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태혁의 삶은 지루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보이스 피싱 조직의 중간 책임자를 맡고 있는 그의 일은 아주 긴박하고 스릴 있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안을 들여다보면 매우 안정적이었고, 그래서 매우 지루했다. 이미 몇 년 동안 이어진 노하우와 커넥션으로 문제가 될만한 서버들이나 공장들은 이미 모두 다 외국에 위치해 있었다. 그마저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비상 상황들을 대비해서,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 대비 1.5배에서 2배 규모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태혁의 역할은 보이스피싱 파트가 국내 피해자들에게 갈취한 금액들을 대포통장으로 이체하고 출금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 역할마저도 언제 단속에 걸릴까 조마조마 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랫동안 유지해온 관계들을 통해서 안전한 루트로 자금을 세탁하고 현금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태혁의 주 업무는 은행과 경찰, 검찰과 기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접대를 제공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사거나 그들의 힘들을 활용하는 일들이었다. 물론, 그가 하는 업무 중에는 보이스피싱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의미 있는 개인정보를 사들이고 보이스피싱 파트로 넘기는 역할도 있었는데, 그 업무마저도 이미 개인정보를 정기적으로 넘겨받는 거래처마다의 루트가 있어서 마치 우유배달을 받는 것만큼이나 단순한 일이었다.
다만, 아무리 이런 업무가 익숙해지고, 리스크가 최소화된 최적에 시스템이 갖춰졌다고 해도, 그의 업무가 합법적이거나 안전한 일은 아니었다. 한국에는 자신의 조직 말고도 수많은 조직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고, 그들이 어떤 방법을 통해 그들을 공격하고 시장을 잠식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태혁의 불만은 날이 가면 갈수록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보이스피싱의 시장이 초기에 비해 규모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지속적인 아이템의 개발과 노하우로 인해 아직도 상당한 금액의 매출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매출이 실제로 조직의 수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에서 자신에게 주는 보상은 너무 미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기 또래의 다른 직장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돈을 받는 것이 사실이고, 자신과 같이 이쪽 일을 시작한 동기들에 비해서도 좋은 대우를 받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이 많은 태혁에게는 아직 성에 차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가 처음에 인생의 역전을 꿈꾸며 시작한 것은 주식이었다. 나름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일도 한국의 기업들의 정보가 중요한 분야이다 보니, 주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정보들이 간혹 있었다. 그런 정보들을 통해서 나름 꽤 쏠쏠한 수익을 만들어 내고 있었지만, 그렇게 수익이 나면 날수록 태혁의 욕심은 끝이 없이 커졌고, 1~20% 수익 정도로는 기쁘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본인의 상황에서 그것 말고는 큰돈을 벌 방법이 없었던 태혁은 범죄자답지 않게 아주 성실하게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자신이 데리고 있던 부하를 통해 이상한 놈을 알게 되었다.
#비결 of토정
부하를 통해 저 해시태그를 따라 들어간 게시물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을 마치 예언가처럼 떠받들고 있었고, 실제로 수많은 자료들이 저 사람의 능력을 검증해주고 있었다.
“정말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그는 밤새워 그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보면 볼수록 그의 능력을 믿게 되었다. 심지어 그에게는 그 인스타그램을 폭망 하게 만든 사건마저도, 그를 더 믿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었다. 태혁은 지함이 5만 원을 받고 미래를 봐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부하 10명에게 5만 원씩을 주며, 실질적인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 결과, 놀랍게도 그의 적중률은 100%였고, 실제로 부하 중에는 그의 말을 듣고 주식에 투자해서 3배가 넘는 수익을 본 경우도 있었다.
