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비결 of 토정-18

네 번째 장편소설

by 박희종

주차장


정우가 정신이 든 것은, 두목에게 맞아 정신을 잃고 승합차 짐칸에 던져지고 나서, 30분쯤이 지난 후였다. 그는 다행히 짐칸으로 던져지면서 얼굴을 덮어놨던 검은 봉투가 찢어졌고, 시야에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만, 맞은 충격 때문인지, 너무 많은 사건이 벌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지금의 위치가 어딘지 알아내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겨우 모든 것이 진정이 되었을 무렵, 갑자기 차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야. 진짜 이래도 돼?”


“야. 어때? 아저씨 말에 따르면, 지금은 차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했잖아.”


“그래도 진짜 존나 쫄려.”


“야 쫄지마. 솔직히 우리는 손해 볼 게 없어. 우선 형님이 말하는 대로 밖에 있는 차 중에 한대만 타이어를 뚫어 놓고, 거기다가 이 책을 숨겨 놓으면, 나중에 그 새끼들이 다 도망가고 났을 때, 여기 와서 책만 찾아가겠다는 거잖아. 어차피 저기에 지가 들어는 가야겠는데, 바지에 넣어 갈 수는 없고, 숨기긴 해야 하는데, 진짜 등잔 밑에 숨기겠다는 거니까. 진짜 머리는 좋아. 솔까 우리는 이 작업만 해놓고 숨어 있다가, 경찰에 신고나 해주고, 형님 말대로 됐을 때, 뽀찌나 좀 챙기면 되는 거지 뭐. 그리고 혹시라도 일이 다 틀어지면 그때 저 책이라도 챙기면 되는 거고.”


“야. 근데 저 책이 그렇게 중요한 거면, 지금 우리가 들고 튀어도 되잖아.”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우선 우리는 저 책이 왜 그렇게 까지 중요한 건지 가치를 몰라. 괜히 돈도 안 되는 거에 목숨까지 걸면 너무 바보 같잖아. 그리고, 혹시라도 저 새끼들이 말이 잘 됐는데, 우리가 들고 튄 덜 알면 우린 그냥 뒤지는 거야.”


“그러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아까 아저씨 말대로 시킨 거나 하고, 여차하면 우리도 들고 튀자고. 오케이?”


“오케이!”


둘은 차 뒤에 대화를 하자마자, 차체가 좀 내려앉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잠시 후 그 두 명이 들어와서 바로 보조석의 글로브 박스에 책을 한 권 넣어두고 나갔다. 정우는 저 책이 그 토정비결 초판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상황이 참 아이러니했다. 자신을 그렇게 힘들게 하고, 지금 이 꼴을 당하게 한 그 토정비결 초판이, 지금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정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겨우 볼 수 있게만 된 것이지, 실제로는 손발이 묶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우는 이 상황이 더 답답했다. 솔직히 이제야 뭔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납치가 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하필이면 그때, 함지에게는 너무 중요한 것 같은 물건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다.


“아. 씨. 왜 도대체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냐고!”


“너도 왕따 시켰잖아.”


정우가 너무 답답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눈앞에 강철이 나타나 대답을 한 것이다. 정우는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고, 강철도 정우의 반응에 깜짝 놀라서 급하게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으어아이어”


정우는 너무 깜짝 놀라 한참이나 바둥거렸지만, 잠시 후에 상황을 파악했고, 조금 진정을 했는지, 강철에게 무엇인가를 웅얼거렸다. 그런 정우를 보고, 강철은 목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하고 막고 있던 정우의 입을 풀어줬다.


“뭐야? 네가 여기 왜 있어?”


“누가 알려주더라. 너 여기서 죽어가고 있다고.”


“누가?”


“몰라. 임마. 난 지금 여기서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이상한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머릿속이 다 뒤죽박죽이라고!”


“그럼 왜 왔는데? 니가 시킨다고 올 놈은 아니잖아!”


