굉장히 구체적이었고, 선명했다. 그는 순간 눈빛이 변하면서 그녀에게 말을 해줄 수 있었다.


“할머니, 아드님 찾을 수 있어요. 멀지 않은 곳에 있거든요. 중요한 건 아드님도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은가 봐요.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다니는데, 할머니께서 저희에게 하신 것처럼, 그동안 베풀어 주신 정들 이 아드님께 길이 되나 봐요. 아드님이 물어 물어 오시는 길에 할머니 밥을 얻어먹은 분들이 이리로 안내해주고 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주인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사연이 무엇인지, 어떻게 아들과 헤어졌는지, 거기 있는 누구도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마음만은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지함은 겁이 나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는 그 어떤 변수가 생겨서 삶이 달라진다고 해도, 아들을 볼 수만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모두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의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었다. 머리가 백발이 된 주인이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우는 모습을 보자, 그의 마음은 뭔가 조금씩 간질거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던 지함과 대호는 그 주인이 진정이 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주인이 진정되면 이 근처에서 묵을 만한 숙소를 물어볼 생각이었고, 이왕이면 오래 머물 수 있는 월세방이라도 소개받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큰길을 따라서 쭉 가다 보면 큰 전통찻집이 보일 거야. 그걸 끼고 왼쪽으로 돌면 아주 좁고 낮은 골목이 있어요. 그 골목을 따라서 한 5분을 걸어가면 길 끝에 갈색 벽돌로 지은 다세대 주택이 나오는데, 그 집이 우리 집이야. 이 열쇠가 대문 열쇠고, 이 열쇠가 옥탑 방 열쇠예요. 한 10년의 비워둬서 맘에 안 들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내가 일 년에 두 번씩은 대청소를 해놔서 당장 쓰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야. 우선 며칠이라도 거기 써요.”


“우와. 사장님, 혹시 아들 안 오면 따지려고 잡아두는 거 아니 예요?”


“며칠이면 어떻고, 몇 년이면 어때? 지금껏 수십 년도 기다렸는데. 그냥 하는 헛소리건, 나한테서 뭘 얻어내려는 사기꾼이건, 그동안 나한테 아들을 만날 수 있다고 확실하게 말해 준 사람은 이 청년이 처음이야. 그거면 돼. 그거면 난 그 방 내줘도 하나도 아깝지 않아.”


“아이고 총각들 땡잡았네.”


지함과 대호는 열쇠 두 개를 받고 어리바리한 상태로 식당을 나왔다. 도망을 치다가 배가 고파서 들어간 식당에서 이런 대접을 받을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주인이 알려준 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야. 넌 진짜 네 미래는 안 느껴져?”


“알면서 뭘 물어?”


“이건 어쩌면 나한테도 좋은 일인데? 내 걸로도 안 느껴졌어?”


“어. 그러네. 뭐 저 사장님이 나 때문에 이렇게 해 준거라 그러나? ”


“오래 알고 있지만, 아직도 매번 신기하다. 진짜!”


“야. 근데 스쿠터는 저렇게 둬도 돼?”


“우선 그 골목이 상태가 어떤지 봐야 되니까. 우선 먼저 가보고 다시 가지러 오지 뭐.”


지함과 대호는 불이 많이 꺼져있는 인사동의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여서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 걷다 보니 주인이 말한 전통 찻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정말 찻집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보니 좁은 낮은 골목길이 나왔다. 양 옆으로 키 낮은 담장과 대문들이 이어져 있었고, 그 좁은 골목에도 가정집을 개조해서 영업을 하고 있는 작은 찻집들과 한식집들이 있었다. 시간이 늦어서 대부분의 간판들도 모두 불이 꺼져 있었는데, 그중에 저 멀리에 작은 간판 하나가 켜있는 것이 보였다.


“야 저거 무슨 글자냐?”


“몰라. 내가 한자를 어떻게 알아?”


둘 다 뜻을 알 수 없는 한자 하나만 쓰여있는 간판을 보며 그 골목길로 들어가자, 지함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 느낌은 아까 주인의 미래를 보려고 할 때 느꼈던 그 느낌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그 간판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그런 지함의 표정을 읽은 대호는 심각하게 지함에게 물었다.


