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비결 of토정-15

은신처

by 박희종

함지는 정우의 문자를 받자마자 펑펑 울었다. 용서. 감히 이 단어를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받은 것도 용서였고, 그가 한 것도 용서라는 것을. 함지는 울고 있었지만, 정우의 마지막 문자에 잊었던 자신의 상황에 대한 심각성도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이면 지금의 기사님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지는 기사님께 휴대폰을 다시 드리면서 보조석에 있는 기사분의 신상정보를 보았다. 눈으로 그 정보가 들어오자마자 그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 택시를 내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여서 그런지, 그의 미래에 자신의 모습은 없었다. 다만, 그는 갑자기 자신의 차를 막아선 여러 대의 검은 차 때문에 아주 많이 놀라 있었고, 처음에는 아저씨의 호기로운 성격 때문에 대들었다가 폭행을 당하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그 이후에 큰 사건은 벌이지 않고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이 기사님은 그 안 좋은 기분으로 집으로 들어가서 술을 마셨고, 아내에게 안 좋은 방법으로 화풀이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 저 여기서 세워주세요.”


“예? 아직 멀었는데?”


“저 돈은 더 계산해서 드릴게요.”


함지는 자신의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서 5만 원짜리 2장을 건넸다. 그 돈을 받은 기사는 생각보다 더 많은 돈을 주자 당황했다. 함지는 그런데 거기에 5만 원짜리 2장을 더 건넸다.


“이미 너무 많이 주셨는데..”


“기사님, 제가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 더 드리는 거예요.”


“예?”


“아마 저를 내려주고 나시면, 얼마 안 있다가 검은 차들이 쫓아와서 아저씨 차를 세울 거예요. 그러고 아저씨한테 저에 대해서 물을 건데, 그때 그냥 다 말씀해주세요. 그래도 돼요. 저는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요. 그리고 나서 그냥 오늘은 일 그만하시고, 집에 들어가세요. 집에 가는 길에 치킨이나 한 마리 사서 아내 분이랑 기분 좋게 드시면 좋겠어요.”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아저씨 저는 다 알아요. 아저씨가 기분이 안 좋게 술을 드시면, 아내 분께 어떻게 하시는지. 그래서 아저씨께서 지금 얼마나 힘들게 술을 끊고 계시는지. 오늘도 참으실 수 있을 거예요. 우선 오늘부터 잘 넘겨봐요. 제가 이렇게 아저씨께 간절하게 말씀드리는 건, 아저씨가 오늘 술을 마시면 오늘 또 아저씨 집에는 불행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제가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오늘 일 때문에 아저씨 따님에게 더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은 꼭 속는 셈 치고, 제 말 들어주세요. 알았죠?”


함지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바로 택시에서 내렸다. 기사는 함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꽁돈이 생겼다는 거, 그리고 이 기분이라면 집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 이상한 손님의 말은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함지는 때마침 건너편에서 다른 택시가 오는 바람에 그 택시에 탈 수 있었다. 택시에 탄 함지는 바로 위치를 이야기한 후에 기사님께 휴대폰을 빌렸다. 또 기사님의 휴대폰을 빌리는 것이 부담일 수는 있었지만, 지금의 이 통화는 정우나 지함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지금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통화만큼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기 너머로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몇 번의 신호가 가고 나서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


함지의 외할머니는 시간이 아주 많이 늦었지만, 전화를 받았다.


“어디니?”


그리고 외할머니의 반응은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니?’가 아니라, ‘어디니?’였다.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할머니, 알아요?”


“넌 내 직업이 뭔지 아직도 모르는 거냐?”


“아니, 진짜 그렇게 다 알아요? 원래?”


“아니, 네 일이잖아! 적어도 내 새끼들 일을 다 알지! 너랑 지함이 혼이 이렇게 요동치는데, 그것도 모르면 난 깃발 내려야지. 그래서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저는 괜찮아요. 근데 지함이는 좀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선 둘이 만나기로 한 거야?”


“예.”


“어디서?”


“우리 가족 매년 만나는데요.”


“알았다. 지금 택시 타고 있니? ”


“예”


“그럼 우선 이 할미가 바로 갈 테니까. 너도 도착하면 근처에 차대고 내리지 마. 택시비는 얼마든지 준다고 하고.”