강철은 정우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우선 줄부터 풀기 시작했다. 정우도 느낌상 강철이 자신을 해치려고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순순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묶인 줄을 다 풀자마자 강철은 바로 도망가자고 했다.


“야. 가자!”


“야! 잠깐만.”


정우는 바로 글로브 박스를 열어서 토정비결 초판을 챙겼다. 그렇게 초판을 들고 둘이 차에서 나오자 멀리서 숨어 있던 강철 패거리들이 조심이 뛰어나왔다.


“강철아.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니들이 저거 숨긴 거야?”


“어. 형님이 저 차 타이어 펑크 내고, 저 차에다가 숨겨 놓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해서. 이따가 자기가 신호 주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어.”


“야. 우선 다 나가리 됐으니까. 가자.”


“뭔 소리야. 형님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다고! 알바비도 준다고 했는데!”


“이 빙신들아. 저 사람 여기서 죽어. 못 나온다고. 그리고 어차피 오늘 알바비는 휴대폰으로 챙겼잖아. 욕심부리지 말고 가자. 니들 바이크 있지?”


“어. 저기 있어.”


강철에 말에 무리들은 그대로 도망치기로 했다. 어차피 그들은 기다리면서도 일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별거 없이 휴대폰만 하나 챙기고 기분 좋게 빠져나올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우는 강철의 말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야. 가자니까.”


“야. 너 대답 안 했어. 너 왜 왔어?”


순간 정우의 분위기가 달라지자, 강철의 표정도 달라졌다. 강철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여기서 바꾸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그는 해야만 한다는 것을.


“걔들이 내 미래를 봤대, 근데 내 인생에 더 이상 좋은 일은 없다는 거야. 앞으로 내 삶은 온통 나쁜 일뿐이고, 결국은 나도 곧 죽게 될 거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미애도 나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할 거라고 그러더라.


“그걸 믿었냐?”


“안 믿었지. 아니 안 믿고 싶지. 근데 솔직히 감이란 게 있잖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게 있는데, 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내가 제일 잘 느끼고 있었잖아. 그런데 그 새끼가 그러더라.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미래는 다 정해진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너부터 구해주고, 제대로 사과한 다음에 다시 시작해보라고. 미래라는 거, 그 순간 내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거라고. 그래서 왔다. 뭐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잘못한 건 아니까.”


“그래서.”


“그래서 뭐?”


“구해는 줬고, 사과는 안 하냐고?”


강철은 순간 주춤했지만, 금세 표정이 바뀌면서 무릎을 꿇었다. 옆에 서 있던 강철의 패거리는 강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서있던 정우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정작 무릎을 꿇은 강철의 표정은 담담했고, 단호했다.


“미안하다. 내가. 정말 잘못했다. 이런 게 너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 방법밖에 생각이 안 나서. 이렇게 라도 사과할게. 진짜 미안했다.”


정우는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강철을 보자 마음이 이상해졌다. 정우는 강철에게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그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자신도 함지를 그렇게 괴롭혔던 기억이 남아서 일 것이다. 그에게 강철의 괴롭힘은 그저 궂은 날씨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자신이 함지에게 하는 행동에 대한 면죄부가 되기도 했다. 자신은 저런 새끼들이랑은 다르게 이유가 있다고. 복수를 하는 것이라고. 아무 이유 없이 쓰레기처럼 구는 놈들도 있는데, 자기처럼 이유가 있으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마음이 약해지려 할 때마다 수없이 되 뇌이던 말이다. 그런데 그런 강철이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사과를 한다. 진심으로. 이제야 정우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만 하면 이제야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강철이 들었다는 그 말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정우는 강철을 일으키며 말했다.


“난 다 받았다. 사과도 받았고, 도움도 받았고. 그러니까 진짜 다시 시작하고 싶으면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테도 다 사과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하나 다 찾아가서.”


“알았다.”


“빨리 가. 얘들 데리고. 얘들도 꼭 정신 차리게 해라. 네가.”


