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비결 of 토정-8

네 번째 장편소설

by 박희종

이지함들

“지함아! 출발해!”

대호는 자신이 이 상황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 지함부터 그의 동생에게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빠르게 그 안의 상황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 이곳의 공간에서 직접 확인한 곳은, 초판이 있었던 작은 방과 자신이 들어왔던 현관문이었다. 초판이 있던 방은 거실 딸려있는 창고 같은 느낌의 방이었기 때문에 외부로 통할 만한 문이나 창은 없었다. 그리고 미닫이 문으로 되어있던 현관은 외부에서 잠궈놔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지만, 여차하면 발로 부수고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렇게 본인이 들어오고 나서 문이 잠겼다는 말은, 저 방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이 집을 빠져나가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누가 자신을 이렇게 가뒀으며, 왜 이렇게 가두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아직까지 본인이 이곳에 와서 이렇게 감금을 당할 만큼 잘 못한 일도 없고, 이렇게 범죄가 될 수도 있는 행위를 감수하면서까지, 감금할 만큼 자신의 가치가 높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것일 거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저기요”

대호는 허공을 향해 소심하게 누군가를 불렀다.

“저기요.”

좁은 공간이었지만, 분위기 때문인지, 소리가 많이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번을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대호는 그냥 더 질러보았다.

“어디서 저를 보고 있을 것 같은데, 뭔가 목적이 있어서 이런 일을 벌이시는 걸 꺼 아니 예요? 나와서 설명을 좀 하라고요.”

당당한 척했지만, 대호는 겁이 많이 나있는 상태였고, 상황에 대한 불안함과 공간에 대한 공포까지 더해져서 그는 마치 화를 내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대호가 낸 화가 효과가 있었는지, 어디선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거실을 꽉 채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호의 눈에 보인 사람들은 다양한 나이대의 10명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특히, 그중에 가장 중심에 서있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70대의 노인이었는데, 대호에게 그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그가 가운데에 위치해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밝은 색 두루마기를 입고, 작은 갓을 쓴 모습인 그는, 대호가 혹시 지금 조선시대로부터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다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평범한 현대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한복을 입고 있는 그의 손에도 최신형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지금 이 상황은 현실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혹시 이지함 선생님이십니까?”

대호는 그 노인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지금 이 상황에서는 자신이 지함이 되는 것이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는데 더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이 되었다. 대호는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

“예. 제가 이지함입니다.”

“설마요.”

“예?”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그쪽 분께서 이지함 선생님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얼마큼인지를 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대호는 한복 입은 노인의 이해하지 못할 장난에, 기분이 아주 많이 나빠졌다. 어쩌면 대호의 감정상태가 두려움에서 분노로 바뀐 것은 그 노인의 장난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눈치가 빠른 대호는 어둠 속에서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에게 자신을 향한 공격성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그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적어도 나를 해칠 사람들이 아니라는 확신으로 바뀌자, 이곳에서 느꼈던 모든 불안감과 공포가 순간 분노의 감정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지금 뭣들 하시는 겁니까?”

“실례지만, 그 질문은 저희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 노인의 그 질문에는 대호가 당당할 수 없기는 했다. 뭐 여하튼 지금의 상황은 자신이 감금을 당한 상황보다는 자신의 무단 침입이 우선적으로 일어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호는 그렇다고 해서 약해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는 그 토정비결 초판이라는 것을 좀 빌려갈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정말이십니까? 정말 빌려가실 생각이셨습니까?”

“솔직히 아무도 없었다면 그냥 가지고 갔겠지만, 그랬다고 하더라도 나중에는 분명히 돌려주려고 했습니다.”

“그러신가요? 그럼, 빌려가시지요”

“예?”

“어차피 저희가 없었다면 그냥 가지고 가셨을 거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죠.”

“그러니 저희가 없다고 생각하시고, 그냥 가져가시라는 말입니다.”

