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
함지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에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보다 자신의 가족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이 더 크게 느껴지곤 했기 때문이다.
함지의 엄마는 하는 일이 없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차를 마셨고, 차를 마시고 나면 함지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집안일은 도우미 아줌마가 해주고 있었고, 식사도 도우미 아줌마께서 만들어 줬다. 그래서 함지가 성장하면서 필요한 것을 챙겨주는 존재는 대부분 자신의 엄마가 아니라 도우미 아줌마였다. 함지의 엄마는 함지에게 커다란 나무 같은 존재였다. 그저 곁에서 가만히 있어주는 존재.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함지는 한 번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엄마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느긋하게 살고 있었을 뿐이었고, 본인의 삶에 열정적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 엄마의 성향이 함지를 사랑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서 엄마는 함지에게 느슨하고 부드러운 모습만 보여줬을 뿐이다. 그래서 엄마는 한 번도 함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함지가 이뤄 온 것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우리 함지가 공부를 열심히 했구나.”
“우리 함지가 상을 받아왔구나.”
함지는 그럼 엄마에 의해 감정의 폭이 자연스럽게 좁아졌고, 어린아이답지 않게 잘 웃지도 않고, 잘 울지도 않는 아이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런 함지의 상황에 항상 예측 불가능한 불안감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의 외할머니였다. 함지의 엄마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무당인 외할머니의 덕이었다. 외할머니는 무당이라는 직업과 너무 잘 어울리는 외모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함지가 어릴 적부터 봐 온 외할머니의 모습은 어느 곳에 있어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화려한 꾸밈에 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옷은 원색이었으며, 반짝이나 형광의 아이템도 빠지지 않았다. 거기에 화려한 모자나 액세서리, 번쩍번쩍한 귀금속은 당연한 옵션이었고, 심지어 화장마저도 TV에 나오는 밤무대 가수들의 모습보다 화려했다.
외할머니는 자신과 다르게 아무런 의욕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함지 엄마의 삶이 너무 맘에 들지 않았고, 그 엄마의 영향으로 점점 엄마와 닮아가는 함지의 모습도 못마땅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손녀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으며, 함지가 어릴 때부터 왕 따를 당하기 시작한 것도, 그 외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남들보다 무심했던 엄마와 남들보다 유난스러웠던 외할머니 사이에서 자라 온 함지의 삶에, 원하지 않던 능력까지 발현되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처음에는 모두들 그저 걱정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함지도, 자신에게 느껴지는 불길한 예감들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걱정처럼 전하곤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걱정대로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하자, 함지와 가장 가까운 친구들부터 그 곁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 지함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능력이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얼마큼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함지는 더 이상 가까운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도 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알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린 함지는 그렇게 스스로를 자신이 만든 울타리에 가둬두고 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무심함으로 감정의 폭을 좁게 만들어 준 엄마의 태도가 오히려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함지는 기본적으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누군가의 정보를 알게 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래서 함지 아주 어릴 적부터 수업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살아가고 있었다. 함지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주위와의 소통에 겁을 내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생긴 사건 때문이었다.
남녀공학에 다니고 있던 함지는 그때도 친구를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스스로의 벽을 만드는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던 함지에게, 마음속에 자라나는 첫사랑이라는 감정은 결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 첫 등교를 하던 날,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남자 아이에게 함지는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친구들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는 것에 공포를 느끼던 함지였지만, 사랑은 누구나 그렇듯이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부터 시작되었다. 멀리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던 그녀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남자아이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갔고, 우연히 친구들의 수다 속에 섞여 있던 그 아이의 생일을 아는 순간, 그 아이에게서 일어날 불행한 일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함지는 그날 밤,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밤새 그 아이가 겪게 될 불행이 머릿속에 떠다녔고, 그 사실을 그 아이에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함지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그 남자아이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내일 체육시간에 절대 뜀틀 하지 마. 아프다고 하고 꼭 빠져. -마니또]
함지는 남들보다 일찍 학교에 등교해서 그 남자아이의 책상에 쪽지를 넣어두었다. 때마침 담임선생임이 반 친구들과 친해지라고 시켰던 마니또 게임이 적당한 핑계가 되었다. 메시지를 작성한 함지는 과연 그 남자아이가 자신의 말을 믿을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 메시지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이상하고 어이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다행히도 남자아이는 몸이 좀 안 좋다는 핑계로 체육 시간에 빠졌고, 운동장 펜스에 앉아서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함지에게 느껴진 그 남자아이의 불행은 그 아이가 체육 시간에 뜀틀을 뛰다가 두 손으로 짚은 뜀틀이 부서지는 바람에 크게 다치는 것이었다. 그때 함지는 그 불행이 그 남자아이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체육 선생님이 그 남자아이 다음 번호의 이름을 부르면서 출발을 시킬 때, 함지는 알게 되었다. 그 남자아이의 불행을 자신이 막은 것이 아니라, 그다음 번호의 아이에게 옮겨 놨을 뿐이라는 것을. 결국 남자아이가 당할 뻔했던 사고는 그 남자아이와 제일 친했던 다음 번호 아이의 사고가 되었고, 하필이면 학교 탁구부에서 가장 큰 기대를 받던 유망주였던 그 친구는, 그 사고로 팔뚝의 힘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더 이상 탁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그 사고는 단순히 그 학생의 불행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기물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고, 학생들 교육과 안전에 대한 책임도 같이 가지고 있던 체육선생님의 미래도 망가뜨리게 된 것이다.
