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비결 of토정-11

네 번째 장편소설

by 박희종

두목


두목은 처음부터 태혁을 믿지 않았다. 차라리 태혁이 자신의 돈을 완벽하게 빼돌려서 어디론가 도망을 간 것이었다면, 박수 치며 그를 용서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능력이니까. 하지만 공금을 빼돌린 것도, 그것을 확실성이 1%도 없는 말도 안 되는 곳에 투자한 것도, 그리고 그 투자의 실패를 또다시 이상한 미신의 힘으로 회복하려 한다는 것도. 그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두목은 사업가였다. 비록 불법적인 일들로 부정한 수익을 내고 있지만, 방법이 다를 뿐이지,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돈인 사람인 것이다. 심지어 그에게는 권력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수많은 정치인들의 뒤를 봐줬지만, 결국 끝까지 남아 있는 건 본인이었기 때문에.


태혁이 자신의 사람들을 부리기 시작할 때, 두목은 이미 그에 두 배가 되는 인원을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태혁의 행동에는 너무나도 많은 빈틈들이 있었고, 그 틈들이 쓸데없는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두목은 제일 먼저 대호가 일하던 휴대폰 대리점 사장을 데려다가 그들이 가지고 있을 만한 휴대폰들을 모두 조사했다. 그리고 그 휴대폰들의 통화내역과 그 휴대폰들과 통화 한 다른 휴대폰들의 위치도 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휴대폰들의 지나간 모든 길의 CCTV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두목은 인사동에 있는 모든 CCTV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함이 24시 카페에 들어가는 것도, 대호가 여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그 여직원의 휴대폰을 가지고 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휴대폰의 통화내역을 조사하는 것도, CCTV를 모두 확인하는 것도 모두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두목은 자신이 데리고 있는 모든 조직원들을 동원해서 빠른 시간 안에 그 일들을 해결하고 있었다. 인사동의 카페에는 두목이 직접 찾아갔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모두 알게 될 것들이었지만, 자신이 직접 가면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제가 물어볼 게 있는데, 대답을 잘해야 해요. 절대 어려운 걸 물을 건 아니니까. 겁먹지 말고요. 대답만 해주면 저희는 그냥 조용히 나갈 겁니다.”


검은 옷을 입은 수십 명의 남자들이 카페에 들이닥쳐서 자신에게 질문을 하자, 여직원은 너무 당황해서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우린 일반인들은 안 건드려요. 걱정하지 말고 질문에 대답만 해줘요. 알았죠?”


그의 말과는 상관없이 겁을 잔뜩 먹은 여직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휴대폰 번호가 뭐예요?”


“예?”


두목 뒤에 서있던 부하들이 순간 웃음이 나서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한 그들은 다시 무표정 모드가 되었다. 두목은 그들에게 마른 눈빛을 한번 보내고는 다시 편안한 표정으로 여직원에게 말했다.


“두 번은 봐 줄게요. 세 번은 묻게 하지 마요. 휴대폰 번호가 뭐예요? 여기에 적어요.”


여직원은 두목의 기운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순순히 그가 내민 종이에 번호를 적기 시작했다. 두목은 종이를 받아 뒤에 있는 부하에게 건넸다. 그리고 자신의 지갑을 꺼내서 수표를 한 장 꺼냈다.


“아메리카노가 한잔에 5,000원이네요. 우리가 여기 한 50명은 온 거 같으니까. 한 4잔씩 마셨다고 생각해주세요. 얘네들 진짜로 그 정도씩 마시는 놈들이니까. 그리고 아가씨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우리가 다시 볼일은 없어요. 알았죠?”


여직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목은 얇은 미소를 짓고 돌아섰다. 여직원은 순간 멈추고 있던 숨을 쉬었는데, 그때, 두목이 다시 뒤돌아 섰다.


“아. 아무래도 아가씨 휴대폰은 다시 못 찾을 거예요. 그것도 제가 먼저 드리고 갈게요. 뭐. 걱정은 마세요. 그 휴대폰 값 제가 다 제대로 받을 테니까.”


두목은 수표를 두 장을 더 건네고 카페에서 나갔다. 여직원은 그들이 모두 차에 타고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두목은 여직원의 번호를 통해 두목은 지함과 대호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는 태혁을 보며, 그의 무능력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태혁을 이 일에서 빼기로 했다. 그에 대한 처분은 그렇게 급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상황으로는 태혁은 어차피 도망도 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더 이상 쓸모없는 사냥개에게 먹이를 줄 필요도, 줄을 묶어둘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애들 빼.”


두목의 한마디에 태혁을 따르던 부하들이 갑자기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함이 전화기를 버린 곳에서부터 다시 CCTV를 뒤지며, 지함의 위치를 찾던 태혁은 대호를 찾던 쪽에서 둘이 같이 도망쳤다는 보고를 듣고 그쪽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무선 이어셋을 통해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던 부하는 갑자가 차를 길에 세웠다.


“형님, 잠시 내려보셔야 할 듯합니다.”


갑작스러운 부하의 말에 태혁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할 만큼 단호한 말투에 그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태혁이 차에서 내리자 부하들은 한마디 설명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그래도 출발해 버렸다. 그의 차를 따르던 나머지 차들도 그를 없는 취급을 하며, 스쳐 지나가 버렸다. 태혁은 그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것을. 아주 잠깐 그는 도망을 갈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가 도망을 포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두목은 이미 자신의 신상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함께한 시간이 워낙 길기도 했지만, 그렇게 냉정해 보이는 두목도 부하직원들의 가족들은 참 잘 챙겼다. 특히, 관리자가 되는 순간, 두목은 관리자 급의 가족들을 직접 관리했다. 명절이나 생일에 선물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었고, 그들의 가족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살뜰하게 챙겼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관리자들이 지금 태혁과 같은 상황을 맞이 했을 때, 그 어떤 행동도 쉽게 할 수 없는 덫이 되어버리곤 했다. 태혁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가 하는 모든 행동 중에 조금이라도 두목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가족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두목의 처분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의 삶은 앞으로 가장 처참하게 추락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주머니에 있는 마지막 카드를 현명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우선 자신의 휴대폰 전원부터 껐다. 아마도 오늘은 더 이상 자신을 감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주머니에 있는 액정이 깨져버린 휴대폰을 보았다. 그것은 지함이 버리고 간 대포폰이었다. 그리고 휴대폰 뒷면에는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었다. 태혁은 그 번호로 지금 도망을 가고 있는 그들에게 연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리에 버려진 태혁은 카지노에서 가진 칩을 모두 잃고 나서, 길에 떨어진 칩을 하나 주워 마지막 배팅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대호가 일하던 휴대폰 대리점에 갔을 때, 혹시 몰라 챙겼던 대포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