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비결 of토정-20

네 번째 장편소설

by 박희종

다리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네가 저 놈과 만났던 날. 그 동자신이 신나서 나한테 조잘대더라고. 이상한 인연이 꼬였다고. 그런데 나한테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둘의 연이 닿아 새 생명을 받으면 그 생명이 귀한 열쇠를 쥐고 태어날 거라고. 그 열쇠의 주인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주인이 되는 순간,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알게 될 거라고.”


“도대체 엄마의 욕심은 끝이 어디야!”


“왜 끝을 알아야 하는데? 더 갖고 싶고 더 이루고 싶은데, 왜 끝이 있어야 하는 건데? 나한테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있는 열쇠가 온다는데, 그 아이들이 내 미래를 찬란하게 빛나게 해 준다는데, 내가 못할 게 뭐가 있을까? 어?”


“그래서 뭔 짓을 한 건데!”


“동자신이 그러더라, 날 때부터 심상치 않을 텐데. 둘이 함께 있으면 서로가 서로의 기를 눌러서 살만 할 거라고. 그렇게 열쇠를 잘 숨기고 살 수도 있다고. 그 말을 들으니 소름이 돋더라고. 내가 세상의 이치를 알려면 얘네들을 떼어놔야 하는구나. 얘네가 따로 살아야 내가 찬란해지는구나!”


“말도 안 돼.”


“돌까지였어. 각자 방으로 나눠 놓아도 서로의 기를 누르지 못했던 것은, 그런데 자기들도 핏줄이라고 기어 다니기 시작하니까 그렇게 서로 가깝게 가더라고, 서로의 기를 서로 눌러가며. 그래서 보낸 거야. 각자의 기를 잘 키우라고.”


“엄마……”


“왜? 왜? 내가 널 위해서 안 해준 게 뭐가 있어? 내가 그 애들을 위해 못 해준 게 뭐가 있냐고? 나는 진짜 애지중지 길렀어. 그 아이들이 잘 자라기를 누구보다 바랬다고! 그리고! 오늘이었어! 오늘! 그 아이들이 성년이 되고! 각자 그동안 잘 길러온 운으로 열쇠를 꺼내서 세상의 이치를 나에게 선물할 날이! 그런데! 그런데! 내 딸년이! 저 아이들의 어미라는 년이! 모든 걸 다 망치고 있는 거라고! 딸아. 이거 열어? 이거 열고! 아이들이랑 그 능력만 모아서 나한테 주면. 내가 다해 주마. 너희들은 이제 평생 행복하게만 살게 뭐든지 해준다고. 어디든 가! 해외도 좋고, 어디 경치 좋은 시골이어도 좋으니, 이 애미 잊고 니들끼리 편히 살다. 내가 물려주는 거 받아 대대손손 호강하며 살면 된다고.”


“엄마도 알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거.”


순간, 외할머니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아마도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함이 여자의 말에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자라는 내내 엄마가 불쌍했어. 화려하게 꾸미고, 사람들 앞에서 항상 주목받기 바라며 살았지만, 그 마음이 나한테는 오히려 가려질까 두려워하고, 버려질까 겁내 하는 것처럼 보였거든. 모시는 동자신을 위해 건물을 다 꾸미고, 엄마를 찾는 권력자들을 위해 화장을 고치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아슬아슬해 보였어. 근데, 지금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잖아. 엄마. 걱정 마. 내가 다 포기하게 해 줄게.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게, 다 포기할 수 있게 해 줄게.”


“안돼! 그러지 마!”


여자와 남자는 카페에 갇힌 사람들을 뒤로하고, 차에 탔다. 차에는 이미 뒷자리에 강철과 정우가 타 있었다. 여자는 정우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고마워. 네가 이걸 주지 않았으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아니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함지한테 못된 짓을 많이 했어요. 이렇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정우는 토정비결 초판을 손에 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강철이 지함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지함은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결국 정우는 숨어있다가 지함의 엄마에게 토정비결 초판을 전달한 것이다. 정우는 결국, 강철을 통해서 함지에게 자신이 원하는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함께 지함과 함지와 대호가 기다리는 다리 위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은 불안한 마음에 그들은 속도를 내서 가고 있었는데, 새벽이라 그런지 아무런 인적도 없이 깜깜한 어둠만이 세상을 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다리에 도착하자, 그들의 차를 보고, 지함과 함지, 그리고 대호는 이미 앞에 나와있었다. 함지는 엄마의 차에서 내리는 정우를 보고 마음이 놓였다. 머릿속에 계속 정우의 미래를 생각하며, 그에게 더 이상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가 실제로 눈앞에 보이자, 그녀는 그제야 진짜 안심할 수 있었다. 정우도 함지를 보자마자 비슷한 마음을 느꼈다. 그동안 자신이 분노를 가지고, 그녀의 불행만을 바라고 있었지만, 이제야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채, 편히 그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우는 엄마와 아빠가 그들에게 다가오기 전에 그가 먼저 함지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지금부터 할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기에, 자신이 먼저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함지야.”