“예 알았어요.”


“지함이는 연락이 되니?”


“아니요. 지금은 지함이도 연락되는 휴대폰이 없어요.”


“우선 알았다. 내가 바로 가마.”


함지는 외할머니와 전화통화를 끊고 나서 바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비록 자신에게는 너무 과해서 항상 부담스러운 존재였지만,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든든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휴대폰을 빌렸을 때, 엄마에게 전화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는 외할머니가 가장 빠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아직 그곳에 도착하기까지는 1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고, 아무리 마음이 좀 안정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함지는 휴대폰을 돌려주기 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 함지야.”


“좀 일이 생겼어.”


“무슨 일인데?”


함지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그 일들을 들으면서도 큰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외할머니의 얘기가 나올 때, 크게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온다고 했다고?”


“어.”


“자 함지야. 잘 들어. 우선 도착해서 카페 정문에 있는 현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이 있을 거야. 그 계단으로 들어가면 철문이 하나 나오는데, 도어락으로 잠겨 있을 거거든. 그 비밀 번호는 니들 생일이야. 우선 거기에 들어가 있어.


“어?”


“거기 이름이 카페 하버인데, 다른 이름이 은신처잖아. 거기가 정말로 엄마 아빠의 은신처야. 그러니까 거기 들어가 있어.”


“그럼 지함이는?”


“우선 네가 거기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할 거야. 그러니까 나머지는 엄마랑 아빠가 해결할게.”


“엄마 아빠도 오게?”


“그럼 가야지. 우리 가족 일인데.”


엄마와의 전화통화가 끝나자, 눈앞에 카페 건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함지는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을 기사님께 드리고, 바로 내렸다. 다행히 아직은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함지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현관을 돌아가 보니 정말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꽤 오랫동안 이곳에 왔다고 생각했고, 이 주변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신기하게 이곳에 지하실이 있는지는 몰랐다. 그런 공간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함지는 너무 신기했다. 함지는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지하실로 들어갔다. 정말 자신들의 생일을 누르자 도어락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진 세상은, 정말 다른 세계 같았다. 그곳에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포근한 가정집이 있었고, 강으로 향하는 쪽에는 아주 커다란 창이 흐르는 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 카페를 왔을 때, 1층이 인근의 다른 건물들보다는 위치가 반층 정도 높았고, 1층과 테라스 앞쪽에는 바로 낭떠러지였기 때문에 펜스가 쳐 있었다. 어쩌면 그 펜스의 존재가 안전보다는 이 공간을 숨기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벽에는 온통 자신과 지함의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었는데, 아주 아기일 때부터 아주 최근의 사진까지 다양하게 걸려 있었다. 심지어 매년 우리 가족이 모일 때마다 같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 사진들도 한해도 빠짐없이 붙어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함지가 이곳에서 제일 신기했던 것은 이곳의 상태가 바로 오늘 낮까지도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이었다.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들도 오래돼 보이지 않았고, 싱크대에 물기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불과 몇 시간 전에도 여기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던 엄마의 옷들도 모두 옷장에 걸려있다는 것이 제일 이상했다.

그때, 어디선가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거실 테이블에 무선 전화기 한대가 놓여 있었다. 울리는 전화기를 받으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왔구나.”


“엄마 여기 뭐야? 엄마 여기 살아?”


“은신처라고 했잖아. 가끔 들리는 거지. 뭐.”


“혹시 아빠랑?”


“어.”


“그럼 우리는?”


“그건 이유가 있어. 말이 좀 길어지니까. 우선 할 일부터 하자.”


“뭐? 뭘 해야 하는데?”


“우선 넌 화장실 옆에 복도 보이니?”


“응.”


“그 옆으로 가봐 그러면 작은 문이 하나 나올 거야.”


“어. 있어.”


“거기 들어가 봐”


그 방에 들어가니, 그곳은 카페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관리실이었다. 함지에 눈에 바로 들어온 것은 카페 곳곳을 비추고 있는 CCTV 화면이었다. 밤이어서 녹색빛으로 보이고 있는 화면들은 층별로 카페의 공간부터 주차장과 테라스까지 골고루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CCTV 화면들 밑에는 두 개의 모니터와 키보드가 설치되어 있어서, CCTV를 조작할 수도 있어 보였다.


