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는 둘만의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우연처럼 만난 사이였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 갈수록 서로는 서로를 운명이라 믿게 되었다. 스스로 한 번도 원하지 않았던 성직자의 삶에서 벗어난 남자도, 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질투하는 엄마에게서 도망쳐 온 여자도, 지금 둘이 함께하고 있는 삶이 그저 꿈만 같았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들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그들의 불안도 숨길 수 없었다.
“잘할 수 있데요. 거기로 뛰어들지 말고, 한 2년 숨어있다가 오며 다 잘 될 거래요.”
동자가 알려준 대로 여자가 남자에게 했던 말. 그 2년이라는 시간이 자신들을 마치 시한부 인생인 것처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같은 불안을 느끼고 있던 그들은 한 번도 입 밖으로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불안감은 결국, 서로에게 숨어있는 멍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모든 불안함을 한 번에 날려준 것이 바로 아이였다. 여자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어쩌면 2년 후면 모든 인연이 끊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불안이, 모두 사라졌다. 실은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 내내 본인들도 모르게 서로의 미래에 대한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들에게도 함께 그려나갈 미래가 생긴 것이다.
“뭐? 쌍둥이라고? 그것도 아들, 딸 하나씩?”
오랜만에 놀러 온 동자신이 여자의 뱃속에 아이가 둘이라는 사실과 서로 성별도 다르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그들의 행복은 정점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머지 시간들은 온전히 서로와 아이들까지 포함한, 가족의 미래와 행복만을 위해서 준비해 가고 있었다.
“우리 애들 이름을 미래랑 행복이라고 지을까?”
“너무 놀림당하지 않을까?”
“어때! 예쁜데, 분명히 자랄 때는 힘들어해도 나중에 다 크고 나면 고마워할 거야!”
“뭐. 자기가 원하면 나는 상관없어. 근데, 미래는 그래도 나은데, 행복이는 나중에 좀 곤란할 거 같은데. 나중에 할아버지 돼서 동사무소에 갔는데, 누가 이행복 할아버지! 이렇게 부르면 좀 웃기잖아.”
“왜? 난 그게 더 좋은데? 이행복 할아버지? 진짜 나중에 할아버지가 돼도 진짜 행복할 것 같은 이름이지 않아?”
그들이 그렇게 아이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는 중에도 그들이 잊고 있었던, 2년이라는 시간은 돌아오고 이었다. 무슨 운명인 건지. 그 쌍둥이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은 남자와 여자가 다리에서 처음 만난 날로부터 정확히 2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남자와 여자는 산부인과에서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이들을 보며 마음껏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여자의 엄마와 남자의 아버지가 산부인과로 찾아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살아온 그들이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엄마와 아버지의 방문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아마 그들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부모들이 자신들을 잠시 놔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 그들이 부모들의 방문에 놀라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았던 이유는 그들의 품에 안긴 아이들 때문이었다. 부모들이 자신들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자신들의 일탈을 그저 지켜보았듯이, 결국은 그들도 생명의 탄생에는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부모들이 전한 이야기는 아주 충격적이었다.
여자의 엄마와 남자의 아버지는 산부인과에 가기 전에 바로 앞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먼저 만났다. 연락을 먼저 해온 것도 여자의 엄마였고, 먼저 만나자고 한쪽도 여자의 엄마였다. 그렇게 호텔 커피숍에서 마주한 그들은 누가 봐도 너무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빨간색 원색의 투피스를 차려있고 나온 여자의 엄마는 챙이 넓은 빨간색 모자와 빨간색 매니큐어까지 하고 있었다. 빨간색 하이힐에 가방까지 빨간색을 맞춘 그녀는 실내에서도 빨간색이 들어간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있었다. 반면에 남자의 아버지는 품이 넓은 회색 정장에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 마마저 정장과 비슷한 회색 무늬였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는 순간, 앞으로의 관계를 이미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예부터 우리나라가 출산을 하면 금줄을 걸었잖아요. 그 고추가 달린 금줄이 액운을 막고 복을 준다는 의미가 있어서, 오늘 저도 빨간색으로 입고 왔어요. 뭐 제가 인간 금줄이 되어 보려고요.”
“아. 예.”
마주한 지 5분 만에 서로 어렵게 이어진 대화였지만, 금세 다시 침묵과 어색함이 흘렀다.