“….”


“처음이지? 내가 너를 이렇게 불러본 게.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도,”


“어.”


“지금 시간이 없는 건 알지만, 이 말은 꼭 먼저 하고 싶었어.”


“…”


“미안해.”


함지는 정우의 그 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정우는 함지의 반응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그 울음의 의미를 왠지 알 것 같아서 그냥 한번 더 말했다.


“미안해. 정말. 그리고 나 구해준 건 정말 고맙고.”


“나도 미안해, 정말 일이 그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정말 미안해.”


함지는 정우의 사과에 마음속에 있던 수많은 감정이 한 번에 모두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그녀의 눈물로 모두 씻겨나가고 있었다. 그런 함지를 바라보던 정우는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조금 진정하자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민우, 알지?”


“어.”


“걔, 축구선수됐대. 어쩌면 탁구선수보다 돈을 훨씬 더 벌지도 몰라.”


“정말 잘 됐다.”


“민우랑 밥 먹자. 다 같이.”


“그래……”


엄마는 두 아이의 대화에 조금만 더 시간을 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자신들이 그 카페에 잠시 가둬두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을 잡아둘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되도록이면 최대한 빨리 나머지 과정을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함지야. 미안한데, 이 친구가 이 토정비결 초판을 구해왔어. 그러니까. 우리는 좀 빨리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응. 알았어.”


“그럼 우선 니들한테 물을게. 이제 진짜 다 모였어. 아직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 사실인지 몰라. 그래서 실제로 이 일을 했을 때,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니들 해볼래?”


엄마의 말에 함지와 지함은 바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대로 그냥 살아가겠다는 선택도 쉽지도 않았고, 지금 이 과정을 통해 달라질 것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전혀 예상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겠다는 선택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지함은 이 과정의 결정은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지에 비하면 자신의 삶이 훨씬 수월했고, 이 모든 상황의 시작도 자신의 실수였기 때문이다. 지함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엄마에게 말을 했다.


“엄마. 진짜 웃기지 않아요? 지금 이 모든 과정이 세상의 이치와 미래를 알기 위해 하는 건데, 정작 우리는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어차피 일어날 수많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라는 거죠. 그래서 나는 그냥 해보고 싶어요.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이 지금처럼 여전히 우울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거든요. 나는 나를 위해서도 내 동생. 함지를 위해서도 해볼래요. 너는?”


함지는 지함의 말에 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함은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실수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함지의 입장에서는 지함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함지는 그저 지함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 눈빛으로 함지는 그 모든 내용에 동의했다. 그리고 지함이 엄마에게 다가가 토정비결 초판을 건네받았다.


“그럼 우선 해보자. 대호야. 시작은 너야. 해줄 수 있겠니?”


“그럼요. 저는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어요.”


대호는 함지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이 함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호는 바로 손에 들고 있던, 철갓을 머리에 썼다. 그리고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그러자 아까처럼 철갓과 지팡이에서 묘한 빛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주위에서 보호막이 되었다. 하지만 아까와 달랐다. 새로 생긴 보호막은 토정비결의 표지 색처럼 노란빛을 띠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그리고 지함의 손에 있던 토정비결 초판은 보호막이 생기는 동시에 마치 무중력 공간에 있는 것처럼 공중에 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 광경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고, 특히, 그 공간 안에 있는 지함과 함지 그리고 대호는 이미 경험을 해본 것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 공간에서 처음 듣는 중년의 남자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이들이여, 나와 같은 공간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그 목소리는 그 공간뿐만 아니라, 강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간을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놀라고 있었다.


