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종 Sep 07. 2022

사진 한 장이 없네

시선과 같은 사진

 출판사에서 사진을 한 장 보내달라고 했다. 이번 문학 나눔 도서 선정으로 필요하다고. 나는 출판사에 보낼 사진을 찾기 위해 노트북과 휴대폰을 뒤져보았는데, 보낼만한 사진이 없었다. 뭐 자세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증명사진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잘 나온 사진들을 골라보려고 했는데, 정말 보낼 만한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최근에 프로필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어서 찍은 적도 없었지만, 꼭 프로필 사진이 아니라고 해도 최근에 찍은 내 사진 자체가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해도 대부분은 피곤해 보이거나, 머리가 헝클어져 있거나, 모자를 쓰고 있거나, 얼굴이 반쯤 잘린 사진들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경주 사진관에서 찍은 흑백사진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너무 얼굴이 작게 나온 사진이라, 확대하면 해상도가 너무 떨어져서 쓸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몇 년 전에 잡지사 인터뷰에서 사진기사님이 찍어주셨던 사진을 다시 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셀카를 많이 찍거나, 사진에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원래 사진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연애를 하면서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그리고 아내는 내 사진을 참 많이 찍어주는 사람이어서 내가 밥을 먹고 있거나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도 나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참 많이 찍어 주곤 했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모든 사진의 포커스가 아이에게 향했다.


마치 사진은 우리의 시선과도 같아서 서로의 모습이나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살피기보다는 오직 아이에게 항상 향해있었다. 그 증거들이 내 갤러리를 가득 채운 아이의 사진이었고, 우리 집안 곧곧에 놓여있는 아이의 사진이었다.


얼마 전 본가에 가서 오랜만에 앨범을 열어보니, 빛바랜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곳에는 우리 남매의 성장과정들이 띄엄띄엄 담겨 있었는데, 그 안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진은 정말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독사진이나 두 분의 다정한 사진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우리를 찍는데 껴서 나온 사진이거나,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한 장 한 장이 소중했던 필름 카메라 시절이니, 그 한 장의 사진을 온전히 자신들을 위해서 쓰기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에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가게 되면, 어머니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꾸미고 오신다. 그리고는 가는 곳마다 독사진을 찍어 달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아이와도 사진을 찍고, 모두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꼭 독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신다. 나는 80세가 다 되신 어머니께서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셨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좋게 생각하면 이제야 어머니의 시선도 본인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고, 슬프게 생각하면 그 오랜 시절을 독사진 한 장 찍지 못할 만큼 치열하게 살아오셨다는 말이 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내 휴대폰에 내 사진이 없는 것이, 그리고 여행을 다닐 때마다 내 사진을 찍는 것이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다는 것이, 아주 조금도 서운하지 않다. 이미 나에게는 나 스스로의 삶보다는 내 가족과 함 하는 삶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가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어쩌면 우리 어머니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나의 사진이나, 부부의 사진을 먼저 찍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런 시기가 온다고 하더라도, 그 시기에 내가 진심으로 웃고 있을 순간은, 내 사진이 잘 나온 때보다, 여전히 내 아이들의 예쁜 사진이 찍혀을 때일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도 우리의 사진이 아무리 잘 나왔다고 하더라도 결국 휴대폰을 뒤져서 다시 찾아보는 사진들은 아이의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 한 모금이 안 넘어가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