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허공의 지팡이와 철갓
스쿠터에 함께 타고 카페 하버로 이동하는 세 명은 생각보다 빠르게 가지 못하는 스쿠터의 성능에 답답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인 남자 세 명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다 보니, 스쿠터가 제 성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휴대폰 내비게이션에서 나타내는 거리가 13km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지금 속도로 봐서도 1~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던 것이다. 다만, 이렇게 무작정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은 대호는 길가에서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가 잠시 스쿠터를 세웠다.
“왜?”
“이대로 무조건 가면 안 될 거 같아.”
“또 무슨 말이야?”
“아까 얘를 통해서 본 미래에 우리는 없었다고 했지?”
“어.”
“그럼. 혹시 우리가 가면 안 된다는 말 아니야?”
“아니야. 근데 얘 고백 장면을 내가 봤잖아. 그럼 지금으로는 얘는 별일이 없는 거지.”
“아니지. 얘가 꼭 우리랑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하잖아.”
“뭐?”
강철은 순간 이들에 말에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겁이 나는 것도 있었고, 반대로 궁금하고 신기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만으로 그곳에 가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안 서고 있었다. 어차피 태혁의 말을 듣지 않고, 얘들을 풀어주고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이상 조직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적다. 그렇다면 자신은 왜 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거기까지 가야 하는지 본인도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애는 됐고, 그것보다 우리도 뭔가 준비를 해야 할 거 같다는 거지.”
“그렇지. 뭘 좀 대비하고 가면 덜 위험하긴 할 테니까.”
“야. 혹시 내 미래도 안 보여?”
“어.”
“야.. 그럼 우리 다 죽는 거 아냐?”
대호는 지함이 너무 쉽게 대답을 하니, 갑자기 힘이 탁 풀렸다. 그런데 잠시 후, 이 모든 긴장의 끝은 결국 잡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아니야 그런데 아닐 수도 있어. 우리가 거기 가서 일어날 일들은 나로 인해 일어날 미래일 가능성이 커. 나들한테 미래가 다 안 보이는 이유는 그냥 내가 너무 많이 엮여있어서 일지도 모른다고. 뭐 여하튼,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대호는 정확히 자신들이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뭘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진 않았지만, 이대로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그냥 가는 것은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너 아까 그건 뭐야?”
지함은 문득 아까 태혁이 던졌던 지팡이와 철갓의 존재가 궁금했다. 태혁은 그냥 내팽개쳤지만, 자신이 느낄 때는 심상치 않은 물건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생각이 난 대호는 가방에서 이지함들이 준 문서를 꺼냈다.
“이게 무슨 허공의 지팡이랑 철갓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공간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 거 같아.”
옆에서 멍하게 구경만 하고 있던 강철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철갓을 써봤다. 하지만 그 철갓은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서 그대로 고개가 고꾸러 졌다. 그 모습을 본 대호는 조금 의아해했다.
“야. 그게 그렇게 무겁다고?”
자신은 너무 가볍게 들고 다니던 물건이었는데, 강철이 너무 무거워하니까 대호는 오히려 궁금했다. 그래서 바로 강철의 머리에 있는 철갓을 들어서 자신의 머리에 썼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가벼워서 일반 모자보다도 가벼운 느낌이었다.
“뭐야? 장난하냐? 이게 뭐가 무거워?”
“네가 이상한 거야!”
“뭔 소리야? 아까 그 아저씨도 쉽게 던졌잖아.”
그런데 대호는 순간 자신이 다시 그 철갓을 들었을 때 푹 파여 있었던 땅을 봤던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이 철갓의 무게가 원래는 상당한 것이었고,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만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뭔가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게 그럼 다른 사람들한테는 무겁나?”
대호는 그 얘기를 하면서 가볍게 지팡이를 들었다. 그런데 대호가 철갓을 쓰고 지팡이를 들자 갑자기 지팡이와 철갓에서 묘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묘한 빛들이 조금 떨어져 있던 지함과 대호를 감싸기 시작했다. 강철은 그들과 더 떨어져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빛으로 만들어진 돔은 강철만 배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강철에게는 이 돔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철갓과 지팡이에서 묘한 빛이 나오는 순간부터 놀란 표정을 짓던 대호와 지함과는 다르게 강철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서있었기 때문이다. 대호는 순간 알았다. 자신의 역할과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이거 뭔가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거 같은데?”
“그런가? 그러니까 네가 이 철갓이랑 지팡이를 들고 있으면 우리를 보호하는 보호막 같은 게 생긴다는 거잖아?”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순간, 대호는 자신의 역할이 이 쌍둥이를 보호하는 것이라면, 함지도 함께 보호가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혹시 지금 함지 씨도 보호가 될까?”
“되면 진짜 대박일 텐데. 원격으로.”