대호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까 초판이 있던 그 방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 방문을 밀었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리고 그가 들어가서 초판을 들고 나오자 무리 중에 한 명이 친절하게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머릿속으로는 이대로 최대한 빨리 지함을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지 모를 찝찝함이 대호의 뒤통수를 당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잠시만요.”

“예. 말씀하시지요.”

현관문을 통해 나가려던 대호가 멈춰 서자, 그 노인은 마치 대호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대호를 보며 웃고 있었다.

“왜 웃으시죠?”

“아닙니다. 어서 궁금하신 것을 물어보시지요.”

대호는 그 노인의 미소와 능글맞음이 뭔가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보내 주실 거면서 왜 문은 잠근 겁니까?”

“그건 제가 드릴 것이 있어서요.”

“초판 말입니까?”

“아니요. 그건 이지함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이고요. 앞에 계신 분께 말입니다. “

대호는 순간, 이 대화의 주인공이 자신으로 바뀌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지금까지 지함과의 사건에서 본인은 철저하게 조력자였고, 크게 쳐줘야 조연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노인의 입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대호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지금 앞에 계신 분께서 이곳에 오실지 알고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지함 선생님이 이곳을 다녀 가실 것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 후에 그쪽 분이 다시 따로 오실 것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 늙은 노인네가 장난을 좀 쳐 본 것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부터 드릴 말씀은 참 길고 신비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앞에 계신 분께서 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시길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마지막에는 조금 어려운 부탁을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

대호는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비록 얘기가 길 것이라는 것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호가 지금 이곳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대답을 했다.

“듣겠습니다. 다만, 시간이 없으니까. 좀 요약을 해주시거나, 말을 좀 빠르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는데……”

“하하하하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럼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좀 빨라지려나..”

“아 그냥 좀 빨리..”

“좋습니다. 그럼! 여기부터 말하죠. 지금 선생님께서 보고 계신, 이 모든 사람의 이름이 이지함입니다.”

“예? 뭐라고요?”

“말 그대로, 지금 저희의 이름이 모두 이지함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희는 여기 팸플릿에도 나와있듯이 이지함 선생님의 직계 후손들입니다. 세상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저희 집안에서는 이지함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데, 힘이 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혹자는 저희가 토정비결을 물려받아 모두 역술 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저희는 그분의 가지고 계시던 재주를 따르기보다, 그분께서 품고 계셨던 뜻을 이어받아 살아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뭐 물론, 걔 중에는 진짜 역술인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만, 여하튼 저희는 나름 세상을 위해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삶에는 쉽지 않은 숙명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토정비결의 초본을 지키고 이어가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 숙명에는 속설로 알려져 있는, 그 비밀을 지켜나가는 것도 큰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대를 이어 숙명을 이어가는 우리 가문에서도, 그 속설을 진짜로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저희가 이어가고자 했던 것은 그분의 재주가 아니라, 그분의 뜻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모든 생각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제 아버지의 능력이 발현된 것이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남들의 미래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은 대단한 것은 아니어서 아버지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 봤자, 다음 주에 누가 고뿔에 걸린다는 것이나, 투기 판에서 돈을 좀 딸 것이라는 정도의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습니다. “

“어? 그건?”

“맞습니다. 지금 이지함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수준이었지요. 잠시 순서를 좀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저희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이지함 선생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도, 조금 놀라기는 했습니다만, 그분께서 느끼시는 미래의 수준을 보고, 그저 또 스쳐가는 우연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곧 알게 되었죠. 그분은 그래도 뭔가 좀 다르다는 것을. 실제로 저희 아버지께서는 좋은 궤나 나쁜 궤를 구분해서 느끼진 않으셨거든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결국 우리는 뒷조사를 통해 그분께서 쌍둥이 시라 것을 알게 되었고, 능력이 쪼개져서 발현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뭐가 대단한 거였나요?”

