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비결 of토정-10

네 번째 장편소설

by 박희종

택시


지함은 휴대폰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휴대폰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그저 창 밖으로 펼쳐지는 한강을 바라보는 것뿐. 다만, 그렇게 늦은 밤에 한강을 바라보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의 가족은 왜 일 년에 한 번만 만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들은 어쩌다가 이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 그리고 진짜 본인이 생각한 것처럼 초판을 가지고서 우리의 능력을 모으고 없앨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이 하다가 또 하나가 생각났다.


“아. 아까 찍은 사진도 휴대폰에 있었구나.”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함지의 폰으로 전송을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문득 대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우선 본인을 쫓는 조직이 그곳의 위치까지는 알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들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대호를 그곳에 묶어 둔 것인데, 혹시라도 위험한 일로 번진 건 아닌지, 계속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진짜 초판을 가지고 오면 정말 미친놈인데..”


순간, 대호의 이름이 머리에 떠오르자, 그의 미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대호의 경우는 생일과 시간까지 알고 있어서 더욱 구체적인 모습이 떠올랐다. 지함에게 떠오른 대호의 미래는 그가 스쿠터를 타고 지금 지함이 지나가는 이 길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잠시 후에 대호가 바로 이 길을 지난다는 것이었다. 지함은 그가 무사히 그곳을 나왔다는 사실과 그의 가방에 이상에 이상한 것이 꽂혀 있고, 많이 불룩한 걸로 봐서 초판도 가지고 오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대호의 뒤를 쫓는 검은 차량도 보았다. 대호의 미래에 대한 이미지 속에 커다란 검은 차가 그의 뒤를 쫓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때, 지함이 타고 있는 택시가 주택가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순간 저 멀리서 보이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 하수도 공사를 하는 곳이 보였다.


“기사님 저기 잠시 새워 주실 수 있을까요?”


택시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주택가 2차선 도로에 멈춰 섰다. 그는 우선 택시기사님께 5만 원짜리를 한 장 건네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지함은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유성 매직과 긴 끈을 사고, 빈 박스도 몇 개 얻어왔다. 그리고 옆 건물에 있는 주차 금지 표지판을 최대한 많이 가지고 왔다. 그리고 자신의 도로 진행 방향에 주차금지 표지판으로 도로를 막은 지함은 그 표지판 사이를 끈을 묶고 박스에 “공사 중”이라는 글씨를 썼다. 그리고 그 글씨 밑에는 “대호야.”라는 말과 함께 화살표를 그려 넣었다.


대호가 뒤쫓아오는 차를 따돌리기 위한 장치를 모두 설치하고 나서, 지함은 다시 택시에 탔다. 그리고 택시 기사님께는 주차금지 표지판을 돌아 원래 방향으로 직진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지함이 택시기사님께 그 말씀을 드리는 순간, 보조석 앞쪽에 붙어 있는 기사님의 신상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그 택시 기사님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기사님은 이 길의 끝쯤에서 나를 내려 주었고, 코너를 돌자마자 대전까지 가자고 하는 장거리 손님을 태우게 된다. 그리고 출발하는 배경으로 자신이 검은 옷의 사내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지함은 자신을 쫓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가깝게 와있다는 사실을, 그 택시기사의 미래로 알 수 있었다. 지함은 오만 원짜리를 한 장 더 꺼내서 택시기사에게 건네며 말했다.


“기사님, 죄송한데 저는 그냥 지금 내릴게요. 바로 출발하셔서 꼭 좌회전을 하세요. 그리고 따님은 이번 달에 취직하실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기사는 지함의 말에 어리둥절했지만, 지함이 택시를 잡았을 때부터 이상했기 때문에 미친놈이겠거니 했다. 지함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대호를 유도했던 길로 들어섰다. 잠시 후 급하게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가 크게 들렸다. 지함은 아무래도 빨리 대호와 만나서 좁은 골목을 스쿠터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지함의 계산으로는 대호를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지함은 하수도 공사장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몸을 숨기고, 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조용한 주택가에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함은 대호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다행히도 대호의 스쿠터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골목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지함은 바로 길로 뛰쳐나가 대호의 앞에 막아섰다. 하마터면 스쿠터에 칠뻔했지만, 지함은 지체할 틈도 없이 스쿠터의 뒷자리에 뛰어올랐다.


“출발해!”


“아이! 미친 새끼야! 죽고 싶냐?”


“죽고 싶겠냐? 우선 빨리 도망부터 가자, 아마 쫓아오는 놈들이 다 차를 타고 있는 것 같으니까, 우리는 최대한 골목으로 해서 그 놈들을 따돌려야 해.”


“넌 어떻게 알았어? 내가 이리로 올 거?”