그는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 지루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그가 지금의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반전을 꿈꿀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였다. 자신만의 세력을 모아 지금 조직의 두목의 목을 치는 것이나, 투자를 통해 큰돈을 만들어 몰래 이 나라를 뜨는 것. 태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 번째 방법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 시도를 할 자신도 없었지만, 설사 시도를 한다고 해도, 그가 알고 있는 두목이라면 몇 겹의 안전망을 만들어 놔서 절대 목을 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 결국 투자를 통해 큰돈을 버는 것인데, 지금이 그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지함에게 자신의 정보를 넘겼다. 그리고 두근거리며 그 결과를 기다렸다.
[제가 느껴지는 것은 뭔가 숫자가 커지는 느낌이에요. 길지 않은 미래예요. 저는 잘은 모르지만, 숫자의 자릿수가 더 늘어나는 느낌에 빨간 색도 보이는 거보니, 진짜 대박이겠네요.]
그때 태혁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며칠 전부터 정찰병을 넣어두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코인 종목이었다. 자릿수가 바뀌고 숫자가 늘어날 정도의 변화라면 코인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주식을 매도했다. 그리고 그 주식이 계좌로 들어오는 시간 동안,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조직의 자금도 조금씩 빼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가 3일 만에 마련한 돈은 40억이었고, 통장에 그 돈이 모이자마자 고민도 하지 않고, 코인에 모두 쏟아부었다.
태혁의 달콤한 꿈이 현실로 보였던 시간은 딱 한 시간이었다. 그가 산 코인은 한 시간 만에 두 배까지 뛰었다. 그 순간 태혁은 마치 자신의 꿈이 이뤄지는 것 같은 무아지경에 빠졌었다. 바로 여기저기 이민을 가기 좋은 나라들을 알아보기도 하고, 자신이 너무 갖고 싶었던 차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달콤한 미래를 꿈꾸던 사이 그 코인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함의 말에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그저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올라가겠지. 다시 올라가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폭락하는 코인을 보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잠시 후 자신이 모두 매도한 주식들이 상한가를 기록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태혁이 투자한 40억은 하루 만에 8억이 되었고, 자신이 팔았던 주식들은 일주일 만에 3배가 되었다.
태혁은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결과가 온전히 자신의 잘못이고, 그에게 미래를 가르쳐 준 지함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을. 하지만 우선 그에게는 자신의 화를 풀어낼 대상이 필요했고, 남아 있는 8억으로 모든 걸 원상복귀시켜야 할 새로운 기회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활용해서 지함을 쫓기 시작했다. 자신의 조직에 속해있는 해커들과 자신이 관리하던 공권력의 정보력을 활용하면, 그깟 어린애를 하나 잡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에게 시간이 없었지만, 그의 성격상 그렇다고 서두르거나,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다. 그는 궁지에 몰릴수록 냉정해졌고, 약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함을 쫓고 있다는 힌트를 주며, 그를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런 상황이 나중에 그를 잡았을 때, 다루기 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함이 버스에 휴대폰을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태혁은 바로 인근 경찰서를 통해 교통상황 CCTV를 열람했다. 그리고 지함이 걸어가는 방향을 통해 그가 들어간 휴대폰 대리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태혁이 자신의 부하들과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함과 대호가 그곳을 털어서 도망을 간 후였지만, 태혁은 그 휴대폰 대리점 사장을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이 모두 복제되어있는 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대호의 전화기가 켜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함과 대호가 털고 간 휴대폰 대리점에서 전화기의 전원을 켜지기만을 기다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태혁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분명히 전원을 켤 것이라는 것을. 그의 끈기는 결국,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알려주었고, 태혁은 지금까지 기대하던 결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 말도 안 되는 정보를 들었을 때, 당연히 나머지 8억으로 모든 걸 되돌릴 뿐만 아니라, 다시 새로운 꿈을 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지함과 대호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시간을 끌수록 자신이 더 궁지에 몰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제 두목에게 모든 걸 말하고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두목은 아주 냉정하고 계산적인 사람이어서, 자신의 일탈을 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온 돈벌이에 대한 가치를 더 크게 평가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각오를 한 이상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형님. 태혁입니다.”
