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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Aug 08. 2022

아버지의 참치김치찌개

 우리 아버지는 41년생이셨다.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옛날 사람이셨고, 고지식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성격은 가족들 사이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셔서 말이 많이 없으셨고, 표현도 잘 못하셨다. 우리 가족은 그런 아버지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아버지에게도 성격이나 성향, 아버지 세대와는 조금 괴리감이 있는 모습들도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우리 집은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매주 일요일은 맛있는 것을 먹는 날이라는 것. 신설동에서 작은 가게를 하던 우리는 일요일은 가게문을 열지 않고 쉬곤 했었다. 문을 열지 않은 작은 가게, 그 가게에 딸려있는 넓지 않은  집에서 우리는 일요일마다 즐거운 식사를 했다.


그때 아버지는 일요일이면 요리를 하셨다. 평소에도 요리를 잘해주시던 가정적인 아버지가 절대 아니셨지만, 일요일은 아버지가 직접 요리를 해주셨는데, 메뉴는 대부분 "참치김치찌개"였다. 이미 매운 김치 정도는 마스터했던 통통한 초등학생에게는 아버지의 김치찌개를 최고의 음식이었다. 우리는 일요일마다 아버지가 끓여주시는 김치찌개와 어머니께서 구워주시는 삼겹살을 먹었고,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쯤 벌어지는 이벤트는 나에게 여전히 아주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 주말, 서울에 일이 있어서 온 가족이 서울 나들이를 갔다. 정말 오랜만에 간 서울은 역시 차도 막히고 사람도 많았다. 볼일을 다 보고 너무 배가 고팠던 아내와 나는 벼르고 벼르던 맛집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다행히 기다림은 길지 않았고, 주차도 쉽게 했다. 그런데 아내가 생각보다 음식을 맛있게 먹지 않았다. 임신으로 인해 입맛이 변한 건지, 아니면 오랜만에 온 그 맛집의 맛이 변한 건지. 나도 예전에 왔을 때만큼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와 이렇게 돈을 썼는데, 어떻게 오빠가 해준 김치치개가 더 맛있냐?"


 나는 바로 전날 아내에게 참치김치찌개를 끓여 줬었다. 갑자기 참치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집에 있던 재료들로 어렵지 않게 끓여준 것이다. 찌개의 맛은 솔직히 냉정하게 말해서, 어디에 내놔도 당당할 만큼 끝내주는 맛있었고, 그 맛의 비법은 당연히 장모님이 담가주신 김치에 있었다. 그런데 그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는 아내의 모습과, 하루가 지나서도 유명의 맛집의 음식과 비교해서 칭찬을 해주는 아내의 말에 그냥 아버지가 떠올랐다.


"우리 집에는 참치김치찌개 부계 유전이 있나?"


나 혼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딱히 레시피를 아버지께 배운 적도 없었고, 아버지가 끓이실 때, 지켜보거나 도와드린 적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 레시피였고, 계량도 하지 않은 얼렁 뚝딱 요리 솜씨다. 그런데도 아내는 찌개는 내가 장모님보다 잘 끓인다고 말해주고, 매번 잘 먹는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 아버지는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어서 길을 걸을 때도 어머니보다 앞서 걸으시던 분이셨고, 무거운 짐도 잘 안 들어주시던 분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분이 일요일마다 찌개를 끓여 주셨을까? 그런데 그 답을 나는 우리 아이의 표정에서 찾은 듯하다.


내가 해준 음식에 엄지손가락을 들며 싹싹 먹는 아이의 모습은, 그 아이의 입에서 무엇이 나오던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아버지도 그러지 않으셨을까? 한 번쯤 우연히 우리들에게 찌개를 끓여줬는데, 그 찌개를 너무 맛있게 먹는 우리들의 표정이 너무 좋아서, 그저 무뚜뚝하게 일요일마다 찌개를 끓이신 것이 아닐까?


음식은 참 묘하다. 그 음식의 맛과 향으로도 지나가 추억을 소환하기도 하지만, 그저 같은 이름만으로도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덕에 나는 또 아버지의 김치찌개를 끓이며 더 행복해 할 수도 있고, 그리워할 수도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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