“우선 거기 컴퓨터에 화면에 보면, admin 폴더가 있을 거야. 거기 들어가면 지금 카페의 보안 해제부터 조명이랑 음향 관리도 다 가능하거든 그걸로 최대한 영업하는 것처럼 다 켜놔.”


“왜?”


“어차피 와서 다 잠겨있으면 부수고라도 들어올 거야. 괜히 그러면 지함이 가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어. 차라리 이곳으로 들어오게 하는 게 나아. “


“어. 알았어. 엄마는 오는 길이야?”


“응. 그런데 엄마는 좀 걸릴 거야. 아마 네 할머니가 먼저 올 거니까. 그냥 할머니 오셔도 나오지 말고 거기 숨어만 있어.”


“어 알았어.”


“그리고 우선 거기서 보고 있다가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 “


“어.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함지는 조명을 켜고 잠금장치들을 해제했다. 엄마의 말처럼 음악도 틀어놨다. 음악은 컴퓨터에 음악 재생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서 플레이했는데, 집에서 듣던 음악과는 다른 느낌의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함지는 마치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엄마와, 이곳에 사는 엄마가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차장부터 화면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차들이 4대나 들어왔고, 그곳에서 내린 인원들만 20명이 넘었다. 그리고 마지막 차에서 내리는 남자는 움직임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봐서 두목이 분명했다. 두목은 내리자마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통화하다가 카페로 들어갔다. 그 두목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건물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고, 몇 명은 밖으로 나와 테라스와 건물 주변에 있는 다른 건물들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함지가 느끼기에는 자신을 찾는 건지, 지함을 찾는 건지 구분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대로 이곳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확실했다. 잠시 후 아무것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두목으로 보이는 사람 앞으로 모였다. 그리고 두목은 또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주차장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왔다. 그는 빈손으로 그 두목 앞으로 걸어갔고, 모두가 그를 아는지, 아무도 막지 않았다.




16. 허공의 지팡이와 철갓


스쿠터에 함께 타고 카페 하버로 이동하는 세 명은 생각보다 빠르게 가지 못하는 스쿠터의 성능에 답답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인 남자 세 명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다 보니, 스쿠터가 제 성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휴대폰 내비게이션에서 나타내는 거리가 13km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지금 속도로 봐서도 1~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던 것이다. 다만, 이렇게 무작정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은 대호는 길가에서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가 잠시 스쿠터를 세웠다.


“왜?”


“이대로 무조건 가면 안 될 거 같아.”


“또 무슨 말이야?”


“아까 얘를 통해서 본 미래에 우리는 없었다고 했지?”


“어.”


“그럼. 혹시 우리가 가면 안 된다는 말 아니야?”


“아니야. 근데 얘 고백 장면을 내가 봤잖아. 그럼 지금으로는 얘는 별일이 없는 거지.”


“아니지. 얘가 꼭 우리랑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하잖아.”


“뭐?”


강철은 순간 이들에 말에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겁이 나는 것도 있었고, 반대로 궁금하고 신기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만으로 그곳에 가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안 서고 있었다. 어차피 태혁의 말을 듣지 않고, 얘들을 풀어주고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이상 조직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적어진 상황에서, 자신은 왜 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거기까지 가야 하는지 본인도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애는 됐고, 그것보다 우리도 뭔가 준비를 해야 할 거 같다는 거지.”


“그렇지. 뭘 좀 대비하고 가면 덜 위험하긴 할 테니까.”


“야. 혹시 내 미래도 안 보여?”


“어.”


“야.. 그럼 우리 다 죽는 거 아냐?”


대호는 지함이 너무 쉽게 대답을 하니, 뭔가 힘이 탁 풀렸다. 이 모든 긴장의 끝은 결국 잡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아니야 그런데 아닐 수도 있어. 우리가 거기 가서 일어날 일들은 나로 인해 일어날 미래일 가능성이 커. 나들한테 미래가 다 안 보이는 이유는 그냥 내가 너무 많이 엮여있어서 일지도 모른다고. 뭐 여하튼,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대호는 정확히 자신들이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뭘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진 않았지만, 이대로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그냥 가는 것은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너 아까 그건 뭐야?”