“그래.”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안다.”
“예?”
“너는 내가 너를 정말 완전히 믿고 있다고 생각한 거냐?”
순간, 태혁은 자신의 두목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었는지를 잊고 있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은 태혁에 등 뒤에서 땀이 흐르도록 긴장하게 만든 동시에, 지금이라도 두목에게 전화를 건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게도 했다.
“하지만 난 널 알잖아. 나는 네가 내 돈을 가지고 갔을 때, 정말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너의 일탈에 모든 과정과 정보를 알고 있었고, 나 역시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저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네가 네 부하들을 10명이나 테스트해봤던 것처럼.”
“죄송합니다.”
“알았다. 결과적으로 너는 나를 배신했지만, 스스로 나에게 고백했고, 그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혼자 욕심을 부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나를 이용해 더 큰 이득을 보겠다는 영리한 욕심을 부린 배짱도 아주 좋았고. 내가 필요한 사람은 무식한 곰 새끼가 어니라, 영악한 여우 새끼거든. 그러니까 용서를 받으려면 돈을 벌어와라.”
“예 알겠습니다.”
“우선 애들이건 돈이건 필요한 건 다 지원해 줄 테니까.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빨리 필요한 것을 확보해. 그리고 그 보물을 어떻게 쓰는 것이 더 유리할지는 같이 고민을 해보자고.”
“감사합니다. 형님”
두목은 태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가운 사람이었고, 훨씬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두목이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폰이 무서워졌다. 본인이 지함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의 모든 것을 두목이 듣고 있었던 것이었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했던 두목에 대한 말들을 다시 되짚어 보게 되었다. 하지만 곧 그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가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두목에 대한 욕을 했다고 해도, 두목이라면 크게 개의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목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것이었지, 상대방의 감정이나 태도 정도는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다만, 그는 앞으로의 행동을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 중에 누가 자신의 정보를 넘기는 놈인지 파악할 수도 없었고, 자신의 폰이 해킹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전원을 끄거나 일부러 방치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목이 자신을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부분은, 태혁이 다시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고, 계획대로 성공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태혁은 대호의 가방에 있던 대포폰이 지함에게 넘어가 전원을 켜는 순간부터 모든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함이 폰을 받고 스쿠터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면서는 주머니에 폰을 넣어두었기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태혁이 지함에게 문자를 보낸 것은 문자의 내용처럼 그와 협상을 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그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게 함으로써 목적지를 알아내기 위한 노림수이기도 했다.
“손님, 동부간선도로로 가겠습니다.”
그의 예상은 맞았다. 지함이 휴대폰을 창 밖으로 버리기 직전에, 멀리서 작게 들리는 택시기사의 말에 그들의 루트를 예상할 수 있었다. 태혁은 버려진 휴대폰의 위치를 중심으로 동부간선도로에 진입하는 루트를 찾아내도록 지시했고, 두목에게 도로정보센터의 CCTV 영상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지함과 대호가 갈라졌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하들을 바로 인사동으로 보냈다. 그의 계획은 우선 대호를 먼저 확보하여 안전한 보험을 들어놓고, 이후에는 정보들을 통해 쌍둥이가 서로 만나는 장소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둘이 만나서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이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태혁은 최대한 많은 인원들을 동원해서 그 둘을 쫓을 생각이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모든 지시를 내린 후에 두목에게 남아 있는 돈을 모두 보냈다. 그 돈에는 자신이 부모님의 집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은 돈까지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냥 다 보낼 수밖에 없었다.
[형님 죄송합니다. 남은 돈이 얼마 없습니다.]
[알았다. 그 새끼 잡으면 5700원은 꼭 받아서 밥이라도 한 끼 먹어라.]
두목의 농담은 그가 태혁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것이었고, 당연히 부모님 집의 대출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을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두목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게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는 가치는 없었다. 태혁은 그 5700원은 꼭 받아 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