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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Aug 18. 2022

우리들의 블루스 _ 백개의 달

우리들의 판타지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고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님의 작품. 아끼고 아끼다 이제야 보고 있다. 드라마의 방영 전부터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다 보니, 화려한 스타들이 아닌, 그저 하나하나의 생생한 캐릭터들이었다. 그들이 표현하는 인물들은 너무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느껴져서, 그 안에 스며있는 삶들이 온전히 내 마음에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보는 내내 몇 번을 글썽이고, 몇 번을 박수치며 웃었는지 모른다.

 

내가 결혼을 하고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취향이 너무 잘 맞는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의 아저씨"도, "눈이 부시게"도, "해방 일지"도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인생 드라마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아내가 말했다.


"인생 드라마 하나 추가됐어."


아내에게 휴가를 주고 아이와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아내가 먼저 "우리들의 블루스"를 다 봤었다. 그리고 보낸 문자. 같이 보지 않은 것이 조금 서운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아내가 저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와 다시 볼 것이라는 뜻이고, 그때 못 나눈 소감들을 다시 나누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야"


 아내가 그중에서도 좋아하던 이야기는 바로 춘희 삼촌과 손녀의 이야기였다. 내가 순서대로 드라마를 보고 있는 중에도 아내는 그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감을 꾸준히 표현했고, 드디어 어제야 그 이야기를 다 볼 수 있었다.

 

 목포에서 살고 있던 손녀딸 은기가 제주도에서 물질을 하고 있는 춘희 삼촌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우리가 "집으로"라는 영화에서 이미 봤던 익숙한 장면이 이어진다. 도시에 살던 손주와 시골에 사는 할머니와의 동거. 하지만 알고 봐도 훈훈하고, 뻔해도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아빠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기 위해, 그리고 모두의 간절한 바람들을 빌기 위해 바닷가에 수많은 배들이 떴다. 그리고 아이는 바다에 뜬 백개의 달을 보며 울었다.  


 나는 이런 판타지를 좋아한다. 아이의 작은 믿음을 위해 수많은 어른들이 환상을 만들어주는 이야기, 언젠가는 알게 될 현실이지만, 그때가 지금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모든 어른들이 힘을 모으는 이야기. 그런 노력들이 담긴 이야기들이 좋다.


내 글을 읽어주신 많은 독자들이 내 이야기가 판타지라고 이야기한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들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판타지가 좋다. 마블 영화처럼 현실과는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도 좋고, 내 소설처럼 현실과 아주 가깝게 닿아 있는 소소한 판타지도 좋다. 판타지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현실과는 조금 달라서 나의 마음을 더 움직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판타지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철이 아직 들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철이 들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도 누군가가 아이의 믿음을 지켜주기 위해, 비가 오는 날에 배를 띄워달라고 부탁한다면, 기꺼이 빗속을 향해 걸어 나갈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내내 꿈꾸던 장래희망도 쿨하게 포기했고, 청춘을 받쳤던 무대에서도 미련 없이 내려왔다.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판타지를 좋아한다. 그리고 아직도 낭만을 꿈꾼다.


 그래서 생각했다. 우리가 아무리 차가운 현실을 살아가는 냉정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가끔은 바보 같은 짓을 하는 판타지의 주인공들처럼, 우리 역시 가끔 바보가 될 수 있는 마음 정도는 가지고 살았으면 한다는 생각을 말이다. 비록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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