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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May 31. 2022

[결혼과 이혼 사이]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정서적인 아동학대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아이를 재우고 나오자 아내가 나에게 흥분하며 말을 걸었다.


"엄청난 프로그램을 찾았어."


아내가 보여준 프로그램은 나름 요즘에 화제가 되고 있는 [결혼과 이혼 사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내용은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4쌍의 부부의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기본적으로는 방송이 될 만큼 자극적인 사연의 부부들이었고, 실제로 방송이 되고 나서 수많은 비난을 받는 출연자도 있다. 나 역시도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의 공략 포인트가 바로 이런 부분이었던 것 같다. 특히, 출연자들과 비슷한 또래이고 비슷한 상황인 우리는 더욱 몰입이 잘 되었고, 흥분하며 보게 되었다.


"오빠. 고마워."


 아내는 같이 방송을 보는 동안 몇 번이나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아마도 방송에 나오는 출연진과 비교하여 나름 양호한 나의 남편으로서의 모습에 그런 생각이 든 것인 것 같고, 나 역시도 나를 항상 편안하게 해주는 아내의 심성과 이런 상황에서 항상 고맙다고 얘기해주는 아내가 마냥 고마웠다. 다행히 우리는 맞벌이와 육아라는 치열한 환경 속에서도 잘 살아가고 있고, 심지어 뱃속에 있는 둘째를 맞이 하는 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어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서로에게 대견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실은 방송을 보는 내내,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느꼈던 고마운 마음보다, 더 크게 우리를 사로잡은 감정은 분노였다. 방송은 그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장면부터,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와 생활하는 설정까지 부부들의 트러블과 싸움으로 꽉 차있었다. 고성이 오가기도 했고, 서로를 비난하거나 비꼬는 모습도 나왔고, 심지어 부부들이 우는 장면들도 많았다. 그런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이가 있는 부부들은 그 과정들 중에 아이들의 모습까지 그대로 방송에 비친 것이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데, 고성이 오가는 거실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게 혼자 앉아 있는 아이.]


[아빠에게 화를 내는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우는 아이.]


[엄마와 아빠의 싸움 중에 무표정하게 휴대폰을 보고 있는 아이.]


 내가 제일 화가 났던 것은 이 프로그램에서 이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부부들은 이혼을 하려는 이유나 결혼을 이어가려는 이유에서 아이를 거론하는 경우도 너무 많았는데, 정작 그들도 싸우는 장면에서는 아이를 위한 행동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거 아동학대야."


 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어쩌면 이 말이 너무 과도한 억측일지도 모르고, 그들의 삶을 모두 보인 것이 아닌 진짜 편집된 영상이기에 사실과 많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렇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편집된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할지라도 아이에게는 분명히 정서적 폭력이며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아무리 아이가 있는 장면이 더 자극적이라고 하더라도 부부간에 트러블이 있는 장면에서는 아이들을 분리시켰어야 했고, 아무리 그 모습이 평소의 삶에서 이어진 것이라고 했어도, 제작진은 조치를 했어야 한다.


그리고 심지어 내가 더 마음이 아팠던 점은 아이들은 대부분 이제 돌배기 근처의 아이들로 보였는데, 그 아이들의 행동이 비 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 익숙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미 아이가 있는 곳에서 수없이 싸웠을 것이고, 본인들이 싸우기 위해서 아이의 손에 휴대폰을 쥐어 줬을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정말 화나게 만들었다.


 나는 요즘 아이가 양치질을 하기 싫어하는 경우에 잠깐 영상을 틀어준다. 아이가 영상에 집중하는 동안 아이에게 양치도 꼼꼼하게 해 줄 수 있고, 가끔은 머리를 묶어주거나 밥을 먹일 때도, 조금 수월하게 하려고  영상을 수단으로 쓰긴 한다. 하지만 길지 않게 보여주는 영상에도 나는 항상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아내와 상의하며 점점 줄여나가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 아이들의 모습을 본 것이, 그들이 이혼을 고민할 만큼 심각하게 생각하는 갈등의 크기보다도 훨씬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결혼과 이혼 사이]라는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솔직히 잘 알겠다. 이혼을 고민하고 있는 부부들의 삶을 통해 우리들의 삶도 되돌아보고, 우리 삶에서의 갈등들도 잘 풀어나가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아무리 좋은 기획의도라고 하더라도, 아직 자신의 의지대로 무엇인가를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반드시 사랑받아야 하며,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함께 지켜주어야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제발, 부모의 이혼을 핑계로 아이가 학대당하는 모습이 더 이상 방송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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