“나는 평생 다른 이들의 미래를 보며, 세상을 가꾸려 노력했다. 내 말이 위안이길 바라고, 내 눈이 약 이길 바랬다. 나의 소리로 꿈이 춤추길 바랬고, 내 힘이 희망이 되어 꽃이 되길 바랬다. 허나 내 말은 독이었고, 내 눈은 칼이었다. 내 소리는 천둥이 되어, 사람들을 겁주고, 세상을 부쉈다. 원망하고 원망했다. 선물이라 생각했던 힘은 저주였고, 특별하다 생각했던 마음은 외로움이 되었다. 그래서 이 공간에 들어온 그대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지금 바로 이곳에서 나가길 바란다. 지금부터 내가 줄 모든 것은 그대들에게 결코 축복이 아니니.”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 이 말에 공감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지함과 함지뿐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말들에 그들은 고스란히 고통과 아픔, 외로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전하는 나가라는 말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말에도 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서있는 그들에게 목소리는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미 나와 같은 여정을 지나왔을 그대들이여. 그들이 지금 이곳에 닿았다는 것은 그대들을 이곳으로 이끈 간절함이었으리라 가늠한다. 아직도 그대들이 정령 나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내 능력은 그대들의 것이다. 다만, 잊지 말아라. 주는 것이 나에 선택이듯이 그것을 어찌할지도 그대들의 선택으로 남겨두었다. 이것이 나의 진짜 선물이다. ”


그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토정비결이 그들의 사이로 왔다. 그리고 마치 그들에게 손을 올리라는 듯이 책의 중심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함과 함지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이 책 주인의 삶이 느껴졌기에 시작할 때와는 다른 두려움이 더해진 것이다. 지함은 함지에게 물었다.


“괜찮겠어?”


“뭐?”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힘든 삶이 될 수도 있어.”


“알아.”


“느꼈지? 저 사람의 삶이 어땠는지?”


“어.”


“네가 멈추자면 난 멈출 거야. 이대로 멈춰도 예전과는 달라. 네가 살아가는 삶에 내가, 아니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 겁이 나면 하지 않아도 돼.”


함지는 솔직히 너무 겁이 났다. 그녀의 삶은 지금까지 사람들의 불행만 보며 살아왔던 삶이었다. 그리고 지함의 사진으로 능력이 증폭되었을 때는, 정말 세상의 모든 불행이 자신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책에 손을 얻는 순간, 또 어떤 고통이 자신에게 몰려들지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니 지금 여기서 멈출 수만 있어도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으니. 그런 마음이 가득할 때, 보호막 밖에서 고막이 찢어질 듯 날카로운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그 책 위에 손을 얹어!”


그 소리는 너무도 높고 커서 아까 그 목소리와는 다른 의미로 어둠을 뚫어내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목소리에 너무 놀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셋은 순간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공간 밖에는 이미 지옥이 되어 있었다. 외할머니가 데려온 사람들은 밖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강철과 정우는 팔이 꺾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고, 엄마와 아빠는 다리 난간에 올라가 검은 옷의 사람들 손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외할머니가 있었다.


“어서 책 위에 손을 올려. 그리고 그 책에 너희 능력을 모두 담아.”


“할머니”


“나도 여기서 멈추고 싶다. 아가들아. 너희가 이 할미 말만 들으면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할머니”


“난 그 책만 있으면 돼. 너희의 능력을 담은 그 책만 주면, 내가 사라져 주마. 내가 너희 가족 앞에서 완전히 사라져 줄게. 그리고 그저 이 모진 할미를 원망하며 살면 돼. 그러면 나중에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모든 부와 권위를 너희에게 주고 가마. 그러니 이 할미를 믿고 너희의 능력을 빌려주렴. 부탁이다.”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정우와 강철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자식인 부모를 인질로 잡고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족이었다. 지금 이들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가족인 것이다. 이 상황이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엄마. 그만해. 제발. 제발.”


엄마의 목소리에 지함과 함지는 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경험상 항상 할머니는 강한 사람이었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대적할 수 있는 차분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할머니 앞에서 흥분한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상황이 가장 큰 공포였다. 분명히 무슨 일이든 벌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때,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지함아. 함지야. 그 책을 잡아라.”


외할머니는 아빠가 자신을 돕는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빠는 그녀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책을 잡아라. 그래서 저 강에 던져.”


“야!”


외할머니의 비명은 다시 또 어둠 속에 진동했다.


