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잘 가던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짜증을 부리고, 항상 잘 앉아 있던 카시트 자리가 불편하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고, 그냥 어린이집에 가서 선생님과 아이들을 만나면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아내도 아내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내려주고 내가 일하는 곳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는 순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는 울먹이며 나에게 말했다.
"우리 아이 열이 오른데.. 어떻게 해."
"어. 당신 오늘 일정 있어서 안된다고 했지? 내가 말하고 바로 갈게."
아내는 오늘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연차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다행히 특별한 일정은 없어서 가능한 상황이었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차를 돌리며 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렇게 연차 신청을 한 나는 바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정말 그 10분 만에 열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바로 해열제를 먹여주시기는 했지만,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하신 것이다. 나는 바로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고, 아내는 바로 똑딱으로 소아과 진료를 예약해주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차에도 잘 앉아 있고, 괜찮은 듯했지만, 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토를 하기 시작했고, 3번이나 토하면서 속에 있는 걸 다 게워내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동영상을 틀어주며 아이를 진정시켰고, 속이 좀 편해져서 인지 아이는 조금 안정을 찾은 듯했다.
가면서 시간을 확인하니 대기도 많이 남아 있어서, 우선 집에 들러서 아이를 조금 씻기고 옷도 갈아입히기로 했다. 왜냐하면 아이가 토를 하면서 옷을 많이 버렸고, 몸에도 많이 묻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씻기도 옷을 갈아입히며 아이를 만져보니 열감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소아과에 갔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순서가 많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조정을 해주시기도 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진정을 한 것 같은 아이는 목이 말라서 마신 물을 또 다 게워냈고, 열도 조금씩 더 오르는 듯했다.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진료를 좀 더 빠르게 볼 수 있었고, 우선은 토를 하고 열도 있어서 링거를 맞고 좀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처방을 받았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주사실에서 링거를 맞으며 아이를 진정시켰고, 그 사이에 아이는 또 한 번 열이 급하게 오르는 바람에 짧게 열경련이 오기도 했고, 결국 해열제를 다시 먹고서야 편하게 잠이 들 수 있었다. 나는 아이가 링거를 맞는 시간 동안 옆에서 아이를 안고 있었고, 밥보다는 흰 죽을 먹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미리 죽도 배달 주문도 해놓았다. 다행히도 아이는 자는 동안에 열이 떨어졌고, 안정도 됐다. 그리고 다시 진료를 보고 집에서 죽을 조금씩 먹여보며 쉬라고 하셨다.
특히, 열경련의 경우 오늘은 컨디션도 안 좋고, 다 토한 상태에서 갑자기 열이 오르니까 발생한 것이고, 쇼크도 심하지 않았으니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내내 불안하고 걱정이 되던 내 마음도 한결 놓였다.
아내는 아침부터 시간만 나면 연락을 했었고, 또 열경련이 왔다는 말에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었는데, 내가 의사 선생님의 말을 전하자. 아내 역시 크게 안심을 한 듯했다.
아이는 한결 좋아진 컨디션으로 집에 왔고, 와서는 흰 죽에 계란 스크램블을 반찬으로 해서 밥도 아주 잘 먹었다. 심지어 텐션도 돌아와서 아빠와 신나게 한바탕 놀더니 낮잠까지 아주 푹 잤다. 아내는 급한일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왔고, 다행히 잘 놀고 잘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며 정말 한시름을 놓은 듯했다.
"오빠 밥도 못 먹었지?"
"밥은 무슨. 애가 아프니까, 물 한 모금도 안 넘어가더라."
진심이었다. 아침부터 아이가 열이 나고, 토하고, 기운이 없으니 내 허기짐이나 목마름은 아예 생각도 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아이가 낮잠을 잘 때까지 하루 종일 물도 한모 금 마시지 않았고, 화장실도 한번 가지 않았다. 참거나 버틴 것이 아니라, 아예 생각이 나지 않은 것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달라질지 몰랐다. 언제나 철없는 막내아들이었던 내가. 항상 어리광을 부리고, 철없이 이것저것을 해달라고만 조르던 내가, 어느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가끔 마블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세계관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다. 엄청난 능력자들이 함께 모여 세계를 지켜나가는 이야기는 정말 근사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득 병원 대기실에 모여있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블 영화의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부모들이 각자의 자리에서는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아이의 앞에서, 특히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의 그들의 모습은, 그 어떤 히어로보다도 강하고 거침없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가 같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를 위해 못할 것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런 부모들의 마음이 아이를 키우고, 세상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블의 세계관보다 찬란한 것이 부모들의 세계관이 아닐까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