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비결 of토정-9

네 번째 장편소설

by 박희종

정우


정우는 지금 자신이 듣고 있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오로지 수학적 사고만으로 두뇌를 발전시켜온 그에게는 지금 들려오는 모든 정보가 온통 아이러니와 오류의 덩어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상황을 가볍게 넘기지 못하는 것은, 그의 불행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던 날, 자신의 합격증을 받고 눈물을 흘리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모든 걸 잊어볼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말도 안 되는 사건으로 소중한 친구와 학창 시절의 추억까지 모두 날려버린 그였지만, 결국 그 시련이 자신을 이렇게 부모의 앞에서 당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마음의 분노를 버리고,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항상 검은 옷만 입고 다녔던, 그의 옷장도 모두 비우고, 입학을 해서 맞이 할 푸릇한 봄날을 기대하며, 밝은 옷들로 채워 넣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학교에 등교하던 날, 그는 그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 멀리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아 버릴 듯한 화려한 옷을 입은 한 할머니가 빨간색 오픈카를 타고 들어오고 있었고,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무표정한 함지가 옆자리에 타고 있었다. 자신의 고난이 이렇게 찬란한 결과를 만들어주기 위한 인과관계였다고, 억지로 끼워 맞춰 마음을 추스르고 있던 정우에게는, 자신을 이렇게 만들고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자신과 같은 곳에서 마주치게 된 함지의 존재와 이 운명이라는 것에 치가 떨릴 만큼의 분노를 느꼈다.


그는 자신의 대학 생활이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함지가 웃으며 살아가는 꼴은 죽어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다시 끌어내려야겠다는 생각만을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분노의 감정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신의 삶에 대한 집착도 커지는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정우는 결국, 아주 철저하고 야비하게 그녀만을 공격하고 자신의 삶은 모든 고난에 대한 보상으로 꼭 성공하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정우는 함지를 더욱 지능적으로 괴롭히기 위해 그녀의 폰을 해킹했다. 신입생 단체문자로 가장해서 불법 해킹 코드를 전송시켰고, 그로 인해 그녀의 모든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의 삶을 몇 달 동안 훔쳐보고 나니까 더 궁금해졌다. 왜 나에게 그런 걸까? 그가 들여다본 그녀의 삶은 철저히 혼자였기 때문이다.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누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학생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을 뿐. 그래서 정말 궁금했다. 왜 이런 삶을 이어갈까? 왜 죽지 않는 걸까?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야?]


[난 네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죽어버려. 악마 같은 년아.]


[내가 가서 죽이기 전에.]


첫 메시지는 그의 본심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숨기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나머지 메시지도 보내고 있었다. 다만, 그녀에 대한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삶도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의 위안을 되었을 뿐. 진심을 숨기기 위해 또 독한 말들로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녀의 문자 메시지 함에 유일하게 담겨있는 문자가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이 정우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만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냥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내려고 그녀의 폰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순간에도 그의 마음은 아직 수많은 생각들로 엉켜있었다. 드디어 그가 바라던 복수가 마무리된다는 기쁨도 있었고, 그녀의 삶이 짠해서 이대로 끝나는 것도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이 그녀를 그곳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도, 그녀도 자신처럼 모두 잊고 다시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이런 복잡한 마음들이 엉키면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시간들을 흐르다가 마침내 그는 문자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죽지 마. 무책임하게.]


이 말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용서도 이해도 할 수 없었다. 응원도 위로도 그의 몫은 아니었다. 고르고 고른 최선의 말. 아끼고 아낀 최소한의 감정. 그저 그녀의 행동을 잠시 멈추는 것까지만 하겠다는 비겁하고 소심한 행동. 그는 그것이 자신도 그녀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문자를 전송하기 직전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조심해서 와요. 너무 걱정 말고요.}

그녀는 누군가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이상한 대화들을 나눴다. 그리고 그 난간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에게서 온 새로운 문자. 그녀에게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서 처음으로 문자가 들어왔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그녀가 그 문자를 받고 자신의 오랜 메시지를 삭제했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정우는 화가 났다. 이 감정이 싸구려 질투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정우는 그녀가 다시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문자가 삭제되는 순간, 그녀에게서 자신이 지워지는 것이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다. 그녀를 웃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옆에 서있었다면 자신이 직접 저 깊은 바닥으로 밀어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기 힘든 시간들이 폭풍처럼 쏟아졌고, 그 시간들이 지나자 정우에게 다시 차분한 이성의 시간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함지의 불행을 자신의 성공으로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나야. 정우.]