“책을 놓아야 한다. 지금은 그래야 한다. 미안하다. 나는 21년 전에 바로 이곳에서 성경책을 놓았다. 네 엄마 덕에. 모든 걸 놓을 수 있었어. 그리고 너희를 얻었지. 너희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더 놓아야 했다. 네 할아버지의 손을. 그의 말을. 그의 힘을. 그런데 그걸 놓지 못해서 너희를 잃었어. 지금 너희가 그 책을 놓는다면, 잃을 것도 많을 거야. 하지만 겁내지 않아도 돼. 분명히 얻는 것도 있을 거니까. 그러니까 겁내지 말고, 어서 놓아버려. 다 놓아도 돼!”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외할머니는 아빠를 다리 밑으로 밀어버렸다. 정말 아빠가 다리 밑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지함과 함지는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엄마를 향해 욕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은 모든 실핏줄이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떨어지는 아빠를 보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짜 비극이 일어났다. 아빠가 떨어졌다.


“나는 모진 년이다. 하지만 모질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삶을 살았어. 다음은 너희 엄마다. 못 할리 없다. 난 지금 딸이라도 아니 그보다 더 한 것이라도 죽일 수 있다. 너희는 알지? 그럼 손을 얹어…… 어서!!”


지함과 함지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시선은 아빠가 떨어진 곳에서 뗄 수 없었다. 그들은 지금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빨리 할머니에게 책을 넘긴다면 살 수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손을 토정비결 초판에 손을 올리려고 했다. 손은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고, 서두르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울렸다.


“안 죽는 다고 했잖아. 여기서는. 떨어져도 안 죽는다고.”


“넌..”


“언니, 걱정 마. 내가 밑에 사람들 보내 놨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네가 여길 왜 와!”


외할머니는 고운 한복을 입고, 갑자기 나타난 엄마의 분신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외할머니의 목소리에도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느리고 차분하게 다가왔다. 엄마는 그녀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지함과 함지, 대호는 그대로 멈춘 채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는 분신이 아니니까.”


“뭐라고?”


“언니가 왔었어요. 엄마가 가져간 내 머리카락을 주려고. 우습죠? 그 한 줌 머리카락으로 그 긴 세월을 언니의 분신으로 살았다는 게.”


“뭐!”


“참 대단해요. 내 머리카락을 언니의 머리에 심어 놓다니, 난 상상도 못 했어요. 언니도 내가 자신의 분신이 된 건 알았는데,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고 있었고요. 그런데 언니가 겨우 생각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너……”


외할머니는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고, 엄마는 피가 나는 눈빛으로 이를 악물며 그녀에게 말을 했다.


“맞아. 겨우 기억이 났어. 동자신이 매일매일 놀러 오던 때, 엄마가 갑자기 병원에 가자고 했던 게. 그때는 내 머리에 혹이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날 이후로 동자신이 잘 왔던 거 같더라고. 그리고 이상하게 어느 날부터 한쪽 머리 중에 한 줌만 길이가 항상 달랐고. 근데 그 거였더라고, 내 분신의 머리를 뽑아다가 내 머리에 심은 거야. 쟤가 내 일부가 되도록. 동자신이 그렇게 느껴지도록. 소름이 돋더라고,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누군가의 인생을 분신으로 만들어서까지 엄마는 왜 그렇게 살려고 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엄마는 엄마의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힘을 훔쳐 쓰며 살았던 거야!”


“그게 뭐! 그게 어때서! 넌 내 거잖아! 내가 만든 거잖아! 그게 뭐가 어때서! 내가 만든 걸 내가 쓰겠다는 게 뭐가 문젠데. 이 모든 것도 다 니들을 위한 건데. 뭔가 문제냐고. 어차피 다 내 핏줄이잖아! 그러니까! 쟤들도 내 거야! 어차피 다 내가 만든 거라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엄마의 분신이 웃으며 말을 했다. 그 웃음의 느낌은 서늘하고, 축축했다. 마치 드라이아이스의 연기가 바닥에 깔리듯이 그곳의 바닥에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맞아. 엄마 말이 다 맞아. 근데 어쩌지? 이제 난 언니의 분신도 아니야. 그러니까 엄마 꺼도 아니고. 맞지? 그러니까 여기서 나는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거잖아? 그렇지? 엄마?”


“그래. 가! 꺼지라고 이 년아! 이제 다 필요 없어! 네 까짓 꺼! 내 손주들이 저 능력만 나한테 주면! 이제 다 필요 없다고! 야! 니들 뭐 하고 있어? 저 미친년 안 치워?”