“그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저희 아버지의 얘기를 하자면, 그 집안의 모든 어르신들께서는 아버지의 능력이 전혀 의미 없는 사소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버지만큼은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는 홀로 이리저리 조사를 하며, 결국 이지함 선생님과 자신의 사주가 같다는 점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조사를 하다 보니 자신 이외에도 이지함 선생님과 같은 사주로 태어난 후손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왜 자신에게만 그런 능력이 있는지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통해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 아버지의 결론은 이름이었습니다. 이지함 선생님과 같은 사주를 타고 태어난 후손들 중에 자신만이 그분과의 성함에 겹쳐지는 한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더 많은 비밀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가지고, 온 집안의 샅샅이 뒤지고 다니다가 이 문서를 발견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대호에게 오래된 두루마리 하나를 건넸다. 대호는 그 두루마리를 받자마자 펼쳐보았지만, 모두 한자로만 적혀있었기 때문에 단 한 글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대신 해석을 해드리자면, 후에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이들이 세상에 찾아올 것이다. 그들의 두 눈에는 내가 숨겨놓은 세상의 이치가 보일 지며, 그 이치로 인해 남들보다 앞서서 세상을 만나는 비극 속에 던져질 것이다. 허공의 지팡이가 그들을 지킬 것이며, 무거운 갓이 그들을 누를 것이다. 삶을 앞선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보물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그대들에게 주는 눈을 그대가 선택하라, 눈을 떠 세상을 읽는 것도, 눈을 감아 이치를 덮는 것도 모두 다 그대들의 선택 이노라.”

“무슨 말이죠?”

“제 아버지께서는 이 문서가 이지함 선생님께서 후손에게 전하시는 선물이라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분과 같은 운명이라 믿고 사셨죠. 하지만 아버지는 죽음의 앞에서야 본인이 아님을 깨달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죽음 앞에서도 본인의 의지를 꺾지 않으셨고, 우리 집안에서 그분과 같은 운명의 존재가 태어나길 바라신 아버지는, 유언으로 앞으로 태어나는 모든 자손의 이름을 이지함이라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

“그럼 진짜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진짜로 지키셨다고요?”

“실은 저희도 필요했거든요. 처음에는 그분의 뜻을 이어, 세상에 더 큰 도움을 주기 위해 명망과 재산이 필요하다 생각했고요. 너무 오랫동안 같은 운명의 후손이 나오지 않자, 그 미련을 아무도 쉽게 버리지 못한 것도 있지요.”

“그럼, 이 집안 입장에서 지함이 와. 아. 죄송합니다.”

대호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이 이지함이라는 사실을 잠시 있고 있었다가, 말을 하고 나서야 그 사실이 머리에 떠올라 당황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저희는 이미 20명이 넘는 이지함들이 엉키며 살아온 지 한 세기가 다 되어 갑니다. “

“예. 그럼, 결국 제 친구의 존재가 이 집안에게는 절대 반갑지 않은 존재인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렇죠. 그래서 저희도 처음에는 모두 부정하려고 했었고, 나중에는 나쁜 마음을 먹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무엇인가를 실행하려고 토정비결 초판 앞에 섰을 때, 그때서야 알게 되었죠. 저희의 역할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걸. 어차피 이 운명은 그분께서 아주 오래전에 모두 보셨던 미래였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흰 그때부터, 이 시대의 이지함 선생님들께 찾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분명히 대상을 한 명이 아니듯 말씀하셨기에 당연히 그분들이라 생각했고요. ”

“여기까지는 알겠습니다. 많이 어렵긴 하지만, 친구에게 설명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아까 말씀하신 저에 대한 말씀은 뭐죠?”

“아까 두 분께서 이곳을 지나가시고 난 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참 많이 힘들고 벅차셨을 수도 있겠다고 말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홀로 알고 계셨던 그분께서는, 그 시대의 속세에서 수많은 비아냥과 공격을 받아내셔야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조금만 욕심을 내어보아도 훨 수월하게 살 수 있는 운명이셨을 텐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께서 참 외로우셨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세상에서는 그분이 마음을 나눌 벗하나 없으셨다 하니까요. 그래서 후세에 자신과 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날 자손은 혼자가 아니길 바라셨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시대의 이지함 선생님께서는 두 분이 되신 것이고요. 또 그분들의 고뇌를 함께 나눌 벗도 보내 주신 게 아닌가 하고요.”