“너는?”


“나는 걔가 아직 아무것도 못 받았어. 내 사과도, 내 도움도.”


“누군데?”


“응. 있어. 너 모르는 애.”


강철은 다른 무리의 오토바이 키를 하나 뺏어서 정우에게 줬다. 그리고 나머지 오토바이에 나눠서 타고 도망쳤다. 일부러 요란한 소리를 내고 도망을 가는 바람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관심도 쏠렸다. 순간, 태혁은 불안했다. 분명히 자신이 데리고 온 애들이 도망을 간 것 같은데, 일은 잘 처리하고 간 건지. 아니면 그냥 무서워서 간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잡아 올까요?”


“아니 됐어. 그런 애송이들 잡는 거야 뭐. 지금 아니어도 언제든지 가능하잖아.”


두목은 말을 하면서도 계속 태혁의 표정을 살폈다. 태혁은 뭔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혁아.”


“예. 형님.”


“너 그거 아냐?”


“예?”


“이제 슬슬 시간이 오고 있어. 네가 말을 하지 않으면 곤란해질 시간이.”


“그게 무슨..”


“너.. 내가 언제 혼자 일하는 거 봤니?”


“….”


“넌 내가 이 일을 너 때문에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네?”


그때 카페로 검은 차 몇 대가 빠르게 들어와서 섰다. 차가 들어서자마자 뒷문에서 튀어나오듯이 나와서 카페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두목에게로 빠르게 걸어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그의 뺨부터 때렸다.


“애들은 건들지 말라고 했지!”


그 카페가 다 울릴 정도로 세게 두목의 뺨을 때린 사람은 바로 외할머니였다. 두목은 외할머니에게 맞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은 외할머니는 다시 또 쉬지 않고, 두목의 뺨을 때렸다. 한대, 두대, 세대, 네대, 열대가 넘게 때리고 나서야 그녀의 폭행은 멈췄다. 그 순간 가장 무서웠던 것은 그 장면을 보고 있는 그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는 것이고, 외할머니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태혁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봐. 내가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


외할머니에게 맞아서 고개가 돌아간 두목은 태혁과 눈이 마주치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바로 자세를 고쳐 잡고 외할머니에게 말했다.


“회장님, 고정하시죠. 아이들은 다 무사합니다.”


“무사해? 무사해?”


외할머니는 그 말에 화가 더 났는지, 두목의 뺨을 더 때렸다.


“내가 그냥 지켜만 보라고 했잖아. 그냥 때가 될 때까지. 보기만 하라고! 그게 어려워? 그게 그렇게 복잡한 일이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어제까지 아무 일도 없었고요. 다만, 저희가 예상치 못했던 것이 설마 손자 분이 그렇게까지 영특할 줄은 몰랐던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진정하시지요.”


순간, 외할머니는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태혁에게 눈이 갔다. 태혁은 그녀의 눈빛만으로 이미 자기의 상대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얘지?”


“네.”


외할머니는 태혁이 피할 틈도 없이 그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그렇게 10대 정도를 때리고 나더니, 숨을 고르고, 옷매무새를 고치며 태혁에게 말했다.


“어디 평생, 종노릇이나 할 새끼가 욕심을 부려서 대업을 망쳐 놔! 넌 지금 네가 무슨 일을 저지른 줄도 모르지? 넌 행여나 이번 일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평생 악귀들한테 쫓겨 다니면서 살 줄 알아! 평생을 단 한숨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거야! 너 진짜 그렇게 되면 감옥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냐. 그냥 벌벌 기면서 나한테 죽여달라고 할 걸?”


태혁은 순간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은 더 이상 자신이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협상을 할 상황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태혁의 표정이 그렇게 바뀌자, 두목은 비웃음을 머금은 채로 다가와 얘기했다.


“아직도 100억이 필요해? 회장님께 말씀드려 볼까? 100억만 달라고?”


