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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Sep 26. 2022

아빠들끼리만 떠난 [환장의 나라]

힘들지만, 너희만 좋다면

20살이 되어서 친해진 친구가 있다. 학창 시절 내내 같은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학교도 다르고 노는 무리도 달라서 서로 거리가 있던 친구. 그 친구랑 친해지게 된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날, 우리 교회 청년부는 어린이 대공원에 갔다. 다들 롯데월드 같은 실내놀이공원을 갈 것이라는 예상에 우리는 과감히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다. 우리의 예상은 적중했고, 어린이 대공원에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는 이유는 있는 것. 너무 추웠고, 재미있는 놀이기구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놀이공원이라면 어디나 있는 바이킹은 있었다. 우리는 거의 바이킹을 전세 낸 것처럼 타기 시작했고, 어차피 손님도 없는데, 웬 정신 나간 아이들이 계속 타자, 직원도 신이 나서 노래도 더 크게 틀어주고, 태워주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그러자, 바이킹은 롯데월드 부럽지 않게 엄청난 스릴의 특급 놀이기구로 변했다. 원심력에 의해 점점 더 높게 올라간 바이킹에서도 우리는 가장 무서운 양쪽 끝자리에 타서 온갖 장난을 치며 스릴을 즐겼고, 그날 유난히도 죽이 잘 맞던 그놈과 나는 절친이 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함께 뜨거운 20대를 보냈다. 노래를 잘하던 그놈은 내가 대본을 쓴 뮤지컬에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내 대학교 친구랑 소개팅을 하기도 했다. 결국 연애까지 한 그놈은 하도 우리 학교에 자주 놀러 와서, 우리 학교 신입생들은 그놈을 우리 과 선배인 줄 알고 인사를 하기도 했고, 그놈은 또 자연스럽게 밥을 사주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도 많이 다니고, 같이 장사도하고, 클럽도 다니며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30대는 참 바빴다. 서로의 살길을 찾아 자리를 잡느라, 고단했고, 피곤했다. 매일 붙어 다니던 날들은 한 달에 한번 보기도 어려워졌고, 각자 결혼을 하고 먼 곳에 살다 보니, 결혼식장, 장례식장이 아니면 1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려워졌다.


그래도 최근에는 과일을 좋아하는 그놈 아들 덕분에, 가을이면 우리 처갓댁에 포도를 사러 놀러 오고, 우리도 그 덕에 얼굴도 보며 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전화를 해서 제안을 했다.


"야! 너 평일날 일없을 때, 아빠들끼리 애들 데리고 놀러 가자! 레고랜드나 에버랜드나."


처제네가 요즘 핫하다는 레고랜드를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그놈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지금 둘째가 만삭인 아내를 데리고 갈 수 없으니 나름 꼼수를 부린 것인데, 어쩌다 보니 그놈의 쉬는 날과 내가 연차를 올려놓은 날이  맞았다. 그렇게 우리는 갑자기 아빠들이 아이들만 데리고 떠나는 소풍을 가게 되었다.


역시 엄마들이란...


 엄마들은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는 사실을 좋았지만, 걱정도 태산이었다. 각자의 엄마들은 에버랜드에 대한 엄난 정보들을 검색해서 아빠들을 압박했고, 아빠들은 그 정보들은 서로에게 귀찮은 듯 공유하며 그날을 준비했다.


 그리고 전날, 나는 아이들의 간식을 사기 위해 집 앞에 마트에 가며 그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놈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야무지게 간식을 챙기고 있었다.


애들 젤리, 과자, 주스, 과일...

그래서 나는 우리들 물, 커피, 간식...


 그렇게 준비된 우리 소풍은 새벽 7시에 출발해서 일찌감치 에버랜드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놈과 아들을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그래도 몇 번은 봤던 사이라 5살짜리 오빠와 4살짜리 동생은 손을 꼭 잡고 [환장의 나라]로 떠났다.  이곳이 [환장의 나라]인 이유는 평일날, 오픈 1시간 전인데도 입구 근처의 유료 주차장은 줄을 서기 시작했었고, 입장을 하자마자 사파리 스마트 줄 서기를 했는데, 대기가 120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아이를 웨건에 태우고 환장의 나라를 누비기 시작했고, 곳곳에 있는 동물들은 두 아이를 만족시키기 충분했다. 틈틈이 그놈과 내가 준비한 간식들이 아이들의 허기와 열정을 채워줬고, 우리는 그 아이들과 짐이 더해져 40KG을 넘어가는 웨건을 밀고, [환장의 나라]를 오르락내리락거리느라, 점점 방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진짜 우끼네. 첨에 우리가 친해진 게 놀이공원이었는데, 어느새 애들을 데리고 이런 데를 오고."


우리는 서로의 영혼까지 태워가며 아이들을 위해 놀아줬고, 사파리와 로스트 벨리, 판다 월드에 놀이기구까지 3개나 타고 나서야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아닌 아빠들과 온 특혜로 다양한 간식들을 리미트 없이 즐길 수 있었고, 지치고 힘들 때는 어김없이 아빠의 품에서 쉬곤 했다.


우리 아이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에 탄지 1분도 되지 않아 잠들었고, 그다음 날에는 일어나서 삼촌과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엄청했다. 그놈의 아들도 아침부터 눈을 뜨자마자 삼촌과 우리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각자 아이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다행히 아빠들과도 서로도 잘 어울려준다. 우리는 점점 더 힘들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이 더 자주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주말이었다. [환장의 나라]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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