“근데 어떻게 아신 건지.”
“저희 동자신께서. 아. 실례는 아니죠?”
“아.. 예……”
둘의 직업적 특성상 대화는 쉽게 이어질 수가 없었다. 다만, 조금 더 목적이 분명한 쪽에서 아무래도 대화를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오늘 뵙자고 한 것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경황은 없으시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는 좀 해야 할 듯해서요.”
“예. 그렇죠..”
“그럼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혹시 저희 딸을 며느리로 받아들이실 수 있나요?”
남자의 아버지는 순간, 머릿속에서 엄청난 갈등이 시작되었다. 자신의 위치와 사람들이 바라보는 사회적 명망이라면, 그는 이 상황을 그 어떤 선입견과 차별도 없이 온전히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은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기도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대대로 명성을 쌓아 온 목회자 집안이었고, 자신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교단을 이끌고 있는 리더였다. 과연 그런 자신의 아들이 불미스러운 사고로 혼전임신을 하고, 그로 인해 무당집 딸과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자신의 체면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전체에 커다란 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엄마는 자신의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남자의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이 질문을 통해서 이 자리의 주도권을 가지고 왔다고 생각했다.
“뭐. 우리야. 문제가 없죠.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제 사업에는 오히려 큰 덕이 되어 주실 수도 있죠. 제가 모시는 신이 하나님까지 줄이 닿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으흠”
이 말은 남자의 아버지의 심기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 혼사가 이루어졌을 때, 그 여자 엄마의 비아냥이 교인들의 입에서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은 저도 이 상황이 마냥 좋지 만은 않죠. 그래도 명색이 인천 최고의 무당인데, 지 딸년이 목사랑 눈 맞는지도 몰랐다는 것도 그리 자랑할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본론이 뭡니까?”
“목사님께서 맘이 급하시네, 난 또 워낙 설교를 길게들 하시니까, 성격도 좀 느긋하신 줄 알았죠. 그럼 급하시니 결론만 말하면, 이 혼사 숨기시죠.”
“뭐라고요?”
“말 그대로 숨기시자고요.”
남자의 아버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여자 엄마의 말에 순간, 뇌가 멈추는 듯했다. 자신의 삶에서 오늘 같은 만남도 예상한 적이 없었지만, 태어나서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상황을 듣고 있자니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남자의 아버지가 말했다.
“혼사야 숨긴다고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아이들도 숨겨야죠. 세상에 어찌 내놓습니까?”
“도대체!”
남자의 아버지는 지금 이 대화가 아주 불편하고 못마땅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본인도 지금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만 붉히며 화를 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좀 진정하세요. 그냥 방법만 좀 달리 하자는 겁니다. 혼인신고도 하고, 호적에도 올리지만, 사람들에게만 알리지 말자는 뜻이에요.”
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남자의 아버지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온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등 뒤에는 식은땀도 흘렀지만, 그는 결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 일지 모른다.
“양가 집안 모두 곤란한 일 아닙니까? 사돈어른 신경 안 쓰이시게 제가 잘 처리할 테니, 아드님만 어디 유학이라도 좀 보내주세요. 그것도 돈이 필요하시면 제가 대겠습니다.”
남자의 아버지는 계속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저 빨간 옷을 입은 무당이 자신을 사돈이라 지칭하는 것을 듣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그렇다. 이것은 사람의 도리나, 인정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남자의 아버지는 이 혼사가 밝혀지는 순간, 저 무당을 자신의 사돈이라고 소개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의 심경은 아주 불쾌하고 불편했지만, 그의 이성은 아주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결정은 이제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럼 아이들은…”
“당연히 어미가 길러야지요. 아이도 저희가 책임지고, 잘 키우겠습니다.”
“아.. 예……”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남자의 아버지는 긴장했다. 지금까지의 대화가 너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안심하고 있었는데, 내심 불안했던 마음처럼 여자의 엄마가 조건을 달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저 무당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너무 불안했다.
“아이들의 이름은 제가 짓게 해 주세요. 꼭 그 이름으로 호적에 올려주셔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남자의 아버지는 안심했다. 그의 입장에서 저 정도 조건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름만 포기한다면 그쪽에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훨씬 더 이상한 조건을 걱정했던 그의 입장에서는 왜인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또한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혼사 이외에 그 어떤 혼사도 안됩니다. 저희는 혼사를 숨기는 것이지, 연을 끊어내려는 것이 아니니까요.”