태혁은 무너졌다. 여기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토정비결 초판을 저 사람에게 받치는 것뿐이었다. 속으로 빌었다. 제발 그곳에 토정비결이 있기를. 그 아이들이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고 갔기를. 너무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밖에 있는 차 중에 타이어가 터진 차가 있을 겁니다. 그 차 글로브 박스에 있습니다. 토정비결 초본. 잘못했습니다. 제가 한순간에 눈이 돌아서 정말 미쳤던 것 같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진짜 시키는 대로 다하겠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


태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구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가 간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태혁에게는 그 시간이 몇 년은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뛰어나갔던 사내가 들어와서 말했다.


“없습니다.”


태혁은 순간, 자신의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조직에 들어와서 보냈던 모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는 직감했다. 자신은 이대로 죽는다고.


“살려주십시오. 살려 주세요. 제가 누가 가져간 지 압니다. 기회를 주시면 지금 제가 쫓아가서 바로 찾아오겠습니다.”


외할머니는 오히려 갑자기 차분해진 얼굴로 태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을 했다.


“그깟 애들 잡는 거. 너보다 못하는 애가 여기 있겠니? 내가 말했잖아. 앞으로는 죽여달라고 빌게 될 거라고. ”


외할머니가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일어나는 순간, 큰 굉음과 함께 카페에 있던 모든 입구와 창에 철장이 떨어져 내려왔다. 순간 카페의 모든 공간은 굵은 철장으로 막혀버렸다. 한 번에 떨어진 철장은 안에 있는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 순간에 감옥처럼 변해버린 공간에 갇혀 버린 사람들을 모두 당황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전혀 당황을 하지 않은 외할머니는 지금 이 상황이 누구의 수작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카페의 창문 앞쪽으로 아빠와 엄마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엄마의 손에는 토정비결 초판이 들려있었다. 외할머니는 딸을 보자마자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너!”


“이거였어요?”


“뭐!”


“이거였냐고요?”


“다 왔는데, 이제 다 끝났는데. 결국 네가!”


“뭐가 끝났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할 건데!”


“내가 뭘! 내가 뭘!”


“지금도 충분하잖아. 지금도 엄마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이잖아. 근데 왜! 이제 딸도 모자라서 손주들까지 욕심을 부리냐고!”


“넌 몰라. 이 년아! 넌 처음부터 다 보였지? 처음부터 동자신이 쫓아다니면서 놀아 달라 졸랐던 년이 알 리가 없잖아! 그렇게 쉽게 된 년들은 절대 모른다고. 네가 알아? 내가 어떻게 무당이 됐는지? 내가 어떻게 해서 그 동자신을 얻었는지 네가 아냐고! ”


“몰라. 그래 난 몰라.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안 했잖아! 난 그냥 엄마가 시키는 대로 죽어 살았잖아. 엄마가 원하는 대로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살았잖아.”


“내가 모를 줄 알고? 넌 다 누리고 살았어. 나한테는 죽어있는 척했어도, 저 놈이랑 여기서 그동안 몰래 산 거. 동자신이랑 수시로 노닥거린 거! 내가 모를까 봐!”


“그래서 뭐? 그래도 다. 엄마 말대로 산 거잖아. 애들이랑 같이도 못 살고, 예쁘다고 제대로 한 번 안아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피 같은 내 새끼들 품지도 못하고 살았는데, 도대체 왜 그런 건데! 애들한테 까지! 왜 그러는 건데!”


“내 능력이 필요했어! 누가 주는 거 말고, 누구한테 빌려 쓰는 거 말고, 눈치 봐야 하고, 언제 사라질까 불안해하는 거 말고! 내 거! 내 능력! 온전히 그냥 내 능력으로 미래를 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그랬던 거야? 엄마. 처음부터 그래서 그랬던 거야?”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눈에도 핏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 서로가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아프고 잔인한 이야기 인지. 그래서 다른 누구도 그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