“야. 왜 그래?”


“몰라. 갑자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저기야?”


“어. 저기가 뭔가 이상한데……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꼭 날 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보자. 그럼. 어차피 지금 우리 상태에서 더 나빠질 게 있기나 하겠냐?””


지함은 대호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말하는 사이에 어느새 그 간판 앞에 서 있었고, 잠시 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뭔가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숙여 그 낮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손을 대자마자 스르륵 열린 대문 안에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작은 화단이 있었다. 그 화단 옆으로는 옥상으로 이어지는 파란색 철 계단이 있었고, 정면에는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려 있었다. 신발을 벗고 자연스럽게 그 집으로 들어간 둘은 천천히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주광색 조명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집안의 분위기는, 살림을 하는 가정집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서재이거나 작은 전시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좁은 복도를 지나 조금은 넓은 거실이 나오자 정말 박물관에서나 보던 옛 그림들이나, 서예 작품들이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인사동 길에서 많이 보이던 청자 항아리나 찻잔 같은 것도 놓여 있었다. 보안이 철저하게 되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봐서, 아주 비싼 것들은 아닐 것 같았지만, 그래도 뭔가 훼손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둘의 행동은 아주 조심스러워졌다. 그들은 그렇게 거실의 전시된 것들을 다 둘러보았지만 특별한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은 실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대호가 지함에게 눈치를 주며 나가자는 신호를 했는데, 그때 문득 지함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거실의 안쪽에 작은 문이 하나 보였는데, 그 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는 것이었다. 지함은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그 방으로 다가갔고, 대호가 채 말릴 틈도 없이 미닫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는 작은 책상 하나와 의자가 놓여있었고, 작은 향초가 하나 켜 있었다. 그리고 그 책상 위에는 아주 오래돼 보이는 고서가 한 권 놓여 있었다. 지함은 순간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것이 이 책임을 느낄 수 있었다.


“토정비결”


“뭐?”


“이 책 토정비결이야.”


“어떻게 알아? 너도 한자 모른다며?”


“야. 내가 그래도 이름이 이지함이야. 내가 비결 of토정으로 활동하다 이렇게 된 거고. 이 정도는 알아볼 수 있어.”

대호는 순간 이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지함에 옆에 서있기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호의 그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지함은 그 책에 이끌리듯이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앉아서 천천히 책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지함은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마치 VR기계를 쓰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처럼, 초점과 시선이 무섭게 움직이면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대호가 보는 시점에서 지함의 행동은 책을 읽는다는 것보다는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지함은 한 장 한 장 천천히 책을 넘기며 그 안에서의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있었다. 결국 지함은 그 책의 모든 장을 다 살펴보고서야 다시 예전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마친 그의 모습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열 번쯤 쉬지 않고 탄 사람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야? 뭐야?”


“너 내 말 믿을 수 있지?”


“믿기야 믿지. 네가 그동안 나한테 보여준 게 있는데,”


“지금까지는 장난이었어.”


“뭐가?”


“내가 미래를 보던 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 미래를 봐주던 건, 지금 내가 본 거에 비하면 다 애들 장난 같은 거였다고.”


“진짜? 뭐가 달라졌어? 여기 뭐 비법이라도 쓰여 있는 거야?”


“아니, 그냥 난 느껴져. 이 안에 잘못된 글자들이.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글자들이나, 원래 있어야 하는 글자들이 잘못 적혀있는 게 다 느껴진다고.”


“야! 이거 다 한자야!”


“그러니까. 내가 진짜 한자는 완전 꽝인데.. 뭔 글자인지는 몰라도 뭐가 잘못된 건지는 알겠고, 읽을 줄을 모르는 데, 무슨 뜻인지는 다 느껴진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근데, 중요한 건 이게 다가 아니야.”


“뭐?”


“내가 이 책에서 달라진 건 알겠는데. 나한테 다 보이는 건 아니라고, 뭔가 틀린 게 더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 더 이상은 나한테 안 보여.”


“뭐? 난 네가 하는 소리가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


“야! 너 핸드폰 줘봐.”


“핸드폰은 왜?”