“예. 당연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은 꼭 분명히 해주셔야 합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들의 모든 양육 권한은 저에게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남자의 아버지는 마지막 조건이 뭔가 찝찝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마저도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자신의 마음으로는 지금 태어난 아이들까지 목회자로서의 삶을 이어가게 해주고 싶었지만, 이미 그것까지는 욕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미 모종의 계약을 마친 상태였기에 여자의 엄마와 남자의 아버지는 차분한 마음으로 산부인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는 남자와 여자의 표정도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이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응당 이러한 상황이라면 처음 뵙는 배우자의 부모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지금 이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보다, 자신들이 낳은 이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헤어질 수 없어. 봐봐 아이들도 생겼다고. 아무도 이제 우리를 못 떼어 놔. 사람의 인연이 얼마나 질긴지. 엄마가 더 잘 알잖아.”
여자는 반은 빌듯이 또 반은 협박을 하듯이 낮은 목소리로 그의 엄마에게 읊조렸다. 여자는 누구보다 자신의 엄마를 잘 알고 있기에, 그녀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여자는 간절했다. 그 어떤 순간들보다.
“우선 무슨 말씀을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도 좋고, 교회에서 봉사만 하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저 우리 가족만 함께 살게 해 주세요. 전 그거 하나면 됩니다. 제가 어떤 삶을 살아도 상관없으니, 우리를 함께 살게만 해주세요. 부탁입니다.”
여자와 남자는 각자의 부모에게 빌기 시작했다. 아마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부모들이 얽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과, 하지만 자신들에게 찾아온 이 아이들의 존재도 그들에게 어쩌지 못하는 변수라는 것을.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예상한 사람은 바로 여자의 엄마였다.
“죽는다고 해야 합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저 아이들이 죽는다고 해야 말을 들을 것입니다. 반듯이 명심하세요. 죽는다고 해야 합니다.”
여자의 엄마가 산부인과 앞 커피숍에서 남자의 아버지에게 마지막을 했던 말이다. 여자와 남자가 아이들을 앞에 두고 부모들에게 빌고 있을 때, 여자의 엄마는 남자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제 각자 알아서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
“예 알겠습니다.”
여자 엄마의 말에 시선도 주지 않고 대답한 남자의 아버지는 남자에게 말했다.
“나가자. 나가서 얘기 하자.”
남자의 아버지의 표정과 말투는 단호했다. 남자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버지의 저 표정을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은 달아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남자는 아버지를 따라나서기 전에 아이들을 한번 더 만져보았다. 그리고 지금 나가서 아버지가 어떤 표정을 짓는다고 해도 다 이기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여자는 신기가 있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잘 맞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는 아버지를 따라나서는 남자의 뒷모습이 왠지 멀게 느껴졌다. 지금 이대로 남자를 보내면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자는 울부짖었다.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하지만 남자는 신기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을 향해 울부짖는 여자에게 웃으며 말했다. 다녀오겠노라고. 금방 다녀오겠노라고. 그리고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의 아버지는 이미 자신의 교회에서 힘을 좀 쓰는 청년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귀신에 씌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다고. 자신의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기도원으로 아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주일의 시간을 홀로 두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갔다.
“우선은 네 기운부터 빼야 했다. 그래야 내 얘기가 너에게 닿을 것 같아서.”
“아버지…… 아버지 손자들입니다. 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죽는 단다. 그대로 너희가 함께 살면, 아이들이 죽는 단다. 이렇게 떨어져 있지 않으면 그 아이들이 죽을 운이라고.”
“아버지…… 아버지는 목회자 이시잖아요. 하나님을 섬기시는 분이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으시면 믿으십니까..”
“그 무당의 말을 믿은 것이 아니라, 내 눈을 믿었다. 네가 그 여자와 애들 사이에서 불안에 떨며 내게 빌던 그 눈빛. 그 눈빛은 그 어느 것도 책임질 수 없는 눈이었고, 그 어떤 것도 이끌 수 없는 눈이었다. 너는 내가 목회자라고 했지? 너도 나와 같은 길을 갈 사람이다. 너의 마음이 잡히고, 각오가 생기면, 그때 다시 말을 하자.”