그 순간, 카페 하버에 있는 은신처에 있던 함지의 몸에도 이상한 빛들이 나타나더니 보호막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신기한 건 그 안에서 지함과 대호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럼 혹시 지금 함지 씨도 보호가 될까?”
“되면 진짜 대박일 텐데. 원격으로.”
“뭔지 몰라도, 돼요. 원격으로.”
허공에서 들려오는 함지의 목소리에 지함과 대호는 너무 깜짝 놀랐다. 지금 갑자기 생긴 이 공간에서 멀리 있는 함지와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뭐 휴대폰을 생각한다면 별게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런 통신기기가 없는 이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모든 것들이 밖에 있는 강철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여전히 멍하게 혼자 궁시렁대고 있는 강철의 모습을 보니 뭔가 우스운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대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함지 씨. 제 말 들려요?”
“예. 들려요.”
둘의 대화는 이미 그저 사실 관계만 묻는 거 만으로도 뭔가의 짜릿한 감정들이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감정을 지함은 모르고 있었다.
“대박! 이게 뭐지?”
“함지 씨, 우선 괜찮아요? 지금 어디예요?”
“아. 전 괜찮아요. 여기 카페 지하에 있는 은신처 같은 곳이에요.”
“은신처?”
“아. 이따가 와보면 알아. 거기는 어디예요?”
“저희도 가는 길이었는데, 잠깐 중간에 멈췄거든요. 한 10km는 남은 거 같아요.”
“아. 그렇구나. 근데 이거 진짜 신기하네요.”
“아. 제가 이거 토정비결 초판을 구한 곳에서 같이 받아온 건데요. 무슨 지팡이랑 철로 된 갓을 주셨는데, 이걸 쓰니까 우리 셋한테만 이렇게 보호막 같은 것이 생기고 대화가 되는 것 같아요.”
“진짜. 신기하다. “
“야! 신기하다는 말을 고만하고, 거기 상태는 어때?”
지함은 상황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마자, 그쪽의 상황이 어떤 지부터 물어봤다. CCTV를 통해서 모든 상황을 보고 있는 함지는 그들에게 모두 말해주긴 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도 줄 수 없었다. 다만, 그때 함지가 외할머니에게 전화한 것을 말했다.
“근데 외할머니 곧 오실 거야. 그래도 그럼 뭐가 좀 정리가 되지 않을까?”
“할머니가 온다고?”
“어!”
“어떻게 알고?”
“내가 전화를 했지. 무서워서.”
“할머니가 오신다고…..?”
지함은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 이유는 지함에게도 외할머니는 조금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함지가 엄마와 같이 살고 있고, 외할머니가 함지를 더 자랑거리로 여겨서 더 많이 예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외할머니는 지함도 똑같이 대했다. 아니 어쩌면 지함이 스스로 느끼기에는 자신에게 더 과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함지는 자기가 알아서 잘하는 편이었지만, 지함은 언제나 문제아에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를 해결하려고 외할머니께서 학교에 오셨고, 오실 때마다 너무 많은 주목을 받아서, 한때는 그랜마마보이가 별명이던 시기도 있었다. 그는 외할머니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너무 과하게 집착하는 모습에 함지만큼이나 항상 힘들어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항상 유난스럽고, 까다로운 분이셔서 지함의 친구들에게도 막말을 많이 하셨던 분인데, 대호에게는 한 번도 나쁜 말을 하신 적이 없다. 유독 대호에게만 말없이 용돈을 주시곤 했는데, 그 생각을 하니 지함은 갑자기 할머니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나도 전화할까?”
“휴대폰 있어?”
“어.”
“그럼 해봐. 안 그래도 너도 물어봤어.”
그리고 함지는 엄마에게도 전화했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보호막이 풀렸다. 지함은 바로 대호를 바라봤지만, 대호는 여전히 철갓과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둘은 갑자기 풀린 보호막에 어이없어해 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제일 황당해하고 있었던 사람은 강철이었다.
“야! 니들 뭐야!! 왜 갑자기 나를 본체만체하고 니들끼리만 소리 없이 이야기를 하고 그러는 거야?”
“넌 우리가 하는 말이 안 들렸어?”
“어!”
“그럼, 우리가 보이기는 했고?”
“어.”
“혹시 만져봤어?”
“뭐? 내가? 이런 미친 새끼가!”
강철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서 화를 냈다. 지함은 자신의 질문이 충분히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웃었다. 강철이 있어서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지함과 대호는 눈빛으로 이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함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지금 그곳의 상황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강철을 어떻게든 떼어놓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선 누군가를 괴롭히던 경험이 있는 애를 믿을 수도 없었고, 어차피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다녀야 한다면 한 명이라도 적은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강철이 갑자기 진지하게 지함에게 다가왔다.