외할머니는 함께 온 검은 옷의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말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외할머니는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허공을 돌아 사라지자, 그 어둠 속에서 두목이 걸어 나왔다. 두목은 아까 외할머니에게 맞은 볼을 만지며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


“회장님. 다 들었습니다.”


“뭘?”


외할머니는 순간, 표정이 달라진 두목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두목의 한마디에 외할머니의 표정이 두려움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외할머니의 떨리는 몸과 흐르는 땀으로 더 알 수 있었다.


“이제 신기가 없다면서? 그동안 그렇게 영험한 척하신 게 다 연기였다면서?”


“뭐?”


두목의 말에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엄마였다. 그녀는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분신을 통해서 동자신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동자신이 자신에게 더 관심이 있어서 자주 놀러 다니던 동자신을 묶어두려고 한 것인지 알았다. 그저 자신에게 자꾸 놀러 오는 변덕이 심한 동자신을 다루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하지만, 신기가 없다니, 그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엄마가 신기가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몰랐어? 언니는?”


“그게 진짜라고?”


“엄마 신기가 사라진 지 오래됐어. 아마 내가 집에 오기 전부터 아슬아슬했던 게 아닐까? 지금까지 다 우리 힘으로 산 거야. 우리 신기가 자기 꺼 인냥. 얼마나 불안했을까? 신중에서도 최고의 신을 모시던 엄마가 한순간에 평범한 사람이 된 거니까. 그 공포는 아마 우리가 상상도 못 할 수준이었을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간절했지. “


분신의 말에 외할머니의 표정은 점점 더 공포에 가득 쌓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소리를 치고, 원하는 것을 갈말 할 때는 한없이 크고 대단하게 느껴졌던 외할머니의 존재가 얼굴에 공포가 비치기 시작하자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마치 바람이라도 빠진 것처럼 그녀는 너무나 작은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거 알아? 지금 이 일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엄마는 원래 다 알고 있었거든. 동자신이 엄마를 떠나면서 마지막 선물이라고 말해준 게 저 애들 얘기니까. 그냥 단순히 신기가 있는 아이들이 태어난다고 말해준 게 아니라, 사주에 대한 이야기부터 저 토정비결에 대한 얘기까지 다 해준 모양이야. 그러니까 어땠겠어? 자신이 신기가 사라진 순간, 자신의 손자가 지금까지 누구도 흉내 내 낼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건데. 그래서 더 간절했을 거야. 동자신의 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엄마니까. 다 믿었겠지.”


외할머니는 분신의 그 말에 천천히 움직여서 지함과 함지에게 기어가고 있었다. 너무나 작고 초라해져 버린 외할머니는 천천히 기어가며 그들에게 빌기 시작했다.


“그래. 그러니까 이제 다 필요 없어. 이제 니깟 잡귀들 따윈 다 필요 없다고, 아가들아. 들었지? 이 할미가 지금 얼마나 불쌍한 사람이 되었는지! 이제 다 알겠지? 그동안 이 할미가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왔는지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할미의 소원을 좀 들어주렴. 이 할미가 다시 좀 살 수 있게. 그 책만 할미에게 좀 주라고 제발. 제발.”


그때 두목은 점점 외할머니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두목은 차가운 미소를 띠고 외할머니에게 다가와 그녀의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의 볼은 여전히 빨갛게 부어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야비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는 마치 복수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했어. 설마. 그래도 우리한테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셨는데, 진짜 그동안 정말 대한민국의 수많은 역사를 만들어 오신 분인데? 대한민국에 당신의 말을 궁금해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신 같은 분이셨는데! 그게 다 사기라고? 다 남들 거였다고? 이거 완전 진짜 미친년이네.”


두목이 외할머니의 머리를 재끼고 뺨을 때리려 하자, 분신이 말을 했다.


“건드리지는 마. 얘기했잖아.”


두목은 순간 분신의 말에 행동을 멈췄다. 하지만, 눈에 독기는 그대로 남은 채, 분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을 했다.


“지금까지 그쪽이 한 말이 다 맞은 건 맞아. 근데, 우리 사이에도 아무것도 쌓인 것이 없잖아. 내가 과연 이 년의 신기만으로 이렇게 설설 기어 줬을까? 이년이 니 신기를 이용해서 나라를 움직이던 년이야? 정말 이 세상을 다 지 꺼인 양 가지고 놀던 년이라고, 난 그런 이년을 이용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나도 이 세상을 다 가지려면! 그런 힘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네가 할 수 있어? 확실해? 난 아직 그걸 모르겠는데?”