그렇게 남자는 1년이라는 시간을 기도원에 있었고, 그 이후에 아버지를 통해 여자 엄마와의 얘기를 들었다. 그날 남자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올 수 있었고, 그리고 그날은 지함이 남자의 집으로 온 날이기도 했다.
남자가 아버지를 따라 나가자 여자는 실신을 할 정도로 오열을 했다. 이미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예감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가 울다가 실신한 동안, 여자의 엄마는 간호사를 불러 여자에게 수액을 맞을 수 있도록 했고, 그동안 아이들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전화를 걸어 누군가를 불렀다. 잠시 후 알록달록한 색동 한복을 입은 한 여자가 입원실로 들어왔다. 잠시 후, 여자가 눈을 뜨자 눈앞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바로 그 여자였다. 그리고 여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분신이었다.
“언니.”
“언니라고 부르지 마.”
“언니.”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지 마.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마.”
“언니. 이미 느끼고 있었죠? 이 아이들이 조금 다르다는 거.”
여자는 알고 있었다. 진통이 오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리고 10시간의 진통 끝에 아이들이 한 명씩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뭔지는 모르지만, 이상한 기운과 불안이 아이들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여자는 더 간절했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보고 있을수록 점점 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죽어요.”
여자는 여자의 분신의 한마디에 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살릴 수 있어요. 알잖아요. 방법이 있다는 거. 엄마 말대로 해요. 살릴 수 있어요.”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아이들의 생명에 관한 이야기라면 엄마가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무너진 여자를 보며 여자의 엄마는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어차피 이리될 일이었다. 내가 정말 몰랐겠니? 네가 그 남자와 연을 맺는 순간부터, 이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까지,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네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네 힘으로 지킬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내가 지키마. 이 아이들. 네 어미가 책임지마. 걱정 말아라.”
여자의 엄마는 사내아이에게 이지함이라는 이름을, 여자 아이에게 이 함지라는 이름을 지어 남자의 아버지에게 보냈다. 남자의 아버지는 남자와 여자의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들을 호적에 올렸다. 여자의 엄마는 강이 흐르고, 산으로 둘러 쌓인 곳에 흙으로 집을 지어 아이들을 길렀다. 동쪽에는 남자아이의 방을 두고, 서쪽으로는 여자아이의 방을 두었다. 쌍둥이였지만, 여자의 엄마는 절대 같이 두는 일이 없었다. 오직 두 아이가 만나는 순간은 여자가 아이들에게 젖을 물리는 시간뿐이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자와 아이들은 여자의 엄마와 함께 그곳에서 생활했고, 1년이 되던 날. 남자아이를 남자에게 보냈다.
“이 아이들은 같은 날 태어났지만, 같이 붙어 있으면 안 되는 운이다. 내가 너희 가족을 이렇게 흩어놓는 이유도 아이들의 기운이 합쳐지면, 모든 대운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따로 살아야 한다. 다만, 막지는 않을 테니 자주 봐도 된다. 특히, 어미인 너는 얼마나 그립고 쓰리겠니. 어미의 정은 듬뿍듬뿍 나눠도 된다. 다만, 너희가 모두 함께 모이는 것은 일 년에 단 하루만 하도록 해라. 이 아이들의 생일에 말이다.”
그 뒤로 여자와 남자의 삶은 참 이상하고 묘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며, 서로의 집을 들락거렸고, 여자는 상관이 없었지만, 전도사로 일하던 남자에게는 안 좋은 소문이 돌기도 해서, 이곳저곳에 집을 참 많이도 두고 살았다. 그 많은 집들은 당연히 인천에서 제일 유명한 무당인 여자의 엄마가 마련해 주었다. 심지어 남자가 교회를 개척해서 나올 때는 어마어마한 건축헌금까지도 주었다. 그렇게 이 가족은 참 이상하게 살았다. 아빠와 엄마는 각자 자주 보며 컸지만, 모두 함께 모이는 날은 아이들의 생일날에만. 여자와 남자는 어느새 그 생활에 익숙해져 버렸고, 아이들은 처음부터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자기들에게는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처럼, 그저 사는 방식이 좀 다른 것뿐이라고, 그들을 그렇게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