“뭐야? 갑자기?”
“너 미래를 보는 거 맞지?”
순간, 지함과 대호는 서로 마주 봤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 다는 아니고, 너의 긍정적인 부분만 볼 수 있어 쉽게 말하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그럼 아까 나는?”
지함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강철에게는 그 상황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재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의 미래까지 보이는지, 그 능력 치를 알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강철이 좋아하는 여자와 사귀기 시작한 후에도 더 이상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 대호가 지함에게 말했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어.”
“알아. 그런데 잠깐만.”
지함의 시선은 다시 강철에게 향했다. 지함은 자신을 보는 강철의 불안한 눈빛을 차마 뿌리 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 지금 뭔가 불안한 거냐?”
“뭐?”
“너 지금 불안하잖아? 그래서 내 눈치 보면서 묻고 있는 거고.”
“….”
지함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강철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런 상황을 보고 있는 대호는 조바심이 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함지의 안전이 계속 걱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함은 앞에 있는 강철에게 자꾸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은 것 같았다.
“너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야? 어? 여기는 왜 온 거냐고! 너도 알지?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이대로 가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겉으로는 센 척 갖은 폼은 다잡아도 너도 지금 겁먹고 있는 거..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어서 그런 거잖아.”
순간, 지함과 대호에게 다시 보호막이 생겼다. 둘은 잠깐 당황했지만,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대호는 순간적으로 바로 함지를 불렀다.
“함지 씨! 들려요?”
“예!”
“이게 보니까.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 같고, 연속으로는 안 되나 봐요.”
“아. 그래요?”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아까 풀린 뒤로도 계속 이걸 하고 있었거든요. 아마도 일정 시간이 지나야 다시 활성화되는 듯해요.”
“아! 그리고 이거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보호막은 안 보이고 우리는 보이나 봐. 그리고 우리 목소리도 안 들려.”
“밖에 누가 있어?”
“아… 애가 누구냐 면……”
“아까.. 갑자기 우리한테 전화해서 함지 씨…… 함지 씨 남자 친구라고 사기를 친 놈이 있었어요. 근데 그놈이 오라고 한 데로 가니까. 또 그놈을 잡으려고 온 놈이 있더라고요.”
“예? 그 사람이랑 같이 있다고요? 걔가 정우를 조직에 팔아먹으려던 놈이에요!”
대호는 순간 감정이 복잡했다. 함지가 그놈을 정우라고 부르는 것이 우선 싫었고, 이름까지 알게 된 정우라는 놈은 더 싫었다. 그런데 그놈을 팔아먹으려고 했다니까 갑자기 밖에 있는 강철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호는 살짝 웃으며, 순간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미친놈이네.”
“뭐라고!!”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강철이 대호의 말에 반응을 한 것이다.
“야! 뭐야? 너 우리말 들려?”
“뭔 소리야! 당연히 들리지!”
지함은 당황해서 함지에게 그 말을 전했다.
“야! 이거밖에 있는 사람하고 대화도 할 수 있는데?”
“뭐? 진짜야? 근데 난 그 사람 말은 안 들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대호는 뭔가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 새끼 진짜 바보 같아.”
“뭐? 뭐야 갑자기?”
대호가 지함에게 강철에 대한 말을 했지만, 그 말은 강철이 못 듣는 듯했다. 대호는 대충 이 보호막의 시스템을 파악했다.
“다들 들어 봐요. 보니까 이 보호막은 우리끼리는 대화가 가능하고요. 우리끼리 하는 대화는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한테 안 들리는 듯해요. 대신 우리가 밖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다면 직접적인 대화는 가능한 듯해요.”
“뭔가 우리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면서 다른 사람과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거잖아? 스마트한데.”
“음.. 이걸 잘 사용해야 하겠다.”
“그러니까요.”
“그보다 언제 올 거야?”
“아. 이제 가야지.”
“나 부탁이 있어.”
“뭔데요? 뭐든지 들어 드릴게요.”
함지는 자신의 말에 대호가 대답을 하자 순간 좀 망설였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말을 꺼냈다.
“아까 말한 정우가 지금 저 사람들 차에 갇혀 있는 거 같아. 혹시 상황이 되면 좀 구해 줄 수 있을까 해서..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애지. 원래 나쁜 애는 아니거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대호의 감정은 흔들렸지만, 이내 지금은 질투나 할 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함지와 어떤 관계건 지금 이 사건에 휘말려서 위험에 처한 것은 사실이고, 그렇다면 자신들이 구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함은 함지의 부탁 덕분에 강철을 떨어트려놓을 방법이 떠올랐다.
“야. 너 미래 하나만 봐주라.”