“네 거 최신형이지? 이거 좋은 걸로 찍어야 나올 것 같아서.”


대호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자. 지함은 꺼져있던 전원을 켜서 바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표지부터 시작해서 모든 장의 사진을 찍은 지함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지함은 그 책을 다 읽은 순간부터 이 공간에 대한 목적은 다 끝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함은 그대로 서둘러서 밖으로 나갔고, 그 와중에서도 이곳이 너무 궁금했던 대호는 군데군데에 놓여 있던 팜플렛들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곳에서 나온 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갑자기 뛰어가기 시작했고, 전력질주를 해서 주인의 집에 도착했다. 지함은 서둘러 대문을 열고, 옥상까지 뛰어 올라갔고,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평상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야. 너 뭐냐?”


“그러니까. 나 뭐냐?”


지함과 대호는 본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함에게는 예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능력이 뭔가 레벨 업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지함은 그 사실만으로도 정신이 복잡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지함의 상태를 눈치챈 대호는 그냥 혼자서 자신이 챙겨 온 팜플렛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씩 팜플렛을 살펴보던 대호는 갑자기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야! 그거 진짜 토정비결 맞네.”


“아! 당연하지. 맞다니까.”


“우리가 들어간 곳은 아무래도 작은 개인 전시관 같은데, 소규모 전시회를 주로 하는 곳 같아. 근데 하필이면 지금 하는 것이 [토정 이지함 선생 특별전]이었어. 우리가 그냥 훑어봤던 것들이 그분의 생가에서 있던 물건들인 거 같고, 그 책도 토정비결 초판 본 인 거 같아. 다만, 여기 보니까. 전시된 모든 물건은 공식적인 인증을 받은 것은 아니고 직계 후손이라고 밝힌 익명의 후원자가 무료 전시를 진행한 거라고 하네.”


“신기하다. 진짜 날 부른 건가?”


“그럴 수도요. 이지함 선생님. 야. 근데 진짜 신기한 게 있어. 들어 봐. 한편, 토정 이지함 선생에 관해 떠도는 속설에는 그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기인이었다는 말이 있다. 그의 행적에 기이한 소문이 많았는데, 산길을 가다 허공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는 것을 목격한 이도 있고, 가난한 민중들을 위해 다양한 요술을 부려 그들의 생명을 부지시켜주었다는 말도 있다. 그는 특히 철로 만든 갓을 쓰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속설들 중에 유명한 것은 그가 미래를 볼 수 안다는 것이다. 그가 생전에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토정비결의 경우, 그가 알고 있던 사람들의 미래를 보는 비결을 정리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혹자는 그가 인간이 스스로의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이 그들의 삶에 예상치 못한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 죽기 전에 비결을 풀어내는 궤 중에 일부를 일부러 틀어 놓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신년에 재미 삼아 보는 토정비결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는 것이며, 특히 그가 의도적으로 안 좋은 기운을 나타내는 궤들을 더 많이 틀어놓았기 때문에, 지금 보는 대부분의 토정비결이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뭐라고?”


“야! 잠깐만. 더 대박이 있어. 그를 둘러싼 수많은 속설들 중에는 정말 허무맹랑한 속설들이 있는데, 토정비결은 기본적으로 사주팔자를 통해 미래를 점치는 것인데, 원리상으로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과 같은 운명의 사람들이 다수 존재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고 한다. 특히, 토정비결의 경우 그 경우의 수가 144궤로 다른 주역들에 비해서 나 올 수 있는 궤가 더 적어서 같은 운명의 존재가 다수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후세에 만약 토정 이지함과 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이가 있다면, 그가 틀어놓은 궤를 다시 맞출 수 있어. 그처럼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미래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뭐?”


“야! 이거 네 얘기 아니야?”


“그러니까 어쩌면 아까 내가 본 것들이 그분이 생전에 일부러 틀어 논 궤들이었단 말이야?”


“어때? 그런 거 같아? 나는 이걸 읽고 나니까 아까 네가 했던 말이 좀 납득이 가는데.”