대호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섞여 있어서 듣고는 있었지만,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노인은 그에게 지팡이와 철갓을 내밀었다.

“그 두루마리에 언급된 허공의 지팡이와 철갓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제 감이 맞다면 그 물건들의 주인은 선생님이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것들을 가지고 이 시대의 이지함을 잘 지켜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자, 대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받은 이 모든 것들이 지함에게는 분명히 필요한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대호는 분명히 지함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이곳에 스스로 들어왔다. 그러니 이들이 말하는 것들을 믿던 말던, 그에겐 이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그가 할 수 있는 말을 없는 것이다. 그저 그들이 건네주는 그 물건들을 챙겨서 서둘러 지함에게 달려가는 것 말고는 말이다. 그는 그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열려있는 현관을 통해 그곳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서 뛰고 있었지만,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생각 없이 한참을 뛰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스쿠터 앞에 서 있었다.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는 상태인 대호는 자신의 스쿠터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느껴야 한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채, 키도 없는 스쿠터에 앉아 멍하게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 있는 24시간 카페에서 여직원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까 친구분께서 오시면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예?”

대호는 자꾸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는 것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내밀고 있는 것이, 자신의 스쿠터 키인 것은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우선 받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무엇인가 빨리 설명해보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강이 보이는 카페 하버라는 곳으로 오라고 했어요. 어쩌면 휴대폰 검색이 안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좀 찾아봤는데, 아무래도 여기 인 것 같아요.”

직원은 카페 하버가 검색된 휴대폰을 대호에게 건 냈다. 그녀가 건 낸 휴대폰에는 구글맵을 통해서 검색된 로드 뷰가 보였는데, 강이 보이는 길가에 위치한 하버라는 카페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대호는 그곳의 이미지를 기억하기 위해 로드뷰를 회전하며 보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사진에서 찍힌 테라스에 어색하게 앉아있는 4명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작게 찍힌 사진이라 그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대호는 왠지 그들이 지함의 가족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함지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을 확대해서 보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존재이고, 우연히 딱 한번 통화해본 것이 다인 사람인데, 그녀의 삶을 상상해봐서 그런지,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그때, 그 직원이 머뭇거리며 대호에게 말을 걸었다.

“친구분을 만나시면 혹시 제가 너무 감사해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예?”

“제가 실은 오늘 정말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을 만큼, 한계가 온 날이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친구분의 말 때문에 거짓말처럼 괜찮아졌어요. 어쩌면 막상 그날이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냥 그날까지는 버틸 수 있는 희망 같은 것이 생겼어요. 정말 고맙다고 꼭 전해주세요.”

대호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신 인사를 받는 것이 너무 어색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문득 지함을 향해 진심으로 감사의 맘을 전하는 이 여자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그가 하고 있는 일들이 아주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지함과의 만남으로,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해버린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의 삶에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면, 지금 이 모든 상황에 무엇인가 분명한 명분이 생겨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고의 여유를 누릴 시간도 없이, 대호의 눈에는 저 멀리서 어색하게 걸어오는 험악한 사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순간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여직원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우선 저기 있는 사람들이 저를 잡으러 오는 것 같아요. 우선 뒤도 돌아보지 말고 카페로 뛰어들어가서 문을 잠궈요. 그리고 혹시라도 강제로 문을 열려고 하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요. 혹시라도 저 사람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냥 스쿠터가 부서져서 난동을 부렸다고 말해주세요. 진짜 조심하고요.”

대호는 아주 빠르게 말을 하고 나서, 바로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저 멀리서 대호의 모습을 본 사내들은 깜짝 놀라 뛰어오기 시작했고, 여직원은 대호가 시킨 대로 카페에 들어가 문을 잠궜다. 그리고 그때서야 눈치챘다. 자신의 핸드폰을 대호가 가지고 갔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