지함은 함지에게 강철의 생년월일을 말했고, 함지는 자신에게 느껴지는 강철의 미래를 모두 얘기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날 때쯤, 보호막은 또 풀렸다.
“뭐야! 니들.”
“야! 너. 이대로 가면 죽어!”
“뭐? 너 좋은 미래만 보인다며!”
“네가 믿든 안 믿든 상관없는데, 나한테 쌍둥이 동생이 있어, 그리고 걔는 나랑 달라서 반대로 안 좋은 것만 보이고, 지금 우리가 걔랑 텔레파시 비슷한 걸 하고 있거든. 그래서 네 미래를 물어봤는데, 죽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안 좋은 곳만 끌려 다니다가 네가 좋아하는 그 여자애까지 못된 짓을 당하게 하고 같이 죽는다고! 알아?”
강철은 지함의 말을 절대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신이 불안해하던 미래를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고 있자니,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은 학창 시절 내내 그 어떤 노력도 한 적이 없었고, 만만한 애들만 괴롭히며 편하게 살았다. 미성년자라는 보호막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었고, 남들보다 조금 더 풍족한 부모님이 뭐든지 해결해 주셨다. 하지만 자신도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심지어 부모님도 더 이상 그 어떤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신 상태였다. 그 말에 욱해서 다음 달에는 자기 힘으로 독립도 하겠다고 큰소리까지 쳤는데, 솔직히 자신에게는 그 어떤 미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와 자신이 편돌이라고 놀리며 괴롭히던 친구들처럼, 편의점에서 알바를 할 수도 없었고, 멀쩡한 곳에 취직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가망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예전처럼 폼이라도 잡으며 살기 위해 안 좋은 형님들을 쫓아다닌 것이다. 하지만 본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곳에서 성공할 만큼 강한 사람도, 깡이 좋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느끼고 있던 모든 불안을 지함이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
“그럼.. 이제 나보고 어쩌라고……”
“기회가 있어. 네가 팔아먹으려고 했던 정우라는 놈이, 네 계획대로 나쁜 사람들한테 잡혀있데, 걔를 네가 구해줘. 네가 우리랑 같이 가서 우리가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너는 걔만 구해서 도망가라고. 그럼 분명히 끊길 거야. 우린 알아!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아! 바꿀 수 있어! 네가 마음만 다시 먹으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고”
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있었다. 대호는 그런 강철의 상태가 또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함도 대호에게 강철을 부탁하고 한쪽으로 전화를 하러 갔다.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모두 맘에 들지 않는 대호였지만, 그래도 함지가 아무 일 없다는 사실에는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할머니.”
“어디니?”
역시 외할머니였다. 함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외할머니는 지함의 전화에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전혀 당황을 하지 않고 위치부터 물었다. 지함도 이미 함지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거의 다 왔어요.”
“그래? 좀만 기다려라 이 할미도 금방 갈게.”
“근데, 할머니.”
“지함아. 무슨 말하려는 줄 안다. 할미가 다 해결해줄게. 니들은 아무 걱정하지 마. 알았지?”
“예……근데 지금 대호도 같이 있어요.”
“안다. 그것도. 아마 걔가 너희들한테는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까 꼭 붙어 있어.”
“아..……그럼 저희는 그냥 들어가요?”
“아니야. 근처에 가서 숨어 있어. 우선 함지랑은 같이 있지 말고, 너 이 전화기 계속되는 거지?”
“예..”
“그럼 할미가 20분이면 도착하니까. 숨어있다가 할미가 전화하면 그때 만나자.”
“예. 알았어요.”
“혹시 엄마, 아빠한테는 전화했니?”
“아니요.”
“잘했다. 이런 일은 할미가 전문이야. 괜히 걱정들만 할라. 우리 지함이 걱정 말고 잘 숨어 있어.”
“예.”
평소에도 지하에게는 자상한 외할머니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다정한 할머니가 왠지 어색했다. 하지만, 지함도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할머니뿐이라는 사실을. 지함은 통화가 끝나자마자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대호도 강철과 대화가 잘됐는지 이미 스쿠터에 타 있었다.
“야. 너는 가자마자. 건물밖에 있는 4865차에 정우가 있다니까 바로 구해서 도망쳐. 차 문도 열려있고, 키도 안에 있다니까.”
“그런 거까지 보여?”
“어. 그렇더라고.”
“대단하다.”
“그리고 구하면 꼭 사과해. 진심으로. 그래야 너한테 내 미래가 보일 거야!”
“알았어.”
지함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불확실성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희망이기도 했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항상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김이 새는 느낌이기는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능력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이 불확실성이 지함에게는 큰 희망이 된 것이다. 자신의 노력과 선택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이 생각을 조금 더 일찍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만 하기로 했다.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그들이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려면 마냥 낙천적인 생각만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