지함은 순간, 이상한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이 토정비결을 쓴 사람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 자신이 뭔가 진짜 하늘에서 내려준 히어로는 아닐까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엉뚱한 망상들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맞아. 맞는 거 같아. 아까 나한테 보이고 느껴졌던 것들이 그 안에 있던 글자들이 변하고 틀어지는 느낌들이었거든, 그리고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읽지는 못해도 뭔가 다 머릿속으로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고.”


“야. 근데 그건 뭐야? 다가 아니었다고 했잖아. 뭔가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고.”


“함지”


“뭐?”


그 순간, 갑자기 함지의 존재가 떠오른 지함은 자신의 흰 티에 적어놓은 연락처 중에서 함지의 연락처를 찾기 시작했다. 아까 함지의 연락처를 적어 놓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흰 티는 어느새 자신의 땀에 젖어 잉크가 모두 번져 있었고,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숫자들도 있었지만, 두 개의 숫자는 완전히 번져서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야. 뭔데?”


“동생”


“뭐? 너 동생이 있었어?”


“어! 나랑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쌍둥이 동생.”


“그럼 혹시 그 동생이랑 너랑 그 능력이 나눠진 거야?”


“어.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우리는 어릴 적부터 따로 살았고, 일 년에 한 번만 보는 사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능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해본 적이 없어. 그런데 뭐 서로 눈치는 챘지. 나한테도 이런 게 있으니까. 쟤한테도 있겠지 하는 거 말이야.”


“그럼 네가 좋은 일들만 볼 수 있는 거니까?”


“응. 걔는 남들의 불행만 보이는 걸로 알고 있어.”


“아. 진짜..”


“왜?”


대호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뭔가 함지의 입장이 되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 같았다. 대호는 자신의 암울한 시기들이 떠올랐는지. 남들의 불행만 본다는 함지의 삶에 갑자기 자신의 마음이 상처가 난 것처럼 쓰리기 시작했다.


“정말 힘들었겠다. 너야 그나마 남들한테 좋은 말이나 하고 다녔지.. 걔는 보이는 게 남들의 불행이니, 사이코 패스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만나는 거 자체가 다 고통이었을 거 아냐. 진짜 힘들었겠네..”


순간, 지함은 자신이 한 번도 함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대호의 말을 듣고 나니, 뭔가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함지의 어두운 모습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함은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자신의 능력을 한 번도 싫다고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지의 경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않은 면을 받은 덕분에 누구보다 우울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네. 바보처럼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한 번도 못했지?”

“근데 너. 그 동생 번호도 못 외운 거야?”


“어..”


“에라이 빙신아!”


“야! 넌 너네 형. 번호 외우냐?”


“당연하지.”

.

순간, 지함은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호에게 형의 존재는 지함에게 함지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함은 그 잠깐의 말싸움을 이기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해버린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미안.”


“됐다.”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함지에 대한 미안함과 먹먹함. 그리고 대호 형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둘은 각자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감정으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대호였다.


“야. 그냥 다 걸어보자. 어차피 네 동생을 만나야 되잖아. 이렇게 된 거 한번 찾아보자고, 까짓 거 몇 명이나 된다고!”


그렇게 지함과 대호는 알아볼 수 없는 전화번호 두 자리에, 순서대로 숫자 넣어서 하나하나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문자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왠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조바심이 난 둘을, 그냥 무식하게 하나하나 모두 전화를 걸어보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대부분의 전화는 아예 받지를 않거나, 없는 번호였다. 없는 번호인 것은 자연스럽게 배제가 되는 것이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는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바로 문자를 남겨 두었다. 전화는 받지 않아도 문자에는 답을 해주는 경우가 있어서 그래도 점점 확인되는 번호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1시간이 넘게 전화를 하던 중에 드디어 원하던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혹시 이함지씨 전화 맞나요?”


“예 맞는데, 누구시죠?”


갑작스럽게 연결된 전화에 깜짝 놀라버린 대호는 그대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전화기를 지함에게 넘겼다. 지함도 너무 당황했지만, 지금 상황이 너무 급했기 때문에 당황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다만, 오랜만에 듣는 함지의 목소리가 유독 어둡게 느껴진 것은 대호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저 멀리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만으로도 지함은 왠지 그녀에게 미안함 마음이 생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