지함은 문득 아까 태혁이 던졌던 지팡이와 철갓의 존재가 궁금했다. 태혁은 그냥 내팽개쳤지만, 자신이 느낄 때는 심상치 않은 물건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생각이 난 대호는 가방에서 이지함들이 준 문서를 꺼냈다.


“이게 무슨 허공의 지팡이랑 철갓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공간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 거 같아.”


옆에서 멍하게 구경만 하고 있던 강철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철갓을 써봤다. 하지만 그 철갓은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서 그대로 고개가 고꾸러 졌다. 그 모습을 본 대호는 조금 의아해했다.


“야. 그게 그렇게 무겁다고?”


자신은 너무 가볍게 들고 다니던 물건이었는데, 강철이 너무 무거워하니까 대호는 오히려 궁금했다. 그래서 바로 강철의 머리에 있는 철갓을 들어서 자신의 머리에 썼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가벼워서 일반 모자보다도 가벼운 느낌이었다.


“뭐야? 장난하냐? 이게 뭐가 무거워?”


“네가 이상한 거야!”


“뭔 소리야? 아까 그 아저씨도 쉽게 던졌잖아.”


그런데 대호는 순간 자신이 다시 그 철갓을 들었을 때 푹 파여 있었던 땅을 봤던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이 철갓의 무게가 원래는 상당한 것이었고,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만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뭔가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게 그럼 다른 사람들한테는 무겁나?”


대호는 그 얘기를 하면서 가볍게 지팡이를 들었다. 그런데 대호가 철갓을 쓰고 지팡이를 들자 갑자기 지팡이와 철갓에서 묘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묘한 빛들이 조금 떨어져 있던 지함과 대호를 감싸기 시작했다. 강철은 그들과 더 떨어져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빛으로 만들어진 돔은 강철만 배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강철에게는 이 돔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철갓과 지팡이에서 묘한 빛이 나오는 순간부터 놀란 표정을 짓던 대호와 지함과는 다르게 강철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서있었기 때문이다. 대호는 순간 알았다. 자신의 역할과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이거 뭔가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거 같은데?”


“그런가? 그러니까 네가 이 철갓이랑 지팡이를 들고 있으면 우리를 보호하는 보호막 같은 게 생긴다는 거잖아?”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순간, 대호는 자신의 역할이 이 쌍둥이를 보호하는 것이라면, 함지도 함께 보호가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혹시 지금 함지 씨도 보호가 될까?”


“되면 진짜 대박일 텐데. 원격으로.”


그 순간, 카페 하버에 있는 은신처에 있던 함지의 몸에도 이상한 빛들이 나타나더니 보호막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신기한 건 그 안에서 지함과 대호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럼 혹시 지금 함지 씨도 보호가 될까?”


“되면 진짜 대박일 텐데. 원격으로.”


“뭔지 몰라도, 돼요. 원격으로.”


허공에서 들려오는 함지의 목소리에 지함과 대호는 너무 깜짝 놀랐다. 지금 갑자기 생긴 이 공간에서 멀리 있는 함지와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뭐 휴대폰을 생각한다면 별게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런 통신기기가 없는 이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모든 것들이 밖에 있는 강철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여전히 멍하게 혼자 궁시렁대고 있는 강철의 모습을 보니 뭔가 우스운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대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함지씨. 제 말 들려요?”


“예. 들려요.”


둘의 대화는 이미 그저 사실 관계만 묻는 거 만으로도 뭔가의 짜릿한 감정들이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감정은 지함은 모르고 있었다.


“대박! 이게 뭐지?”


“함지씨, 우선 괜찮아요? 지금 어디예요?”


“아. 전 괜찮아요. 여기 카페 지하에 있는 은신처 같은 곳이에요.”


“은신처?”


“아. 이따가 와보면 알아. 거기는 어디예요?”


“저희도 가는 길이었는데, 잠깐 중간에 멈췄거든요. 한 10km는 남은 거 같아요.”


“아. 그렇구나. 근데 이거 진짜 신기하네요.”