그때 마침 두목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분신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목에게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으라는 신호를 했다. 두목은 뭔가 기분이 아주 나빴지만, 수신번호를 보니, 자신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분의 전화였다. 그는 시선은 분신에게 그대로 향한 채, 전화를 받았다.


“예. 예. 예 알겠습니다.”


두목은 전화통화 내내 단 한마디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대답만 하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전화통화를 하면서 점점 더 표정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전화는 생각보다 길었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두목은 분신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지금부터 회장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한 순간 건방졌던 제 모습도 사과드립니다. ”


지금 벌어진 상황에 그곳에 있던 그 누구도 쉽게 반응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독기가 뿜어져 나오던 두목의 태도가 너무나 한 순간에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상황에 제일 화가 난 것은 외할머니였다.


“넌 도대체 뭘 한 거야?”


“엄마가 대단하다는 건, 꽤 오래전에 알고 있었어. 정말 세상에 엄마의 입김이 안 닿은 곳이 없을 만큼 엄청나게 영향력을 키웠더라고. 그런데 그것도 알았어. 나도 언젠가 이렇게 풀려날 거라는 거. 그리고 그때 밥을 먹고살려면, 손님이 있었야 한다는 거. 그래서 슬슬 엄마가 봐달라는 모든 사람들하고 연락하기 시작했지. 어차피 내가 차지할 자리들이니까. 미리미리 그냥 연락들을 해 논거야. 그런데 자꾸 연락을 하면 할수록 엄마의 존재가 더 대단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더 열심히 그들과 연락을 했지. 아마 그 사람들 최근에는 다 내 말을 더 잘 들었을 거야. 내가 엄마한테는 일부러 틀린 걸 알려주고. 다시 전화해서 내가 다시 다 봐줬거든. 그러니까 다들 내 말을 잘 듣더라고. 엄마한테 비밀로 하라는 말까지. ”


외할머니는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남은 것은 지함과 함지의 능력밖에 없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외할머니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정말 온 힘을 대해서 지함과 함지에게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빌며 말했다.


“봤지. 아가. 우리 아가. 봤지? 정말 할미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 할미의 인생이 통째로 다 사라지고 있어. 이 할미 죽는 꼴을 보고 싶니? 이대로 니들 앞에서 혀라도 깨물어 죽어야 속이 시원하겠니? 사랑해. 우리 아가들 할머니가 정말 많이 사랑해. 사랑하는 할미의 마지막 소원이다. 니들이 이 세상에 온다고 들은 순간부터 매일을 꿈꾸고 바라던 꿈이란다. 아가. 이 할미 좀 살려주렴. 제발. 제발 이 할미를 위해 그 능력을 좀 빌려달라고.”


지함과 함지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의 상황은 그 어느 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들이 왜 지금 이 상황에서 이렇게 어려운 선택에 놓여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도망가고 싶었다. 이대로 모든 걸 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때, 분신이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모.”


“너희는 그랬어. 처음부터. 니들이 말을 할 수 있을 때부터, 신당이 있는 건물에서 우연히 너희 엄마와 마주쳤을 때마다, 니네 엄마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불어줬지. 이모라고. 난 실은 너희 엄마를 아주 많이 싫어했었어. 당연하지. 삶을 통째로 도둑맞았으니까. 네 엄마 때문에 내 삶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너무 당연한 거잖아. 그런데 내가 더 화가 났던 건, 너희 엄마가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거야. 내 삶까지 가져가서 사는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돌아다녔으니까. 그게 나를 더 미치게 만들곤 했어. 그런데 그런 너희 엄마도 니들을 바라볼 때면, 꽃이 폈지. 얼굴에 환하고 예쁜 꽃이 폈어. 난 신기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정말 자식이라는 존재가 엄마에게 그렇게 큰 꽃이 되어주는지. 그런데 알겠더라. 니들이 나한테 이모라고 불러주는데, 나도 꽃이 폈더라고. 살면서 처음으로. 얘들아. 오늘은 내가 그 빚을 갚는 거야. 나한테 항상 꽃을 선물했던 너희들에게.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니들이 원하는 대로 해. 누가 뭘 하든, 그게 뭐든 내가 다 막아 줄 테니까.”