“그 초판 죽이더라고, 나 미래가 막 눈앞에서 보여!”


“진짜? 대박이네.”


“근데 넌 누가 쫓아오는 거야?”


“몰라 그냥 나한테 오는 것 같길래. 뛰어봤는데, 내가 뛰니까, 같이 뛰더라고!”


“아. 어차피 다 한팬가?”


“뭐, 우리 쫓을 놈들이 그 놈들 밖에 더 있겠냐?”


“우선 정신없으니까. 좀 따돌리고 말하자!”


지함과 대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늦은 밤 사람이 없는 주택가 골목이다 보니 조금 멀리서 사람들이 뛰어다니며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차를 두고 뛰어다니며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그들을 쫓는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게 되자, 그들은 조심스레 큰길로 나와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야. 오늘 하루가 뭐 이렇게 기냐?”


“그러니까.”


“근데 진짜 웃긴 게 뭔지 알아?”


“뭔데?”

“너랑 나랑 만난 게 지금 6시간도 안됐어. “


“진짜 이게 무슨 일이냐? 이 상황을 재미있다고 해도 되냐?”


“미친 새끼. 죽고 싶지?”


“미안. 난 그냥. 뭐. 야! 그보다 함지는 바로 만나야겠지?”


“당연하지. 근데 잠깐. 혹시 네 동생한테도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우선 그 장소를 아는 건 우리 밖에 없잖아. 통화로 얘기한 적도 없고.”


“야. 그럼 우선 잠깐만 세울게.”


대호는 자신들을 쫓는 무리들을 조금 따돌렸다고 생각해서, 주택가의 한 빌라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스쿠터를 세웠다.


“그럼 우선, 나한테 새로운 휴대폰이 생겼거든. 그걸로 전화를 좀 해보자.”


“너 이건 어디서 났어?”


“아! 네가 스쿠터 키 맡겨 놓은 여자 거야.”


“뭐? 그걸 왜 네가 가지고 있어?”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는데, 넌 그 여자한테 뭘 해 준거야? 너한테 엄청 고마워하던데.”


“어? 별거 없었는데?”


“우선 그건 됐고, 급한 건 우선 함지 씨한테 전화부터 해보자.”


“함지 씨는 또 뭐냐?”


“그럼 뭐라고 불러?”


“내 동생인데 당연히 함지지!”


“야. 그래도..”


“ 미친! 그냥 야!라고 해! 야! 진짜 미친놈 아냐 이거?”


갑자기 얼굴이 빨개진 대호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지함은 대호가 함지에게 뭔가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갑자기 어색하고 이상했다. 하지만 또 마음 한 편으로는 함지의 외로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 시간 없어. 전화부터 하자고.”


“근데 너 번호는 알아?”


“당근 외웠지.”


대호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함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을 듣고 있던 대호는 갑자기 함지가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에 손을 떨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냥 지함에게 전화기를 주려고도 했지만, 막상 주려고 하니 함지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어 졌다.


함지의 휴대폰은 차가 없는 도로 옆에서 울리고 있었다. 함지가 달리는 택시에서 휴대폰을 던지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휴대폰은 액정만 조금 부서진 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울리던 전화를 누군가가 주워 들었다. 바로 정우였다.


“여보세요? 함지 씨?”


정우는 함지에 전화에 걸려온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은 뒤,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로 함지인 척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누구든지 간에 그를 기만하는 것보다, 불안감을 키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여보세요? 함지 씨? 괜찮아요? 오고 있는 거예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정우는 함지의 걱정을 해주는 이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상당히 불쾌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감정과는 다르게 그의 머릿속은 아주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아까 이들이 나눈 대화를 들어보면, 쌍둥이는 분명히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에게 필요한 토정비결 초판의 사진이 이 휴대폰에만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만약 미래를 알 수 있는 토정비결 초판을 완성시키기 위한 필요한 열쇠가 3개라면, 그중에 하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분위기상 저들도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을 쫓는 이들도 그들이 만나려고 하는 장소나, 함지의 위치는 모르는 듯했다. 그러니까 정우에게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필요한 열쇠는 3개고, 모으는 순서가 상관없다면, 자신에게만 정보가 있는 함지를 만나는 것은 가장 나중에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럼 우선 지금은 그녀의 오빠라는 열쇠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너지? 함지한테 문자 보낸 놈.”


대호는 갑자기 처음 듣는 남자 목소리가 들리자, 당황했다. 눈치가 빠른 그였지만, 지금 현재 상황에서 예상되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심지어 함지에 대한 본인의 감정까지 섞이자, 냉정하게 무엇인가를 사고할 상황이 아니었다.


“누구야? 너! 함지 씨는? 함지는 어디 있냐고?”


“뭐 이렇게 갑자기 로맨스야? 겨우 통화나 한번 한 사이면서.”