함지가 정우의 문자를 받은 것은 카페 하버로 가기 위해 택시를 막 잡았을 때였다. 택시 문을 열고 막 타려던 순간, 정우에게 온 문자는 함지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안 타요?”


[우선 타.]


택시기사의 말에 정우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그 문자로 함지는 알게 되었다. 정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함지는 지금 자신에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우의 말대로 택시에 탄 뒤에도 함지는 정우에게 아무런 답도 보낼 수 없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사과라도 할 줄 알았는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지금까지 수 만 번도 더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 말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말이다. 그럴 수만 있었다면 함지는 그 이후의 삶을 미안하다는 말만 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지는 그럴 수 없었다. 혹시라도 그의 불행이 느껴 질까 봐. 자신이 머릿속에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의 불행들이 보일까 봐. 그래서 또 그의 몫이 아닌 불행까지 그에게 찾아갈 까 봐. 그의 이름은 머릿속으로 떠올리지도 않으려고 노력했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문자에서 그의 이름을 본 순간, 거짓말처럼 그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전처럼 단순한 미래가 아니라, 자신이 모르던 지나간 불행의 흔적들까지도 모두 보이는 것이었다. 아마도 지함이 보낸 그 사진들 때문인 것 같았다. 함지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한 채, 정우가 살아온 삶을 아파하며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혹시 또 뭔가가 느껴지는 건가?]


이 문자로 함지는 정우가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의 인생에 자신이 개입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자신이 느낀 정우의 미래가 아무리 처참한 것이라도 말이다.


[연락하지 마. 이 일만 마무리하면 죽어 줄게. 네가 원하는 대로.]


처음이었다. 책상 서랍에서 함지의 쪽지를 받은 뒤로, 정말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함지와 정우의 관계에서 그 쪽지를 제외하면 정우가 함지에게 들은 첫 말이었다. 정우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사람 때문에 삶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는지.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었다. 정우는 결국 아까 보내려던 문자를 다시 보냈다.


[죽지 마. 무책임하게.]


[미안해하는 거 알아. 네가 지금 무슨 마음인 줄도 알고.]


[널 용서할 수는 없겠지만, 모른 척하며 살 수는 있을 것 같아.]


[그 토정비결 초판이라는 것을 나에게 주면 말이야.]


정우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이미 상황은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그가 파악한 상황으로는 결국, 그 토정비결 초판은 함지의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자신이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어. 남의 불행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이 너에게는 고통일 수 있겠지만, 의사가 될 나에게는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네가 네 오빠라는 사람의 능력까지 초판에 담아 올 수 있다면, 난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마음의 병도 고쳐 줄 수 있는 정말 좋은 의사가 되는 거야.]


[나에게 줘. 너의 굴레를 내가 세상을 돕는데 써볼게. 넌 나에게 넘기고 그만 편하게 살라고.]


함지의 마음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함의 계획에 동의를 한 것은 자신이 다시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우에 대한 죄책감부터 털어내야 한다는 사실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정말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돼서, 자신에게는 능력이 사라지고, 궤가 다시 맞아진 토정비결 초판으로 정말 정우가 좋은 의사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가 바라는 완벽한 미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지가 정우에게 그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본인에게 느껴지는 정우의 미래 때문이었다. 지금 함지에게 느껴지는 정우의 불행은 그가 가지고 있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녀가 본 그의 미래에는 성공에 대한 집착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그를 점점 더 썩어가는 모습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함지는 알고 있었다. 그 불행의 시작이 토정비결 초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더 이상 정우의 삶에 새로운 변수가 되고 싶지 않았다.


[싫어. 그냥 죽을래.]


함지는 그 문자를 보내고, 휴대폰을 그대로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았다. 자신이 버린 휴대폰에 대호가 보낸 문자도 남아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