“아. 제가 이거 토정비결 초판을 구한 곳에서 같이 받아온 건데요. 무슨 지팡이랑 철로 된 갓을 주셨는데, 이걸 쓰니까 우리 셋한테만 이렇게 보호막 같은 것이 생기고 대화가 되는 것 같아요.”


“진짜. 신기하다. “


“야! 신기하다는 말을 고만하고, 거기 상태는 어때?”


지함은 상황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마자, 그쪽의 상황이 어떤 지부터 물어봤다. CCTV를 통해서 모든 상황을 보고 있는 함지는 그들에게 모두 말해주긴 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도 줄 수 없었다. 다만, 그때 함지가 외할머니에게 전화한 것을 말했다.


“근데 외할머니 곧 오실 거야. 그래도 그럼 뭐가 좀 정리가 되지 않을까?”


“할머니가 온다고?”


“어!”


“어떻게 알고?”


“내가 전화를 했지. 무서워서.”


“할머니가 오신다고…..?”


지함은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 이유는 지함에게도 외할머니는 조금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함지가 엄마와 같이 살고 있고, 외할머니가 함지를 더 자랑거리로 여겨서 더 많이 예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외할머니는 지함도 똑같이 대했다. 아니 어쩌면 지함이 스스로 느끼기에는 자신에게 더 과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래도 함지는 자기가 알아서 잘하는 편이었다면, 지함은 언제나 문제아에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를 해결하려고 외할머니께서 학교에 오셨고, 오실 때마다 너무 많은 주목을 받아서, 한때는 그랜마마보이가 별명이던 시기도 있었다. 그는 외할머니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너무 과하게 집착하는 모습에 함지만큼이나 항상 힘들어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항상 유난스럽고, 까다로운 분이셔서 지함의 친구들에게도 막말을 많이 하셨던 분인데, 대호에게는 한 번도 나쁜 말을 하신 적이 없다. 유독 대호에게만 말없이 용돈을 주시곤 했는데, 그 생각을 하니 지함은 갑자기 할머니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나도 전화할까?”


“휴대폰 있어?”


“어.”


“그럼 해봐. 안 그래도 너도 물어봤어.”


그리고 함지는 엄마에게도 전화했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보호막이 풀렸다. 지함은 바로 대호를 바라봤지만, 대호는 여전히 철갓과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둘은 갑자기 풀린 보호막에 어이없어해 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제일 황당해하고 있었던 사람은 강철이었다.


“야! 니들 뭐야!! 왜 갑자기 나를 본체만체하고 니들끼리만 소리 없이 이야기를 하고 그러는 거야?”


“넌 우리가 하는 말이 안 들렸어?”


“어!”


“그럼, 우리가 보이기는 했고?”


“어.”


“혹시 만져봤어?”


“뭐? 내가? 이런 미친 새끼가!”


강철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서 화를 냈다. 지함은 자신의 질문이 충분히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웃었다. 강철이 있어서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지함과 대호는 눈빛으로 이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함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지금 그곳의 상황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강철을 어떻게든 떼어놓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선 누군가를 괴롭히던 경험이 있는 애를 믿을 수도 없었고, 어차피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다녀야 한다면 한 명이라도 적은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강철이 갑자기 진지하게 지함에게 다가왔다.


“뭐야? 갑자기?”


“너 미래를 보는 거 맞지?”


순간, 지함과 대호는 서로 마주 봤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굳이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 다는 아니고, 너의 긍정적인 부분만 볼 수 있어 쉽게 말하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그럼 아까 나는?”


지함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강철에게는 그 상황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재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의 미래까지 보이는지, 그 능력 치를 알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강철이 좋아하는 여자와 사귀기 시작한 후에도 더 이상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 대호가 지함에게 말했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어.”


“알아. 그런데 잠깐만.”


지함의 시선은 다시 강철에게 향했다. 지함은 자신을 보는 강철의 불안한 눈빛을 차마 뿌리 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 지금 뭔가 불안한 거냐?”


“뭐?”


“너 지금 불안하잖아? 그래서 내 눈치 보면서 묻고 있는 거고.”


“….”


지함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강철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런 상황을 보고 있는 대호는 조바심이 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함지의 안전이 계속 걱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함은 앞에 있는 강철에게 자꾸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은 것 같았다.