그때 마침, 그들을 감싸던 보호막이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을 바라보는 이 순간에 보호막까지 사라지자, 마치 갑자기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함지는 그대로 할머니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외할머니는 함지의 손에 얼굴을 비비며 다시 또 빌고 빌었다. 함지는 자신의 손을 적시는 할머니의 눈물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녀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존재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신에 향한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지야. 이 할미 좀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그리고 그 순간, 함지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을 감싸는 보호막이 생겼다. 그리고 그 보호막에서 다시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고심의 시간이 길어지는 그대들이여, 그대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시간의 경계를 주고자 하네. 그대들의 선택이 어떠하든 그 결정은 이 마지막 공간이 사라지는 순간 까지라네. 그대들을 지켜주는 이 공간이 사라지면, 그 역시도 그대들의 선택이라 생각하고, 내가 남긴 선택이 그대들을 이끌 것이다. 다만, 그 결과도 그로 인한 책임도 모두 그대들의 몫이니, 명심하시길 결국 지금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대호가 말을 했다.


“이 공간의 대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할 수 있습니까?”


“이제 들리지 않네.”


“보이지도 않게 할 수 있습니까?”


“이제 보이지 않네.”


대호는 지함과 함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함과 함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갑자기 그 보호막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고, 그 안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며 주저앉은 채 울고 있었고, 엄마는 붉어진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분신은 엄마의 옆에서 그저 눈을 감고 있었고, 강철과 정우는 힘이 빠졌는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이 상황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은 두목이었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뒤지며 무엇인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는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시간은 실제로 5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지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의 보호막이 풀리자마자 두목과 그의 일당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토정비결 초판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아마 그들도 모험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 와서 또다시 누군가에게 끌려 다니는 것보다, 저 토정비결 초판을 확보해서 자신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을 선택한 듯했다. 하지만 그가 함지에 손에 들린 토정비결에 달려드는 순간, 대호가 그들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고, 그들은 마치 태풍에 쓸려가듯이 강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철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외할머니는 그저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때 엄마가 함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다 끝났어?”


“몰라. 우리도.”


“괜찮아. 그 끝이 뭐든.”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어. 뭐가 맞는 건지.”


“그것도 괜찮아.”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정했어.”


함지는 지함과 대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봤다. 그리고 다시 외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


“……”


“미안해.”


함지는 그 말과 동시에 토정비결 초판을 대호에게 건넸고, 대호는 자신의 머리에 있던 철갓을 토정비결 위에 올려두고는 지팡이로 그 가운데를 뚫었다. 그리고 그렇게 뭉쳐진 것을 아무런 미련 없이 강으로 던저버렸다. 그 모습을 본 외할머니는 새끼를 잃은 어미 동물의 울음소리를 내며 강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토정비결이 떨어진 자리의 난간을 잡고 강을 바라봤다. 외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너무 날카롭고, 어두워서 아무도 그녀의 곁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울던 외할머니 뒤돌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이들을 바라봤다.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엄마.”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할머니.”


“한이라는 것의 질김을 나는 안다.”


“엄마……”


“사람 원한의 깊이가 저 강과 비교도 되지 않음을 안다.”


“엄마……”


“한평생, 너희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살았다.”

“내 삶은 온통 다른 이들의 삶으로 채워왔다.”

“남은 것이 없어서……”

“내 몸이. 맘이. 내 혼이 다 비어서.”


“실은 나한테 할머니의 미래가……”


“내 핏줄인 니들을 씹어 삼켜 채울 게다. 하나하나 내 몸에 다시 채워 모두 함께 데려가마. 기다려라. 나는 다시 온다. 아가. 이 할미가 꼭 다시 찾아오마. 다 같이 오손 도손 모여 살며 기다려라. 피를, 뼈를, 온 살을 씹어 삼키려 이 할미가 다시 오마.”


외할머니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강에 몸을 던졌다. 대호가 다가가 막아보려 했지만, 외할머니는 그대로 떨어져 버렸고, 대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놀라 그 난간을 뛰어온 사람들은 모두 외할머니의 마지막 표정을 봤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그렇게 그 다리에는 고요가 찾아왔다. 외할머니의 마지막에 아무도 울지 못했고,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모두 해가 뜨기 시작하는 하늘을 등지고 그대로 서 있었다.


-끝-


4편의 에필로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