“뭐? 넌 누구냐 이 새끼야!”


“나? 함지 남자 친구!”


대호는 순간, 정우의 대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호는 좀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함지에 대한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호는 함지와 전화 통화를 한번 한 것이 다인 사이었고, 얼굴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호는 자신이 함지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이 분명한 이성에 대한 호감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에 대한 동정에서 시작한 것이든, 함께 겪고 있는 이 상황으로 인한 동질감이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정우의 저 말로 인해 함지에 대한 대호의 마음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뭐야? 왜 그래? 누군데?”


“함지 씨 남자 친구래……”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걔가 어떻게 남자 친구가 있어!”


지함은 화를 내며 대호의 손에 있는 휴대폰을 뺐어 들었고, 소리부터 지르기 시작했다. 지함이 알고 있는 함지는 남자 친구가 아니라, 친구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생각했다. 자신의 존재를 함지의 남자 친구라고 밝히는 저 새끼는 분명히 함지에게 원한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넌 누군데, 시작부터 개수작이야? 너 누구야! 함지 어디 있어!”


“아. 그 대단한 오빠신가?”


“넌 누구냐고 이 개새끼야!”


“나? 그년 때문에 인생 조진 새끼지.”


“그럴 줄 알았어. 찌찔한 새끼. 치사하게 여자한테 삐지 기나 하고.”


지함은 상대방을 좀 자극하려고 했다. 그래야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상대방도 절대 만만하지는 않았다.


“너도 대충 감이 오나 보네. 뭐 니들 쌍둥이한테는 나 같은 놈들이야 워낙 많았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함지는 어디 있는데? 넌 뭘 원하는 건데!”


“궁금한 게 많네. 나야 뭐 간단하지. 뭐. 우선 복수. 함지 년을 죽여버리는 거?”


지금 이 상황은 분명히 정우가 지함과 대호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과 상관없이 객관적인 성향과 능력 치를 비교한다고 해도 상대방의 심리를 더 잘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정우였다. 정우는 아주 짧은 대화로도 상대방을 충분히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적인 부분에서 정우는 그들을 이미 제압하고 있었다.


“뭐? 야 이 새끼야! 너 함지 손끝 하나라도 건들면, 찢어 죽여버릴 거야!”


“야. 역시 가족이라는 건가? 역시 전투력이 다르네…… 근데 솔직히 내가 함지를 죽인다고 달라질게 뭐가 있겠어. 살인자로 인생만 더 좆 되는 거지. 안 그래?”


“그래서 뭐? 뭘 어쩌라고!”


“토정비결 초판을 넘겨, 니들 능력으로 그 궤를 다 맞춰서. 그러면 나도 다 깔끔하게 손 떼고 모르는 척 살 테니까.”


“뭐?”


정우의 태도는 아주 분명했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도 하나였고, 그들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도 하나였다. 그러니 이 대화의 본질은 협상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그것은 자신에게 가지고 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다른 카드도 필요 없었다. 그저 그들이 가장 아끼는 것을 부숴버리겠다는 의지만 명확히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니들 쌍둥이 남들 미래 보는 거 지긋지긋하잖아. 내 앞에서 깔끔하게 그 작업하고 꺼지면 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물론 선택은 너희의 몫이야. 이미 나는 함지를 데리고 있고, 걔는 나한테 빚이 있어. 그러니까 나는 걔를 죽여도 되고, 가둬두고 두고두고 걔의 능력만 뽑아 먹어도 돼. 그러니까 니들이 알아서 해. 그 알량한 니 능력을 지키던지, 네가 그렇게 절절하게 부르던 함지를 지키던지. 내가 지금 핸드폰으로 주소 하나 보낼 테니까 거기로 와. 두 시간 안에 안 오면 난 내 맘 꼴리는 데로 할 테니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정우는 일방적으로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정우도 통화를 하면서 즉흥적으로 말을 이어간 것이어서, 속으로는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여하튼 그들은 성인 남자 둘이다. 함지 하나야 자기 혼자서 어떻게 할 수는 있었지만, 남자들이라면 상황이 달랐다. 지금 정우가 곤란한 건 지금 본인에게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 불러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순간, 정우는 자기의 삶도 함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 역시 너무 오랜 시간을 홀로 벽을 세우며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휴대폰의 연락처들을 한참이나 뒤져보던 정우는 정말 생각도 하기 싫었던 이름을 선택해야만 했다.


“이게 누구냐?”


“오랜만이다.”