“너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야? 어? 여기는 왜 온 거냐고! 너도 알지?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이대로 가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겉으로는 센 척 갖은 폼은 다잡아도 너도 지금 겁먹고 있는 거..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어서 그런 거잖아.”


순간, 지함 와 대호에게 다시 보호막이 생겼다. 둘은 잠깐 당황했지만,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대호는 순간적으로 바로 함지를 불렀다.


“함지 씨! 들려요?”


“예!”


“이게 보니까.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 같고, 연속으로는 안 되나 봐요.”


“아. 그래요?”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아까 풀린 뒤로도 계속 이걸 하고 있었거든요. 아마도 일정 시간이 지나야 다시 활성화되는 듯해요.”


“아! 그리고 이거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보호막은 안 보이고 우리는 보이나 봐. 그리고 우리 목소리도 안 들려.”


“밖에 누가 있어?”


“아… 애가 누구냐 면……”


“아까.. 갑자기 우리한테 전화해서 함지 씨…… 함지 씨 남자 친구라고 사기를 친 놈이 있었어요. 근데 그놈이 오라고 한 데로 가니까. 또 그놈을 잡으려고 온 놈이 있더라고요.”


“예? 그 사람이랑 같이 있다고요? 걔가 정우를 조직에 팔아먹으려던 놈이에요!”


대호는 순간 감정이 복잡했다. 함지가 그놈을 정우라고 부르는 것이 우선 싫었고, 이름까지 알게 된 정우라는 놈은 더 싫었다. 그런데 그놈을 팔아먹으려고 했다니까 갑자기 밖에 있는 강철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호는 살짝 웃으며, 순간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미친놈이네.”


“뭐라고!!”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강철이 대호의 말에 반응을 한 것이다.


“야! 뭐야? 너 우리말 들려?”


“뭔 소리야! 당연히 들리지!”


지함은 당황해서 함지에게 그 말을 전했다.


“야! 이거밖에 있는 사람하고 대화도 할 수 있는데?”


“뭐? 진짜야? 근데 난 그 사람 말은 안 들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대호는 뭔가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 새끼 진짜 바보 같아.”


“뭐? 뭐야 갑자기?”


대호가 지함에게 강철에 대한 말을 했지만, 그 말은 강철이 못 듣는 듯했다. 대호는 대충 이 보호막의 시스템을 파악했다.


“다들 들어 봐요. 보니까 이 보호막은 우리끼리는 대화가 가능하고요. 우리끼리 하는 대화는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한테 안 들리는 듯해요. 대신 우리가 밖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다면 직접적인 대화는 가능한 듯해요.”


“뭔가 우리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면서 다른 사람과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거잖아? 스마트한데.”


“음.. 이걸 잘 사용해야 하겠다.”


“그러니까요.”


“그보다 언제 올 거야?”


“아. 이제 가야지.”


“나 부탁이 있어.”


“뭔데요? 뭐든지 들어 드릴게요.”


함지는 자신의 말에 대호가 대답을 하자 순간 좀 망설였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말을 꺼냈다.


“아까 말한 정우가 지금 저 사람들 차에 갇혀 있는 거 같아. 혹시 상황이 되면 좀 구해 줄 수 있을까 해서..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애지. 원래 나쁜 애는 아니거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대호의 감정은 흔들렸지만, 이내 지금은 질투나 할 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함지와 어떤 관계건 지금 이 사건에 휘말려서 위험에 처한 것은 사실이고, 그렇다면 자신들이 구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함은 함지의 부탁 덕분에 강철을 떨어트려놓을 방법이 떠올랐다.


“야. 너 미래 하나만 봐주라.”


지함은 함지에게 강철의 생년월일을 말했고, 함지는 자신에게 느껴지는 강철의 미래를 모두 얘기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날 때쯤, 보호막은 또 풀렸다.


“뭐야! 니들.”


“야! 너. 이대로 가면 죽어!”


“뭐? 너 좋은 미래만 보인다며!”


“네가 믿든 안 믿든 상관없는데, 나한테 쌍둥이 동생이 있어, 그리고 걔는 나랑 달라서 반대로 안 좋은 것만 보이고, 지금 우리가 걔랑 텔레파시 비슷한 걸 하고 있거든. 그래서 네 미래를 물어봤는데, 죽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안 좋은 곳만 끌려 다니다가 네가 좋아하는 그 여자애까지 못된 짓을 당하게 하고 같이 죽는다고! 알아?”