함지는 그날 이후로 한동안 학교를 가지 못했다. 자신의 방에 처박혀서 그날의 자신의 행동을 수없이 반복하며 후회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기물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지 못한 자신의 멍청함에 화가 났고, 이후에는 어설프게 누군가의 삶에 끼어든 것을 후회했다. 결국, 함지는 그 사건을 계기로 타인에 대한 관심도 완전히 지워버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의 삶에 파고들어 오는 타인에 대한 정보까지도 병적으로 차단하며 살게 되었다.
함지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안, 함지가 학교에 일찍 와서 그 남자아이의 자리에 쪽지를 두었던 모습을 본 아이가 나타났고, 그 일에 대한 소문이 급격하게 번져 나갔다. 그 남자아이는 함지의 쪽지 때문에 자신이 체육시간에 빠지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탁구선수의 꿈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남자아이가 주도해서 함지를 따돌리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함지 역시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학교를 나가기 시작했을 때, 그 어떤 일도 자신이 모두 감당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함지가 따돌림을 당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함지의 외할머니는 학교에 찾아와 교장선생님을 만났고, 그다음 날 바로 그 남자아이는 인천으로 강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 남자아이가 인천으로 전학을 간 것도 외할머니의 철두철미한 계획이었다. 혹시라도 전학을 가서도 함지를 건들지도 모르니 자신의 가까운데 두고 감시를 하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지의 외할머니는 단순히 주동자를 전학 보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선생님들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까지 학교에 방문을 하자, 더 이상 함지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함지를 괴롭혔던 친구들뿐만 아니라, 그녀를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들마저도 말이다.
[악마 같은 년! 죽어 버려!]
강제전학을 떠나며 그 남자아이가 함지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였다. 함지가 이 메시지를 받고 가장 가슴이 아팠던 점은 그 메시지의 내용이 아니었다. 함지에게 그 메시지는 함지가 테어나서 친구에게 받은 첫 메시지이자, 유일한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그 뒤로 함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했다. 함지의 엄마도 함지를 분명히 걱정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나설수록 그의 엄마가 더 심한 간섭을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결국 비겁한 침묵을 선택했다. 함지는 그렇게 세상의 모든 소통을 스스로 차단한 채, 자신만의 세상에서 공부만 하며 학창 시절을 눌러 담았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수석으로 합격했던 날. 함지의 외할머니는 동네에 플랜카드를 걸고 잔치를 열었다. 원래 외할머니는 함지가 의대나 법대를 가지 바랬지만, 함지의 엄마가 처음으로 강하게 고집을 피우며 외할머니의 개입을 막았고, 결국 학과만큼은 함지가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함지가 국사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함지가 만약 외할머니가 원하는 의대나 법대에 갔다면, 자신은 평생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의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다고 생각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자신의 개입으로 인해, 상관없는 누군가가 운명에도 없는 불행을 감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도 분명히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함지는 누군가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를 연구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치열한 고민 끝에 선택한 대학생활도 결국은 함지를 이곳으로 몰아버리고 말았다.
학창 시절 내내 자신의 세상에 갇혀 공부만 한 것은, 함지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가장 친했던 친구의 꿈을 스스로 꺾었던 그 남자아이는 결국 전학을 가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왕 따를 주도 해서 강제전학을 오게 되었다는 사실은 어느새 알려져 있었고, 그도 결국 왕따의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노했다. 누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함지가 왜 본인에게 그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제 전학을 와서 왕 따를 당하고 있던 중학생에게, 공부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 공부에 누군가에 대한 분노까지 더해지자, 점점 더 집착이 되어갔다. 그는 모진 괴롭힘을 당하는 중에도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서 특목고에 입학을 했고, 모두 자기의 공부를 하느라 누군가를 괴롭힐 여유도 없던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누군가를 위한 분노를 휘발하며, 공부에 모든 에너지를 쓰고 말았다. 그는 결국 서울대학교 의대에 합격을 했고, 같은 학교에 함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인이 된 그 남자아이의 원한은 누적된 시간만큼 더 깊고 독해져 있었다. 그는 계획적으로 함지의 주변에 접근했고,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함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시작은 신입생 커뮤니티의 함지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는 것부터였고, 함지가 다니는 학부 친구들과 친해져서 그녀를 점점 더 고립시켜 나가는 방법으로 복수를 시작했다. 이미 그런 생활에는 너무 익숙해져 버린 함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생이 되어도 자신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실망감과 이제는 이 모든 것은 온전히 혼자 이겨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그녀를 점점 더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야?]
[난 네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죽어버려. 악마 같은 년아.]
[내가 가서 죽이기 전에.]
학과에서 메일이 왔다. 국사학과는 텔레그램에 단체방이 있다고, 신입생들은 바로 가입을 하고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함지는 텔레그램에 가입해서 아이디를 전송했다. 그리고 잠시 후, 메시지가 쏟아졌다. 알고 보니 과에서는 메일을 보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 남자아이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 최선을 다해서 함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함지가 무너진 것은 그 남자아이의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여전히 함지의 핸드폰에 그가 보낸 메시지가 유일하다는 사실이었다. 함지는 혹시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문자가 온다면, 그 문자를 스스로 지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함지는 여전히 혼자였고, 시리게 외로웠다. 함지는 어차피 사라지지 않을 외로움에, 이렇게 평생을 괴롭게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누군가의 한이라도 풀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스스로 올라갔다. 그리고 난간에 서서 저 깊은 바닥을 바라보는 순간, 이것이 어쩌면 자신이 오랫동안 바라던 진정한 자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비우고 저 깊은 바닥으로 뛰어 들려는 그때,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