역시 강철은 전화를 받을 것 같았다. 정우가 인천까지 강제 전학을 갔을 때,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왕따의 주동자였다. 정우는 그와 함께 했던 중학교 생활 내내 그의 괴롭힘을 온전히 견뎌야만 했고, 단 한 번도 반항하지 않았다. 물론, 정우는 그가 무섭거나, 그에게 절대 이길 수는 없겠다는 패배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스스로 강철에게 받는 괴롭힘이 자신 때문에 꿈을 잃은 친구에 대한 처벌이라고 생각했고, 함지에 대한 복수심을 더욱 불타오르게 하는 자극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강철과의 관계는 자신이 특목고를 입학하면서 끊어지게 자연스레 끊어지게 되었고,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원래 살던 동네로 이사도 왔기 때문에 더 이상의 우연도 없었다. 다만, 그는 들리는 소문으로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한 강철이 여전히 친구들을 괴롭히며 쓰레기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패거리들을 몰고 다니며,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고 들었다. 그런 강철은 지금 정우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또 물리적으로 가장 필요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는 생각했다. 본인이 그를 잘 다루기만 한다면, 그래서 본인이 원하는 것만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정우는 그만큼 간절했고, 그만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오랜만이다? 김정우 많이 컸다. 이제 어른이다 그거냐?”


“맞네. 우리 이제 어른이네. 강철아.”


“우와. 이 새끼 진짜 감 떨어졌네. 미쳤냐? 나 강철이야. 강! 철!”


“너도 이제 감이 없네. 중학교 내내 너한테 말 한마디 대들지 못하던 내가, 이렇게까지 나가면 뭐가 있다는 생각은 안 드냐? 촉이 안 와?”


정우는 알고 있었다. 이런 새끼들이야 말로 더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절대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이런 부류의 것들은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것들인데, 학교를 벗어나는 순간, 그들에게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진다는 것을. 여전히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고 다니지만, 20살짜리 양아치들이 치는 사고라는 것도 결국은 경찰들마저도 우습게 볼만한 어설픈 것들일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우는 강철의 자존심부터 긁었다.


“뭐? 이 새끼야? 너 진짜 뒤지고 싶냐? 진짜 똘아이네 이 새끼. 왜 갑자기 서울대라도 가니까. 막 세상에 뵈는 게 없냐? 예전에 따 당한 게 존나게 억울하고 그래? 어떻게 이제 어른답게 한 번 칼빵이라도 맞아봐야 감이 돌아오겠냐?”


“시끄럽네. 왜? 쫄았냐? 내가 복수라도 할까 봐?”


정우는 신기했다. 강철이 지금 현재 자신의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 얘기는 이미 나에 대해 자존심도 상해있고, 과거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는 말이다. 생각보다 훨씬 다루기 쉽다고 생각했다.


“내가 복수를 할 거면 이 시간에 전화를 했겠냐? 학교 선배들 동원해서 조용히 조져 버리지.”


강철은 겁을 먹었다. 정우는 알 수 있었다. 3년 내내 자신을 괴롭히던 강철이 여유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교무실에 불려 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천하의 강철이 지금은 정우의 한마디에 잔뜩 쫄아 있는 것이다.


“야. 지금 네가 모을 수 있는 얘들이 몇이나 되냐?”


“뭐?”


“내가 지금 니들 대가리수가 좀 필요하다고.”


여기서부터는 정우의 말 한마디가 아주 중요했다. 조금이라도 약해 보이거나, 밑 보이는 틈이 생기면 강철은 바로 치고 들어올 것이다. 그러니 치밀하게 그를 통제해야만 했다.


“머릿수만 채우면 되는 거냐?”


“야. 강철아! 내가 그깟 머릿수 채울 거면 이 시간에 너한테 전화를 했겠냐?”


“그럼 뭐?”


“겁 줄 새끼들이 있으니까. 와꾸 험악한 애들 좀 모아보라고. 너같이 무식하게 힘만 쓰는 놈들 말이야.”


정우는 세게 나가봤다. 어차피 지금의 상황에서는 모 아님 도였다. 강철을 확실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정우의 계획은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확실한 관계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


“강철아.”


“어”


“되냐고?”


“한 5명은 모을 수 있을 거 같아.”


“그래 좋아. 그럼 빨리 모아서, 내가 지금 주소 하나 보낼 테니까 그쪽으로 택시 잡아타고 와. 택시비는 내가 줄 테니까.”


“알았다.”


“그리고 강철아. 알지? 나 서울대야. 앞으로 내 인맥은 다 이 대한민국을 움직일 사람들이라고. 오늘 잘 도와주면 내 인맥이 다 네 인맥이 되는 거야. 알았지?”


“알았어. 고맙다.”


정우는 이제 지함과 대호를 잡을 준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만 자신의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정말 그동안의 모든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몇 년 만에 보는 강철의 존재가 본인에게는 분명히 리스크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들만큼 분명하게 그 일을 해줄 사람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