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비빔국수
군 시절 나는 대대 군종병이었다. 보직이 군종이 아니라, 주말에만 군 교회에 가서 봉사하는 군인을 말한다. 그래서 주말이면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여름 성경학교 준비도 하고, 찬양단도 했다. 그때 인연이 된 분들 중에는 벌써 목사님만 몇 분 인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교회도 나가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도 않지만, 군대를 포함한 나의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삶은 참 독실하고 열정적이었다.
갑자기 다녀오게 된 경주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아내는 입맛이 없다고 했다. 뭔가 속이 계속 느글느글하다고 했고, 차에서 군것질을 한 것도 이유가 됐다. 그래서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지만, 무엇을 먹어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빔국수 해줄까? 묵은지 송송 썰어서?"
"어! 그거 좋다."
입맛이 없던 아내는 내가 말한 음식에 반응을 했고, 나는 집에 오자마자 바로 "김치비빔국수"를 만들었다.
중면을 삶고, 그 사이 잘게 썬 묵은지에 고추장, 식초, 간장, 매실청, 설탕, 참기름을 넣어서 양념을 했다. 그리고 잘 삶아진 중면을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잘 뺀 다음 버무렸다.
나는 문득 그 음식을 먹는 순간, 군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시절 나는 일요일 저녁에 군 교회 식당에서 다른 군종병들에게 저 국수를 자주 해주곤 했었다. 그나마 그들 중에서 음식 솜씨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내가 주로 음식들을 만들어 주고는 했는데, 모두들 맛있게 먹어주었던 기억이 있다. (뭐, 군대인 데다가 짬밥도 아니니 뭔들 맛이 없었겠냐만은) 그들과는 단순히 그 음식뿐만 아니라, 그 음식을 먹으며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과의 추억에서 음식은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다행히도 아내는 내가 만들어 준 국수를 군인들만큼이나 맛있게 먹었다. 요리를 하면서 제일 큰 기쁨은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의 표정과, 그 사람과 함께 쌓이는 추억이다. 나는 주말에 급하게 뚝딱 만들어진 이 "김치비빔국수" 한 그릇으로 군 시절의 추억도 떠올릴 수 있었고, 아내와의 새로운 추억도 만들 수 있었다.
비록, 잘하는 요리는 아니어도 내가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은 이유다.