강철은 지함의 말을 절대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신이 불안해하던 미래를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고 있자니,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은 학창 시절 내내 그 어떤 노력도 한 적이 없었고, 만만한 애들만 괴롭히며 편하게 살았다. 미성년자라는 보호막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었고, 남들보다 조금 더 풍족한 부모님이 뭐든지 해결해 주셨다. 하지만 자신도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심지어 부모님도 더 이상 그 어떤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신 상태였다. 그 말에 욱해서 다음 달에는 자기 힘으로 독립도 하겠다고 큰소리까지 쳤는데, 솔직히 자신에게는 그 어떤 미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와 자신이 편돌이라고 놀리며 괴롭히던 친구들처럼, 편의점에서 알바를 할 수도 없었고, 멀쩡한 곳에 취직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가망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예전처럼 폼이라도 잡으며 살기 위해 안 좋은 형님들을 쫓아다닌 것이다. 하지만 본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곳에서 성공할 만큼 강한 사람도, 깡이 좋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느끼고 있던 모든 불안을 지함이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


“그럼.. 이제 나보고 어쩌라고……”


“기회가 있어. 네가 팔아먹으려고 했던 정우라는 놈이, 네 계획대로 나쁜 사람들한테 잡혀있데, 네가 구해줘. 네가 우리랑 같이 가서 우리가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너는 걔만 구해서 도망가라고. 그럼 분명히 끊길 거야. 우린 알아!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아! 바꿀 수 있어! 네가 마음만 다시 먹으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고!”


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있었다. 대호는 그런 강철의 상태가 또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함도 대호에게 강철을 부탁하고 한쪽으로 전화를 하러 갔다.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모두 맘에 들지 않는 대호였지만, 그래도 함지가 아무 일 없다는 사실에는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할머니.”


“어디니?”


역시 외할머니였다. 함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외할머니는 지함의 전화에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전혀 당황을 하지 않고 위치부터 물었다. 지함도 이미 함지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거의 다 왔어요.”


“그래? 좀만 기다려라 이 할미도 금방 갈게.”


“근데, 할머니.”


“지함아. 무슨 말하려는 줄 안다. 할미가 다 해결해줄게. 니들은 아무 걱정하지 마. 알았지?”


“예……근데 지금 대호도 같이 있어요.”


“안다. 그것도. 아마 걔가 너희들한테는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까 꼭 붙어 있어.”


“아..……그럼 저희는 그냥 들어가요?”


“아니야. 근처에 가서 숨어 있어. 우선 함지랑은 같이 있지 말고, 너 이 전화기 계속되는 거지?”


“예..”


“그럼 할미가 20분이면 도착하니까. 숨어있다가 할미가 전화하면 그때 만나자.”


“예. 알았어요.”


“혹시 엄마, 아빠한테는 전화했니?”


“아니요.”


“잘했다. 이런 일은 할미가 전문이야. 괜히 걱정들만 할라. 우리 지함이 걱정 말고 잘 숨어 있어.”


“예.”


평소에도 지하에게는 자상한 외할머니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다정한 할머니가 왠지 어색했다. 하지만, 지함도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할머니뿐이라는 사실을. 지함은 통화가 끝나자마자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대호도 강철과 대화가 잘됐는지 이미 스쿠터에 타 있었다.


“야. 너는 가자마자. 건물밖에 있는 4865차에 정우가 있다니까 바로 구해서 도망쳐. 차 문도 열려있고, 키도 안에 있다니까.”


“그런 거까지 보여?”


“어. 그렇더라고.”


“대단하다.”


“그리고 구하면 꼭 사과해. 진심으로. 그래야 너한테 내 미래가 보일 거야!”


“알았어.”


지함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불확실성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희망이기도 했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항상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김이 새는 느낌이기는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능력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이 불확실성이 지함에게는 큰 희망이 된 것이다. 자신의 노력과 선택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이 생각을 조금 더 일찍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만 하기로 했다.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그들이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려면 마냥 낙천적인 생각만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